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10

[추억] 사라져 가는 우리의 짚문화를 바라보며(펌)

추수가 끝나고 나면 논바닥마다 높게 쌓아놓았던 짚가리는 겨울 한철 가축들의 먹이나 다음 해 농사준비를 위한 재료로 쓰이곤 했다. 이제는 거의 쓰지 않는 생활용품들을 만드는 가장 훌륭한 재료였던 짚, 오마이 뉴스에서 잘 설명한 자료가 있어서 퍼왔다. [사진] 사라져 가는 우리 짚 문화를 돌아보며06.04.09 19:48l최종 업데이트 06.04.10 10:01l김현(dasolsori)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아버지와 동네 어른들은 새끼를 꼬아 멍석을 만들고, 가마니를 짜고, 삼태기나 짚신, 다래끼 같은 것을 만들어 사용했다. 특히 울타리를 엮어나 이엉을 엮을 땐 새끼가 많이 필요해 어린 우리들도 새끼를 꼬았던 기억이 난다. 어른들 솜씨는 못 따라가지만 그땐 제법 새끼를 잘 꼬았다는 소리도 들었..

흰 눈... 그 깨끗함의 절정!

눈이 제법 내린다는 일기예보는 있었지만 이렇게 많이 내릴 줄은 몰랐네. 더구나 오늘은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인데... 아침 일찍 눈이 떠져서 담배를 한 대 물고 창문을 여니 온 세상이 하얗다. 세상의 모든 지저분한 것들을 깨끗한 흰 빛으로 감싸않은 듯한 포근함에 왠지 모른 신비감과 황홀감을 느끼게 된다. 어린 시절 충청도 산골에 살던 내게 겨울철은 온 산하가 항상 눈에 덮여 있었다는 기억밖에 없다. 눈이 많이 내리기도 하였지만 사방이 온통 높은 산으로 둘러쌓여 있어서 일조량이 적은 탓에 쌓인 눈이 녹을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눈이 많이 내리면 산으로 올라가서 토끼몰이를 하기도 했다. 곳곳에 올무를 설치해 놓기도 했지만 눈이 많이 내리는 날에는 산토끼들도 기동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여럿이서 우~ 몰이를 하면..

정말 춥네... 겨울답게

올 겨울에는 눈도 푸지게 내렸고 날씨도 오지게 춥다. 그런데 어린시절에 느낀 추위를 생각하면 지금의 추위는 어쩌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1000미터 넘는 산들로 둘러쌓여 있는데다 남한강 상류였던 고향마을은 겨울이면 유난히 추웠다. 집을 나서서 학교에 갈라치면 개울가를 따라서 거무싯개라는 계곡 근처를 지나가야했는데, 산바람과 강바람이 마주치는 그곳은 자그마했던 내 몸뚱이를 거의 날려버릴 것만 같았다. 이미 내린 눈조차도 바람에 다시 날리어 얼굴을 사정없이 치발라버리면 별로 두텁지 않은 옷가지 때문이기도 하겠고 또 덜 자란 몸뚱이가 추위를 심하게 탄 탓일수도 있겠지만 그 추위에 눈물이 다 글썽글썽해지곤 했다. 조금 더 자라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거의 자취생활을 했는데, 가끔 연탄불을 꺼뜨리..

090728 호박에 얽힌 이야기들

호박꽃도 꽃이냐?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되냐? 다른 야채(?)에 비해서 호박에 대해서는 이처럼 비하하는 말들이 유난히 많다. 아마도 그 크고 노랗지만 화려해보이지 않는 꽃이랑 펑퍼짐한 늙은 호박의 생김새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알고보면 호박만큼 쓰임새가 많은 것도 없다. 호박이 빠진 된장국을 먹어본 사람은 호박과 된장의 그 절묘한 조화에 대하여 새삼 느낄 것이다. 별로 맛이 특징적이지도 않고 향이 강한 것도 아닌 호박이지만 된장국에 들어가면 이상하리마치 호흡을 척척 맞춰서 우리의 미각을 살살 녹이는 마법을 발휘한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에는 호박말랭이가 있다. 여름철 애호박을 얇게 썰어서 햇볕에 며칠간 말린다. 우리 집 같은 경우는 주로 집앞에 있는 개울가의 깨끗한 돌위에 널어서 말렸는데 여름철 ..

090708 시계에게 밥을 먹여?

우리 어린 시절에는 시간의 개념이 명확하게... 칼로 두부 베듯이 딱딱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하루를 낮과 밤, 그리고 아침때 점심때 저녁때 정도로 대강 구분하는 정도였달까? 내 기억에 "시간"이라는 수치적 개념이 들어선 것은 라디오의 시보와 괘종시계의 도입에따른 것으로 기억된다. 라디오는 대부분 매 시간마다 정확히 시보를 울려주었고, 괘종시계는 시간수에 맞게 종을 울려 주곤 했다. (30분에는 종을 한번 울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국민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배우는 시계 읽은 법을 굳이 모르더라도 괘종시계의 종소리를 듣고서 시간을 대~충 알아채곤 했다. 하여튼 서양에서는 "Grandfather's clock", 즉 할아버지 시계라고 불리는 괘종시계의 등장은 새마을 운동과 비슷한 시기로 기억..

