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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생각 짧은 글/2. 비스듬히 세상 보기

좌충우돌 촌놈의 영국 유학기(11)

by 무딘펜 bluntpen 2008. 9. 4.


<Sunday, 01/02/2004>
일요일 아침이니 조금 늦장을 부렸다. 한 시간 늦게 일어났다. 겨우 눈비비고 보니 일곱시인데 아침식사는 여덟시부터 시작이다. 운동하기에도 애매하여 운전연습을 하기로 하였다. 일단 차를 몰고 바깥으로 나갔다. 몇 번 돌아보았던 동일한 코스를 따라서 한 바퀴를 거의 돌아 집 근처 Round about에 진입하고 보니 아직 7시 25분이고 식사시간은 30분 이상이 남았다. 그대로 직진하여 Swindon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일요일 이른 시간이라 차들도 별루 없다. Sainsbury까지 가서 그 앞에 있는 Round about에서 U턴을 한 다음에 복귀 길에 올랐다.

이제는 이 쪽 방향은 Oxford로 가는 길인데 의외로 차들이 많다. 카메라가 설치된 구역을 제외하고는 시속 60마일 이상으로 달린다. 나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열심히 엑셀을 밟아댔다. 한참을 정신없이 운전에 집중하다 옆을 보니 오른쪽으로 눈에 익은 Macdonald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이런! 나는 이미 왼쪽 차선으로 속력을 내어 달리고 있었다. 오른 차선은 뒤에서 내 차보다 엄청 빠른 속도로 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이제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어 들어가는 것은 자살행위다. 세상길은 어디로든 통하니까 그대로 직진했다.

그렇게 한참을 밀려서 달리다 보니 오기도 생기고 이 쪽 방향 저번에 가본 이박사네 집이 있는 Faringdon이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어차피 초은이 학교문제가 잘 풀리지 않으면 이곳으로 학교를 다녀야 할 것이므로 이번 기회에 거기를 다녀 오리라 마음 먹었다. 10분 정도를 다 가니 Round about이 하나 나오고 좌회전으로 Faringdon 표지판이 보인다. 방향을 꺾어 Faringdon으로 들어가니 의외로 작은 마을이다.

이왕 온 김에 저번에 갔던 이박사 댁을 한 번 가 보리라 생각하고 온 마을을 헤집고 다녔으나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차를 돌려서 기숙사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은 속도를 좀 죽이고 천천히 운행했다. 나의 속도에 불만있는 놈들은 뒤에 차를 바짝 붙이고 위협을 하거나 상향등을 켜고 빨리 좀 가라고 재촉을 하지만 나도 이제 운전한 지 꽤 된 사람이니 침착하게 내 속도를 유지했다. 답답하면 추월해 가면 되지 않겠소? 기숙사로 돌아오니 식사시간이 이미 끝나 버렸다.

배가 엄청 고프다. 홍차 한 잔을 타서 마셔 보지만 여전히 배가 고프다. 할 수 없이 이민 가방을 뒤졌다. 거의 밑바닥에 있는 플라스틱 통 안에 완전히 부셔서 완충제 대신 넣어둔 라면이 한봉지 눈에 띈다. 감지덕지다. 얼른 물을 끓여 부어서 봉지라면을 해서 먹었다. 맛있다.

식사를 하고 나니 조금 노곤하다. 오늘은 기숙사도 텅 비고 심심하기도 하다. 운전연습도 이젠 조금 따분하다. 뭔가 재밌는 일이 없을까 생각하다 어제 배중령과 같이 다녀온 Outlet에 가보기로 했다. 어제 시간이 없어서 대충 돌아봤기 때문에 맘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몇 가지 더 장만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오늘은 먼젓번에 샀던 초보운전 표시인 L자를 앞 뒤 범퍼에 붙였다. 흰색바탕에 빨간 글씨라 눈에 잘 띄긴 하겠는데 차가 영 폼이 안 났지만 어쩔 수 없다. 차를 몰고 Swindon으로 가는 길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시내에서 조금 길이 막혔지만 나같은 초보에게는 오히려 천천히 가는 게 도와주는 거다. 어제 출발하기 전에 배중령한테서 지도를 보면서 길을 익혀 두었기에 가는 길을 찾는 것은 쉬웠다. 조금 어려운 건 주차권을 기계에서 뽑는 건데 차를 오른쪽으로 바짝 붙여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거기다 내 팔이 Short한 관계로 할 수 없이 내려서 주차권을 뽑을 수 밖에 없었다.

