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짧은 생각들

[시] 대학생 때 너무 좋아했던 "홀로서기 - 서정윤"

무딘펜 2016. 12. 7. 11:26

"나를 지켜야 한다
누군가가 나를 차지하려 해도
그 허전한 아픔을
또다시 느끼지 않기 위해
마음의 창을 꼭꼭 닫아야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얻은 이 절실한 결론을
이번에는
이번에는 하며 이겨보아도
결국 인간에게서는
더 이상 바랄 수 없음을 깨달은 날
나는 비록 공허한 웃음이지만
웃음을 웃을 수 있었다."

홀로서기 3편, 다시 홀로서며 6편으로 이루어진 연작시로서 전문은 꽤 길다.

홀로서기 1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1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놓이 쳐들고
날리는 아득한 미소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 쪽을 위해
헤이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2
홀로 선다는 건
가슴을 치며 우는 것보다
더 어렵지만
자신을 옭아맨 동아줄
그 아득한 끝에서 대롱이며
그래도 멀리
멀리 하늘을 우러르는
이 작은 가슴,
누군가를 열심히 갈구해도
아무도
나의 작은 가슴을 채워줄 수 없고
결국은
홀로 살아간다는 걸
한 겨울의 눈발처럼 만났을 때
나는 
또다시 쓰러져 있었다.

 

3
지우고 싶다
이 표정없는 얼굴을 
버리고 싶다.
아무도
나의 아픔을 돌아보지 않고
오히려 수렁 속으로
깊은 수렁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데
내 손엔 아무 것도 없으니
미소를 지으며
체념할 수 밖에...
위태위태하게 부여잡고 있던 것들이
산산이 부서져 버린 어느날
나는
허전한 뒷모습을 보이며
돌아서고 있었다.

 

4
누군가가
나를 향해 다가오면
나는 움찔 뒤로 물러난다
그러다가 그가 
나에게서 멀어져 갈 땐
발을 동동 구르며 손짓을 한다

만날 때 이미
헤어질 준비를 하는 우리는

아주 냉담하게 돌아설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파오는 가슴 한 구석의 나무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떠나는 사람은 잡을 수 없고
떠날 사람을 잡는 것 만큼
자신이 초라할 수 없다.
떠날 사람은 보내어야 한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일지라도

 

5
나를 지켜야 한다
누군가가 나를 차지하려 해도
그 허전한 아픔을
또다시 느끼지 않기 위해
마음의 창을 꼭꼭 닫아야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얻은 이 절실한 결론을
이번에는
이번에는 하며 이겨보아도
결국 인간에게서는
더 이상 바랄 수 없음을 깨달은 날
나는 비록 공허한 웃음이지만
웃음을 웃을 수 있었다.

아무도 대신 살아주지 않는
나의 삶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6
나의 전부를 벗고
알몸뚱이로 모두를 대하고 싶다.
그것조차
가면이라고 말할 지라도
변명하지 않으며 살고 싶다.
말로써 행동을 만들지 않고
행동으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혼자가 되리라.
그 끝없는 고독과의 투쟁을
혼자의 힘으로 견디어야 한다.
부리에
발톱에 피가 맺혀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숱한 불면의 밤을 새우며
홀로서기를 익혀야 한다.

 

7
죽음이 인생의 종말이 아니기에
이 추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살아있다.
나의 얼굴에 대해
내가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홀로임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홀로 서고 있을
그 누군가를 위해
촛불을 들자.
허전한 가슴을 메울 수는 없지만
이것이다 하며 살아가고 싶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랑을 하자.

 

 

홀로서기 2 

 

홀로서기 3 

 

 

다시 홀로서며 1 

 

 

다시 홀로서며 2 

  


다시 홀로서며 3 

  

다시 홀로서며 4 

 

  

다시 홀로서며 5 

 

 

다시 홀로서며 6 

 

- 서정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