090506 청보리 푸르른 봄날에...

요즘은 보리도 화초처럼 가꾸어지나보다. 사무실 건물 앞에 놓인 커다란 프라스틱 화분에 짙푸른 보리가 심어져 있더니 어느새 부풀부풀한 이삭이 나오기 시작한다. 만화방창하여 유난히 아름다운 계절인 봄의 가운데에서 화려한 꽃들보다 샛푸른 보리이삭에 눈길이 가는 것은 나 역시 그 처럼 파란 꿈을 꾸던 어린시절의 기억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니 어쩌면 -멋내지 않고 솔직히 말한다면 - 그보다 그 시절의 배고픔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듯이 이맘 때 쯤이면 곡기가 섞인 양식은 거의 다 떨어져 가고 이제 보리가 빨리 자라서 굶주림을 달래 주기만을 기다리는 배고픈 시절이다. 물론 향그런 봄나물들이 입맛을 돋구어 준다고는 하지만 그 돋구인 입맛을 무엇으로 채울꼬! 맨날 나물만 뜯어먹고 살 수는 없지 않..

[어린시절] 크리스마스 새벽의 찬송가 소리

지금이야 별다른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나이지만 어린 시절에는 친구들과 어울려서 교회도 자주 갔다. 여름성경학교나 겨울철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열심히 활동하다가 뜸해지곤 했지만... 어린시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더라도 우리 동네에서는 선물을 주고 받는다는 개념은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먹고사는 일에 직접 관련이 없는 '여분의' 물건을 준다는 개념은 없었다. 안줘도 되는 것인데 특별히 은혜를 베풀어서 주는 물건을 선물이라고 한다면, 선물이라고 굳이 얘기할 수 있는 것은 가끔씩 들리는 친척들이 사가지고 오는 종합선물세트 정도가 있었을까. 하여튼 크리스마스 카드는 주고 받아 봤지만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다는 개념은 어린시절 나의 머리속에는 없었고 그것이 요즈음 내가 같은 무신론자인 내 딸들을 대하..

081222 놀꺼리(4) 가이생; 또다른 전쟁

 가이생은 회전(會戰,かいせん), 즉 대규모 병력들이 격돌하는 것을 일컫는 일본말 '가이센'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내가 어린 시절에 많이 했던 놀이는 국민가이생인 오징어가이생과 그것을 변형한 정말 과격한 놀이인 말X가이생이었다. 1. 먼저 오징어 가이생 이건 가이생 중에서 우리나라 전국에서 행해지던 가장 인기있는 종목이라서 별도로 설명이 필요하진 않을 것입니다. 오징어 가이생의 놀이방법이 궁금하신 분은 여기를 눌러 보세요. 2. 말X가이생 인터넷을 뒤져보아도 이 가이생에 대한 설명은 없더군요. 그렇다면 우리 지방에서만 했었다는 얘기인지 아니면 명칭이 거시기해서 설명들을 안 올린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이런 명칭이 왜 붙게 되었나를 설명하기 위해 제가 그린 그림을 보여드리면 쉽게 이해가 되..

081222 놀꺼리(3) - 감히 비석을 패대기를 치다니!

장난감이 없던 어린시절에 손바닥만한 돌을 가지고 재미있게 놀 수 있었던 놀꺼리 중의 하나는 비석치기였다. 우리 동네에서는 비럭치기라고도 했다. [비석치기 중 오른발등치기를 하는 모습] 1. 놀이도구 필요한 건 딱 하나입니다. 손바닥만한 돌 하나. 안정적으로 세우기 쉬운 직사각형의 모양이 가장 좋고 잘 깨지지 않는 단단한 돌이 유리합니다. 부딪칠 때 경쾌한 소리가 난다면 금상첨화! 2. 놀이준비 먼저, 4~5미터 간격으로 공격선과 수비선의 두 줄을 나란히 긋습니다. 다음은 편을 갈라야죠. 보통 가위바위보를 합니다. 한 팀에 보통 4~5명 이내가 적당합니다. 진 팀은 수비선 위에다 자기 돌을 세웁니다. 이때 가능하면 쉽게 넘어지지 않도록 땅을 파서 세운다거나 가로로 길고 낮은 돌을 세우기도 합니다. 3. 놀..

081121 순해네 집앞의 연못

직장동료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우연히 건물 몇 층에서 떨어지면 사망할까 하는 황당한 소재가 나왔다. 4층이니 5층이니 별 쓰잘데 없는 얘기를 나누는 중에 갑자기 어린시절에 순해네 연못의 빨래터 옆 버드나무 위에서 떨어져서 죽을 뻔 했던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순해는 내 어릴적 죽마고우다. 지금은 10가구도 안되는 피폐해진 깡촌마을이지만 그 당시에는 20가구 쯤 살았는데 같은 나이의 남자친구들이 서넛 있었고 그 중에서 순해와 나는 유독 같이 놀기를 좋아했다. 하긴 내가 순해와 많이 어울리게 된 것은 다른 이유도 있었다. 순해네 집에 동네에서 제일 잘 사는 집이라서 가끔 가면 먹거리를 챙겨줄 때가 있다는 점과 집에 책들이 제법 있다는 점이었다. 어릴 적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던 나는 동네에 있는 책은 거의 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