걸어서 지구 한 바퀴/--01) 국내여행과 맛집

해파랑길 14일차(7/18일) : 32 - 35코스 [삼척해수욕장 ~ 정동진]

먹머구리 2021. 7. 27.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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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척항으로 되돌아 가다)

아침에 눈을 뜨고 출발하려다 생각하니 어제 후배를 만나느라 삼척 시내를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지나가는 택시를 불러 세우고 삼척항으로 되돌아갔다. 어제 후배를 만나서 차를 타고 출발했던 자리이다. 이곳에서 앱상의 코스를 따라 언덕을 올라갔다. 시멘트로 이루어진 길은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중간에 솔향기전망대가 있어서 올라보니 삼척항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생각지 못하게 가파란 시멘트 길이다.
이곳에서는 삼척항이 한 눈에 보인다.

길은 동네를 관통하여 언덕위로 가파르게 이어지고 있었다. 주위의 집들은 70, 8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약간씩 리모델링을 하여 살고 있는 듯 했다. 정상 부근에서는 아예 도시에서는 보기힘들게 농사를 짓는 모습도 눈에 띈다. 흥미로운 풍경이다.

주변의 주택들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시골 농가를 연상케 하는 집들도 있다.

 

2. (나릿골 언덕위의 풍경)

삼척의 명소인 이 공원주변길은 추억길, 희망길, 바람길, 바닷길 그리고 순환로로 이루어져 있는데 저는 바닷길을 중심으로 걸어본다. 원래 이곳은 작은 미술관, 핑크뮬리원으로 유명한데 미술관은 문을 열지 않았고 뮬리는 아직 피지 않아서 언덕위에서 주변 풍경만 감상했는데 그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제 폰으로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지만 삼척에 오시는 분들은 이곳에 올라서 느긋하게 주변을 둘러보면 삼척에 대해서 더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다섯가지 길로 이루어져 있다.
하늘과 바다가 일체로 보인다.
핑크뮬리는 피지 않았지만 삼척항과 바다의 모습이 아름답다.
언덕 위의 길가에는 황금사철이 멋지게 자라고 있다.
길 위의 이런 이정표. 멋지다!

 

2. (수로부인공원과 해가사)

다시 택시를 타고 원래 예정된 코스로 돌아왔다. 삼척 솔비치를 지난 지점에 수로부인공원이 있고 바로 옆에 해가사터가 있다. 삼척 근처에는 수로부인과 관련된 관광지들이 아주 많은데, 워낙 유명한 얘기니까 설명은 생략하고 해가사터에 있던 삼국유사의 가사내용을 인용해본다. 

거북아 거북한 수로를 내놓아라

남의 아내 앗은 죄 그 얼마나 큰가

네 만약 어기고 바치지 않으면

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으리라.

수로부인 공원. 솔비치 바로 옆에 있다.
이 둥그런 모형을 돌려서 멈추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서 운세를 점쳐볼 수 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해가사의 내용
추암해변. 멀리로 촛대바위가 보인다.

 

4. (동해시에서 아침식사를)

데크를 따라가다 보면 뒷쪽으로 이사부사자공원이 보이고 촛대바위 근처에서 삼척과 동해시가 갈라진다. 바로 지나서 편의점에 들러 병커피와 강릉커피빵을 사서 아침식사를 대신하였다. 커피빵은 그저 그렇다.

 

5. (촛대바위와 북평 해암정)

촛대바위 뿐만 아니라 코끼리 바위, 거북바위, 부부바위, 양머리 바위 등 온갖 기암괴석이 즐비하여 마치 작은 금강산을 연상시킨다는 추암은 널리 알려진 명승지이다. 사실 촛대바위에 가려져서 다른 풍경들이 관심을 덜 받고 있는데 개개의 바위들도 훌륭하고 전체적인 풍광도 훌륭한 데다가 바다와도 잘 어우러진다.

추암은 한자로 송곳바위라는 뜻으로, 내가 보기에는 이곳의 가장 대표적인 풍물인 뾰족한 바위에 가장 어울리는 이름이긴 하지만 워낙 촛대바위라는 이름이 유명하다. 하기는 한명회는 추암이라는 이름이 너무 속되다고 이곳을 능파대라고 부르는 게 마땅하다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니 이름이 풍경을 얼마나 잘 나타내는냐보다는 얼마나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서 잘 알려졌느냐 달려있는 것 아닌가 싶다. 그나마 추암은 역이름에서라도 살아남았다. 정상의 정자는 보수 중이라서 올라가 보지는 못했다.

촛대바위로 한 바퀴 돌아나오면 어찌보면 약간 초라해 보이는 오래된 정자가 눈에 띄는데 바로 북평해암정이다. 고려시대 공민왕 무렵에 건립되어 이후 중수를 거듭하였는데 정자 정면에는 세 개의 현판이 있다. 왼쪽 전서체‘해암정’은 시택 심지황이, 가운데 해서체‘해암정은 우암 송시열이, 오른쪽 초서체 ’석총람‘은 송강 정철이 썼다고 한다.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고 추암역 근처에서 스탬프를 찍었다.