Outlet에 도착하니 11시 정도 되었다.  주차장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니 대부분 남은 자리는 차 한대가 겨우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정도의 좁은 공간이다. 며칠 전에 좁은 공간에 차를 주차시킨 경력은 있지만 아무래도 겁이 났다. 조금 넓은 공간이 있으면 좋을 텐데 라고 생각하면 차를 몰고 조금 돌다보니 외곽의 보도블럭 옆에 한 줄로 주차를 시켜 놓은 차들이 눈에 띄었다. 이 곳에 차사이를 파고 들어가 주차를 시킬 필요가 없으니 나를 위하여 비워놓은 자리 같았다.

차 속도를 줄이고 서서히 알맞은 지점을 차를 갖다댔다. 앞에는 푸조 차량 한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그 차 꽁무니에 바짝 다가가서 주차를 위하여 브레이크를 살며시 밟았다. 그런데 이 놈의 차가 미쳤나? 갑자기 붕--  하더니 차가 앞으로 쑤욱 나가는 것이었다. 엉겁결에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런데 부우웅--- 하면서 차가 파악 튀어나가 앞차 엉덩이를 힘차게 들이받는다. 순간적으로 아차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대로 쿵하고 둔한 진동이 느껴졌다. 옆에 지나가던 차량에서 쳐다들 보며 뭐라고 떠든다. 내가 브레이크라고 생각했던 것이 엑셀레이터였던 가보다. 그걸 또 한번을 더 밟았으니...

정신을 수습하고 시동을 끈 후 차에서 내렸다. 우선 내 차을 살폈다. 앞 범퍼에 달려 있는 아크릴로 만든 번호판에 금이 여러 개가 있고 조금 긁힌 자국이 생겼다. 앞 차를 살펴보니 크게 흔적이 남지는 않았다. 그런데 내 차가 앞 차를 받으면서 그 차가 밀려서 또 그 앞에 주차된 차를 받았는데 그 까지는 가 보기 두려웠다. 일단 사주경계 자세를 취했다. 다행히 주변에 아무도 눈에 띄지 않는다. 조금 전에 뭐라고 지껄이며 지나가던 차량도 다른 데로 가 버렸다. 다시 한번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후 신속하게 내 차에 올랐다. 시동이 정상적으로 걸리는 걸 보니 차 기능에는 손상이 없는 것 같았다.

 차를 뺐다. 그리고 방향을 틀어서 신속하게 사고 장소를 이탈하였다. 집으로 돌아오려고 생각하니 너무 억울했다. 얼마 전에 산 차량을 이미 기스를 내다니. 주차장을 돌아서 사고 낸 지점 반대쪽으로 가니 마침 차 세대는 들어갈 만한 공간이 하나 눈에 띄었다. 그 곳으로 차를 대었다.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내가 차 두 대 될 공간의 중간 지점에 엉성하게 주차를 해 두고 있었다. 여기서 차를 제대로 대기 위하여 전 후진을 하다가는 뒤로 지나가는 차량들과 또 접촉사고 나기 알맞은 장소가 그냥 차문을 담궈 버렸다.

