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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다가 말다가

[서평] 고등대표수필 50

by 무딘펜 bluntpen 2017. 5. 9.


  "어렴풋이 생각나는 그 시절의 감동과 추억"

  페이터의 산문(이양하), 청춘예찬(민태원), 낙엽을 태우며(이효석), 산정무한(정비석)... 어린 시절 시험공부를 위해서 읽었던 수필들을 다시 읽으며, 그 내용보다 그 시절의 추억에 잠겨본다.



 [제목] 고등대표수필 50  [●●◐]



 ♣ 김형주, 박찬영 엮음

 ♣ 리베르 / 2012. 2. 7

 ♣ 쪽수 : 366

 ♣ 구매 : 2015. 3. 12 / Yes24

 ♣ 읽음 ① 2015. 4 발췌

           ② 2017. 5 발췌



 읽고나서


  고등학교 다닐 때 공부했던 교과서 중에서 지금까지도 읽어볼 만 하다고, 또는 읽고 싶다고 느끼는 것은 국어책이 유일하다. 대부분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읽어야만 했던 것이라서 지겨운 기억 뿐이지만, 그나마 자그마한 감상에 빠질 만 했던 것 국어책에 나오는 소설이나 수필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우리 세대에 교과서에서 나오는 글 중 기억나는 걸 묻는다면 아마도 중학교 국어책에 나온 황순원의 '소나기'와 고등학교 때의 알퐁스 도데의 '별'을 거론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이러한 소설 이외에도 수필이 그나마 읽을만한 꺼리였는데, 나의 경우는 이양하의 '페이터의 산문'과 민태원의 '청춘예찬'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리베르에서 2012년에 펴낸 이 책에는 개정 16종 교과서에 나오는 수필 50 가지가 실려있다. 1980년대에 고등학교를 다닌 나로서는 이 중에서 대 여섯 개 정도만 겨우 눈에 익었다. 하여튼 모든 작품을 읽을 필요는 느끼지 못했고 - 교과서라는 게 그 편찬 목적상 재미있는 글을 실을 리는 없지 않은가? - 예전에 읽어 본 몇 가지와 눈에 띄는 것들만 손 가는대로 읽어 보았다. 


  먼저 내가 기억에 남는 글을 읽어 보았다. '페이터의 산문'은 원래 영국의 유명한 심미 비평가 월터 페이터가 쓴 '쾌라주의자 메어리어스'의 제1장을 옮겨 놓은 것인데, 페이터의 글은 또한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서 맘에 드는 내용을 발췌해 놓은 것이니, 결국은 '명상록'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작품 중에 가장 내 마음을 끌었던 어구는 "모든 것을 捨離(모든 것을 버리고 집착하지 않아 번뇌에서 벗어남)하라. 그리고 물러가 네 자신 가운데로 침잠하라" 라는 구절이었다.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임을 생각해보면 황제의 생각이 나의 인생철학에 끼친 영향을 매우 크다고 아니할 수 없겠다. 


  아울러 고등학교 시절이나 지금 읽어보아도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의 나열로 보였던 - 그래서 시험에 유난히 많이 나왔던 - 구절은 아래와 같다. 지겹더라도 읽어 보시길...

  "죽음을 염두에 두고, 네 육신과 영혼을 생각해 보라. 네 육신이 차지한 것은 만상 가운데 하나의 미진, 네 영혼이 차지한 것은 이 세상에 충만한 마음의 한 조각, 이 몸을 둘러보고 그것이 어떤 것이며 노령과 애욕과 병약 끝에 어떻게 되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라. 또는 그 본질, 원형에 상도하여 가상에서 분리된 정체를 살펴보고, 만상의 본질이 그의 특수한 원형을 유지할 수 있는 제한된 시간을 생각해 보라. 아니 부패한 만상의 원리 원칙에도 작용하는 것으로 만상은 곧 진애요, 수액이요, 악취요, 골편. 너의 대리석은 흙의 경결, 너의 금은은 흙의 잔사에 지나지 못하고 너의 명주옷은 벌레의 잠자리, 저의 자포는 깨끗지 못한 물고기 피에 지나지 못한다. 아! 이러한 물건에서 나와 다시 이러한 물건으로 돌아가는 네 생명의 호흡 또한 이와 다름이 없느니라"


  민태원의 '청춘예찬'은 다시 읽어보니 생각한 것 보다 가슴에 와 닿지는 않는다. 생각한 것보다 문장의 앞뒤 연결이 매끄럽지 않고, 무엇을 얘기하고자 하는지 분명치 않은 가운데 청춘에 대한 감탄만 연발하는 듯하여 살짝 거북하다. 


  내가 배웠던 80년대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지는 않은 작품 중에서 맘에 드는 건 정비석의 '산정무한'과 김용택의 '책을 따라다니며 글을 쓰다'라는 작품이다. '산정무한'은 친구와 함께 금강산을 유람하는 가운데 쓴 기행문인데, 글이 힘차고 표현이 세련되었다.


  김용택의 글은 본인의 독서편력과 글쓰기, 그리고 시골에서의 선생으로서의 생활에 대하여 쓴 글인데, 그 대단한 독서편력과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대한 보람과 자부심이 마음에 와 닿는다.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에게는 추천한다.


  앞으로도 옆에 두고 심심할 때마다 읽어볼 참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