촛대바위. 내 눈에는 촛대보다는 송곳으로 보인다.
작은 금강산을 연상시키는 풍광이 훌륭하다.
많은 사람들이 대충 지나치지만 역사가 묻어있는 건물이다.
추암은 역이름으로 겨우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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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해항과 할미바위)

추암역을 출발하여 북평으로 가는 길은 가로수가 고르게 잘 심어져 있어서 더운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시원하게 걸을 수 있었다. 왼쪽으로 북평산업단지가 제법 큰 규모로 자리잡고 있다. 북평은 원래 삼척에 속했다가 묵호와 합쳐지면서 동해시가 되었다. 동해항은 예전의 북평항인데 항구를 바라보면 반대편 바닷가를 따라서 편안한 해파랑길이 마련되어 있다. 

도중에 만난 마고암(할미바위) 근처의 벤치는 나그네를 위한 최고의 쉼터이다. 조형물의 반대편 큰바위 위에 올려져 있는 작은 바위가 할미바위이다. 여기서 쉬어가지 않으면 만수무강에 지장이 있지 않을까? 살짝 올라선 언덕 위에 앞바다의 바람과 뒷쪽의 강바람이 맞부딪치는 곳이라 시원하기도 하면서 근처에 나무들이 빽빽해서 서늘한 기운이 최고의 피서지이다. 바로 옆에는 '호해정'이라는 정자가 눈에 띈다.

전천을 따라서 한참을 올라가니 북평민속시장이 보인다. 이곳은 매 3일, 8일마다 5일장이 열리는데 장터국밥이 유명하다. 어린 시절 고향 읍내도 같은 날짜에 5일장이 열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장날마다 마을 앞 고개를 넘어가던 장돌뱅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 선하다.

북평산단의 높은 탑이 산단의 규모를 나타내는 듯 하다.
동해항의 맞은 편 언덕으로 해파랑길이 이어진다.
할미바위 앞의 벤치는 최고의 쉼터이다.
광복 무렵에 세워진 호해정. 현판 옆에 추사의 글씨가 있다고 한다.
장흥고각. 북평 5일장이 흥하라고 북을 울리던 곳인가보다. 옆의 장똘뱅이 상이 인상적이다.

 

2. (기차여행의 추억)

북평교 부근에서 코스를 살짝 잘라먹고 햇살이 따가운 철길을 따라서 동해역으로 갔다. 역사에는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로 제법 사람들이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여행하면 기차여행이었다. 사람들 북적이는 대합실에서 억양도 이상한 구내방송을 들으면서 곧 떠나게 될 여행을 기대하던 순간은 얼마나 행복했는지. 지금은 자동차보다 빠른 KTX로 달리다 보니 기차가 여행보다는 비즈니스 용도로 더 많이 타고 다니는 것 같고, 여행이라 하면 보통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걸로 인식이 되고 있어서 한편으로는 격세지감을 느낀다.

역 앞의 편의점에 들러 아이스크림과 얼음물을 한 병 산 다음 잠시 휴식을 취했다.

길게 뻗은 철길은 보기만 해도 마음 설레게 한다.
동해역 앞
동해역 기차역 대합실에는 제법 사람들이 많다.

 

3. (묵호 떡볶이)

북평에서 묵호까지도 도보여행자를 위한 길이 정말 정성스럽게 가꾸어져 있다. 길은 부드러운 흙길이거나 야자매트가 깔려 있어서 걷기에 편했는데 소나무, 오리나무, 은행나무, 향나무 등의 사열을 받으며 여유있게 묵호항에 도착했다. 폭염경보가 내릴 만한 날씨인데도 별로 힘들이지 않고 행복한 기분으로 걸을 수 있었다.

언덕 위의 정자에서 바라보는 묵호항의 전경은 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어린시절에 이곳 묵호에 외삼촌이 살고 계셨는데 그 때 어머니를 졸라서라도 한번 와 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외삼촌이 돌아가셨고 아마 묵호 어딘가에 살고 있을지도 모를 나보다 나이많은 사촌누나들과는 연락이 끊겼다. 40년이 넘는 세월을 건너 지금 만날 수 있다면 서로 간에 정말 반가울텐데. 

정자에는 관광객인 듯한 중년의 남녀 너댓 분이 어시장에서 사온 회에다 빨간 초고추장을 넣어 맛있어 보이는 회덮밥을 만들어 나눠먹고 있었다. 갑자기 나도 출출함을 느꼈다. 

마침 근처에 떡볶이집이 보인다. 그런데 저 집은 무슨 음식이길래 저렇게 떡볶이로 간판까지 내걸고 장사를 할까 궁금하여 발길을 그리로 향했다. 떡볶이는 문어를 비롯한 해물과 떡과 오댕이 들어간 한 판의 요리 수준이었다. 떡볶이가 14000원, 묵볶밥(묵호떡볶이 볶음밥인가 보다) 2000원을 지불했는데 별로 아깝지 않았다.