Outlet 안으로 들어갔다. 몇 군데를 들러봤지만 마음이 불안해서인지 별로 눈에 들어오지를 않는다. 아동복을 싸게 파는 Gap이라는 곳으로 가서 초은이와 다민이 옷을 한 벌씩 샀다. 그리고는 주차 미터기에서 요금을 내고 확인증을 도로 받아서 차량으로 돌아왔다. 주차장을 나오는 길에 요금확인을 하는 미터기 앞에서는 차를 정확히 잘 대었다. 창문을 열고 스티커를 들이밀기 충분한 공간 확보가 되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또 문제였다. 이 곳 주차장은 출입구를 경계로 양쪽으로 주차장이 있으므로 주차장을 나오면서 바로 우회전을 해야 바깥으로 나올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그만 직진을 해버렸다. 반대편에 있는 주차장으로 향한 것이다. 다시 주차권을 뽑는 기계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오늘 정말 일이 안 풀린다. 뒤를 돌아보니 바로 뒤로 차들이 줄을 서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다시 돈을 낼 수야 없다. 일단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오른손을 들어 뒷차에다 빽을 하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알아들었건 못 알아들었건 일단 후진 기어를 넣고 슬쩍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었다. 뒤 차들이 황당했으리라. 하지만 바로 뒤차와 충돌하지 않을 정도의 공간을 확보 후 다시 전진, 후진을 거듭한 끝에 겨우 나오는 방향으로 차를 돌렸다. 뒤에 서 있는 차의 운전자 중에는 창문을 열고 욕을 하는 놈들도 있었지만 무시했다. 니들은 여기 붙어 있는 이 신성한 L자가 안 보이냐? 거기다 난 여기 초행길이란 말이다. 하여튼 조금은 창피하니까 신속하게 차를 몰아서 그 곳을 탈출했다.

돌아오는 길은 가는 길과는 달리 헷갈렸다. Swindon입구에서 Outlet까지는 Round about이 4개가 있는데 세 번째 까지는 문제없이 온 것 같다. 그런데 네 번째에서 엉뚱한 쪽으로 방향을 틀고 말았다. 아무리 가도 눈에 익을 지형지물이 보이질 않는다. 1시간이 넘게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시내를 헤메다가 겨우 A420, Oxford라고 씌어진 표지판을 발견하고 길을 잡아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2시가 넘었다. 식사시간을 또 놓쳐버렸다. 아침을 굶어서 봉지라면으로 겨우 때웠는데 이게 또 무슨 꼴이람. 할 수 없이 차를 몰고 MacDonald로 갔다. 오늘은 빅맥 말고 치킨이 들어있는 것과 콜라 한잔을 시켜 먹었다. 이제 가게에서 쓰는 영어는 제법 알아들을 수 있다는 점이 그래도 다행이다.

식사 후에 들어오니 너무 피곤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침대에 누워버렸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니 저녁 8시가 다 되었다.  이런 또 저녁 굶게 생겼다. 급히 서둘러서 식당으로 내려가니 막 음식을 치우는 참이었다. Sorry! I'm late. 다행히도 들여갔던 음식 몇 가지를 다시 내 와서 친절하게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나의 식사 끝나기를 기다리는 여러 사람들의 눈총을 고려할 때 느긋하게 식사하기는 글렀다. 몇 가지를 담아왔던 허겁지겁 1분 만에 식사를 마치고 일어섰다.

오늘은 제대로 되는 일이 없는 날이다. 이런 날은 그냥 방안에서 잠자는 게 최고다. 곧바로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낮에 길게 잤기 때문에 잘 찾아오지 않는 잠을 달래어서 겨우 눈을 감을 수 있었다.


<Monday, 02/02/2004>
오전의 일과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힘들고 신경쓰였던 일들이 습관이 되면서부터는 의식하지 않는 상태에서도 자동적으로 흘러간다. 아침의 달리기, 샤워, 아침식사, 오전수업, 점심식사... 듣기 힘들었던 강사의 발음도 이젠 눈치까지 섞으면 나름대로 높은 확률을 가지고 이해할 수 있고, 누군가 말을 걸어와도 두려움은 없다.

다만 이런 상태가 처음 시작할 때 가졌던 신선함과 호기심을 점점 죽여간다는 생각도 지울 수가 없다. 어차피 모든 일이 그럴 것이다. 처음에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일을 시작하고 어느 단계를 지나 익숙해 지면 이제는 편안함이 주어지는 대신에 신선함은 사라지는 것. 일이건 인간관계건 모두 만사의 이치가 그러할 진대.

수업시작 전에 Margaret에게 가서 지난 주에 HSBC에서 요구한 Confirming Letter를 써 달라고 부탁했다. 이 곳 주소를 물었다. 기숙사에 살고 있다고 대답했더니 조금 곤란한 표정이다. 그러나 아직 집을 구하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내 입장을 설명했더니 그 주소로 해서 Letter를 써 주겠다고 한다.