 

4. (기억 속의 옛골목)

스탬프함이 있는 묵호역 부근으로 가는 길은 꽤 오래전 옛날 골목을 걷는 기분이었다. 골목을 따라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마당없이 문 하나 열면 골목길로 연결되는 구조였다. '해리슈퍼'에는 아직도 "하드"를 팔고 있었고, 옛날 전파사처럼 보이는 '합동전자'는 전화번호의 국단위가 아직도 2자리이다. 그리고 옛시절 역 주변이면 어김없이 보이던 '수궁', '아방궁', '춘향이', '명월'과 같은 이름으로 짐작할 수 있는 업소들도 보였다.

스탬프함은 주변에 아무 표지판도 없이 홀로 외로이 길가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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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의 카페(?) : 베아트리체)

길가의 언덕배기에 어린왕자와 그가 살던 B612 별이 새겨져 있는 재미있는 공간을 발견했다. 해변길을 따라 걷다가 너무 더워서 근처의 카페로 들어갔다. 베아트리체라는 탄자니아 커피를 전문으로 다루는 카페란다. 음악, 분위기, 주인의 친절도가 모두 내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맛은 별도로 하더라도 테이크아웃도 아닌데 1회용 컵에 커피를 주는 것이 그렇게 달가워보이지는 않았다. 에어컨만큼은 빵빵하게 나오는 2층에서 한참을 쉬었더니 피로가 좀 풀렸다.

 

2. (대진항, 망상해수욕장 그리고 강릉으로)

날씨가 워낙 무더운데다가 코스는 차도를 따라서 끝없이 이어진다. 아스팔트의 열기를 온몸으로 덮어쓰고서 마치 군대 행군하듯이 전진하였다. 대진항, 망상해수욕장을 거쳐 마침내 강릉에 속하는 옥계해수욕장에 도착하였다.

대진항에는 배들이 많이 정박해 있었는데,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겠다. 한때 유명세를 타던 망상해수욕장은 평일이어서인지 한산한 분위기였다.

해질 무렵의 옥계해변도 주변의 해수욕장은 한산하고 야영장의 텐트 주변에만 작은 웅성거림이 들리는 걸 보면 아마도 저녁식사들을 즐기고 있나보다. 아, 오늘도 묵호에서 먹은 떡볶이가 유일한 하루 식사가 되려나.

대진항에는 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다.
망상해수욕장 주변의 상가들이 썰렁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드디어 강릉이다.
스탬프함 위치가 좀 헷갈렸다.
해변에는 아름드리 노송들이 빽빽하다. 벤치에 앉아서 한숨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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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진 솔밭길)

옥계에서는 숙소를 구할 수가 없었다. 무리해서라도 다음 코스를 향해 가기로 했다. 다행히 길은 험하지 않았다. 다만 가로등이 없는 곳이 많아서 스마트폰의 불빛에 의존해야 했다. 강원도로 오면서 무덤들의 형태가 특이하다. 여러 무덤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을 뿐만 아니라, 동그란 형태로 매우 단순하다.

어두워진 길을 무덤가를 걸으려니 아무래도 기분이 그리 상쾌하지는 않았다. 근처에 고려궁이라는 호텔이 있었는데, 정주영 현대회장과 무슨 관련이 있다고 써 있었다. 바빠서 자세히 보지는 않았다.

길은 평탄한 소나무길로 시작한다.
모여있는 무덤의 형태가 독특하다.
이곳은 정주영 형제가 소를 몰고 올라갈 때 묵었다는 옥계 고려궁 호텔

 

2. (금진해변의 야경)

한참을 걸으니 해가 지고 항구의 야경이 제법 운치가 있다. 밤낚시를 즐기는 강태공의 포즈에서도 여유가 느껴진다.

금진해변
항구는 낮에 볼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여유로운 모습이 프로처럼 보인다.
언덕 위의 탑스텐 호텔 덕분인지 이곳은 늦은 밤까지 불빛이 휘황하다.

 

3. (마침내 정동진)

서둘러 걸었는데도 10시 경이 되어서야 정동진 근처의 숙소에 도착했다. 이렇게 쉽게 말하지만 사실 심곡리에서 정동진으로 넘어오는 고갯길은 만만치 않았다. 산길이 험하고, 밤에 다니는 찻길은 위험했다. 

다행히 숙소는 썩 마음에 들었다. 시설도 훌륭하지만 내가 묵은 방이 7층이라서 바로 옆에 있는 썬크루즈 호텔의 특이한 모습도 보이고 창가 너머로 바다가 바로 보이는 곳이었다. 하지만 피곤하여 빨리 준비를 마친 후 잠이 들었다.

모텔의 7층이라서 전망이 최고다.
그동안 묵은 모텔방과 비교하여 화려하다. 바깥에 넓은 테라스도 있다.
창가로 보이는 썬크루즈호텔의 모습. 예전에 봤던 모습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