첫 수업이 끝나고 다음 시간이 시작될 무렵에 Margaret이 나를 찾았다. Confirming Letter를 전해 주려나 보다 하고 찾아갔더니 그게 아니었다. 평상시에는 웃으면서 정답게 내 이름을 불러주는 친절한 아줌마인데 얼굴에 웃음기가 없길래 별로 안 좋은 소식인 줄 알아보았다. 열흘 전 쯤에 내가 신청한 Familes Quarters(관사) 입주가 곤란하다는 DHE측의 통보가 왔다는 것이다. 여분의 관사가 없기 때문에 미안하지만 관사를 내 줄 수 없단다. 설마 했는데 집 문제가 현실적으로 벽에 부닥쳤다. 앞으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지 난감하다.

Margaret이 소식을 전해주면서도 딱하다는 표정이다. 그리고는 내게 언제 가족이 오느냐, 어느 정도 수준의 집을 원하느냐, 어느 지역이면 좋겠느냐 등 몇 가지를 물었다. 나는 2월 16일에 가족이 여기 도착할 예정이고 학교에서 가까운 Watchfield나 Shrivenham지역에 3bedroom 정도로 600-700파운드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고 얘기를 해 주었다. 그랬더니 자기가 잘 아는 Estate Agent(복덕방)에 전화를 해 주었다.

한 참을 통화하고 나더니 내가 원하는 정도의 집은 이 지역에서는 나와 있는 게 없단다. 아무래도 조금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Swindon이나 Faringdon지역으로 가야할 것 같다는 얘기를 덧붙이며 원한다면 그 지역의 복덕방에 집을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Thank you! 내가 얼굴을 마주보면서는 어느 정도까지 의사소통이 가능하지만 전화통화는 아직도 너무 어렵다. 더구나 영국에서의 집 문제는 전혀 모르기 때문에 도움을 받는 게 좋을 것 같다. 일단 나는 조금 늦었지만 수업에 참가하고 수업이 끝난 후에 다시 찾아 오라고 한다.

두 번째 시간은 나와 친한 Sue의 시간이었지만 집 문제랑 은행 계좌 문제, 직무훈련 교섭 등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산적한 문제들을 생각하느라 수업이 잘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Margaret에게로 갔다. 자기가 서너 군데 전화를 했는데 아무래도 근처에서는 집을 얻기 어렵고 몇 군데에서는 내일 오전 중으로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단다. 확정적이진 않지만 그 정도 신경 써 준 것만 해도 너무 고맙다. 일단 배중령과 이 문제를 다시 한번 상의를 해보고 내일 결과를 보고나서 앞으로의 일을 결정하기로 마음 먹었다.

일단 수업이 끝나자 마자 Margaret이 작성하여 준 Letter를 들고 Swindon의 HSBC로 차를 몰았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길이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더구나 교통사고 전과 1범 아닌가? 이젠 별로 거칠 것도 없다. 항상 주차하던 역 앞의 주차장으로 갔다. 아뿔싸! 만차다.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하나도 없다. 난감하긴 했지만 저번에 지도에서 보았을 때 Town Centre근처에 유난히 P자가 많이 눈에 띄었던 것이 기억나서 일단 차를 돌려 다른 주차장을 찾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만만치만은 않다. 한참을 차를 몰고 이리 저리 헤메다 겨우 주차장 하나를 발견하고 그리로 돌진하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건 주차빌딩이다. 버스터미널과 붙어 있는 주차건물인데 3층 정도 높이를 올라가서 주차를 하여야 했다. 알다시피 대부분의 주차건물의 올라가는 길이 나선형으로 돌면서 올라가도록 되어있는데 여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의 운전실력을 믿는 수 밖에. 일단 핸들을 감고 엑셀을 밟았다.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모르지만 상당히 어지럽다. 토하기 일보 직전에 주차장이 앞에 보였다. 다행이다. 일단 넓은 공간을 이용하여 주차를 하였다. 이 곳도 역 앞 주차장과 마찬가지로 시간당 80펜스의 요금이다. 요금을 지불하고는 버스터미널을 이용하여 HSBC로 갔다.

은행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많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그 틈에 끼어 10분정도를 기다리다 Desk에 Confirming Letter를 제출하였다. 그런데 올 때마다 근무자가 바뀐다. 할 수 없이 또 어눌한 영어로 내 사정을 설명해야했다. 다행히 먼젓번에 여권 사본이랑 계좌개설신청서를 제출한 상태여서 설명이 어렵지는 않았다. 아가씨가 알았다고 하면서 집에 가서 기다리면 며칠 내로 계좌번호와 카드를 보내 주겠다고 한다. 이제 겨우 은행 문제는 해결이 되는 것 같다.

시간이 좀 남길래 몇 군데를 돌며 Window shopping을 하였다. 디지털 카메라와 캠코더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가격을 살펴보니 만만치가 않다. 일단 카타로그만 몇 개 집어서 가방에 챙겼다. 다음에 Mobile Phone를 살펴보았다. 카메라가 달린 최신형은 300파운드가 넘는다. Nokia에서 나온 흑백도 거의 제일 싼 것이 60파운드 정도 한다. 이것도 지금 당장 사기에는 부담스럽다. 가족들이 온 후에 필요한 지 여부를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였다.

일단 집으로 돌아오기로 하고 주차장으로 갔다. 내가 없는 사이에 차들이 몇 대 더 들어왔나 보다. 내 옆으로 모두 차들이 포진하고 있다. 왼쪽은 흰색 벤츠이고 오른쪽은 검은색 도요타 승용차다. 나의 운전 실력상 나는 전진 주차를 하였고 다른 차들은 후진으로 가지런히 주차를 시켜 놓고 있었다. 시동을 걸고 후진을 하였다. 공간이 그리 넓지 않았기에 일단 핸들을 이빠이 돌리면서 후진을 시도 하였다. 뒤쪽으로 차가 오는 지가 신경이 쓰여서 조금 빠르게 엑셀을 밟았다.

차가 스스르 뒤로 빠진다. 어라! 그런데 아무래도 차 앞머리가 옆 차에 닿을 것 같다. 그러나 판단이 너무 늦었다. 이미 내 차의 앞 부분이 왼쪽 벤츠의 앞부분과 Kiss하고 있었다. 쿵하는 소리는 없었지만 찌--익하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일단 차는 빠져 나왔다.

시동을 끄고 내려서 살펴보니 내 차의 앞범퍼 왼쪽 부분이 긁힌 자국이 생겼고 벤츠도 기스가 좀 났다. 벤츠는 차가 반짝이는 상태로 보아 뽑은 지 그리 오래되진 않은 것 같다. 온통 하얀색 차여서 내 검은 색 범퍼가 조금 묻고 자세히 보니 일부는 Kiss Mark가 생겼다. 원 상태로 수리하려면 돈 좀 들게 생겼다. 여기 영국은 인건비가 아주 비싸서 차량 정비를 하면 그 비용이 상당하다고 한다. 아마 4,000파운드 내차 가격의 반은 들 것 같다.

이 상황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딱 하나다. 그대로 행동했다. 일단 사주 경계, 다음은 잽싸게 승차 후 시동, 마지막으로 범죄현상에서 신속히 이탈. 내려올 때는 올라갈 때보다 나선형 출입구를 통과하기가 훨씬 힘들었지만 일단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이 곳을 신속하게 빠져나가는 것이 제일 시급한 일이므로 본능적으로 운전이 되었다. 다행히도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않고 현장을 무사히 빠져 나와서 기숙사로 돌아왔다. 나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전과 2범이 되어 있었다.

돌아와서 영어공부를 조금 하다가 저녁식사를 하자마자 배중령 댁에 전화를 걸고 방문을 하였다. 그리고 DHE에서 입주불가 통보가 왔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의했다. 배중령은 일단 DHE에 다시 한번  Appeal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한다.

 내가 관사를 할당받지 못한 이유가 원래 자격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지금은 단순히 어학연수를 받고 있어서 안되고 나중에 석사과정에 들어가면 할당이 되는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원래 자격이 없다면 2년 동안 지낼 집을 구해야 하고, 그렇지 않고 9월이라도 집이 나온다면 불편하지만 근처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생활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일단 내일부터 집을 알아보기로 하였다.

어제와 오늘은 별로 유쾌하지 않은 일들만 계속되는 것 같아 기분이 별루다. 방에 돌아왔지만 이것 저것 잡생각이 많아서 공부가 되지도 않는다. 차를 몰고 근처를 한바퀴 돌고 왔지만 별로 기분이 나아지지 않아서 그냥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