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긴 생각 짧은 글/2. 비스듬히 세상 보기

좌충우돌 촌놈의 영국 유학기(9)

by 무딘펜 bluntpen 2008. 9. 4.

제2부 : 자리를 잡다.

<Wendesday, 28/01/2004>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일어나자 마자 조깅을 끝내고 샤워를 마치고 나니 일곱 시다. 샤워를 하고서 돌아오며 창밖을 보니 나의 애마가 늠름한 모습으로 자랑스럽게 서 있다. 아침식사가 7시 45분부터 시작이니까 시간이 좀 남는다.

일단 간단히 옷을 차려 입고 주차장으로 나갔다. 차 키가 묵직하니 느껴진다. 일단 올라타고 시동을 걸었다. 엑셀을 몇 번 밟아보니 정말 미세한 힘에도 민감하게 작동한다. 브레이크도 밟아본다. 몇 번씩 밟으며 감각을 익힌 후 전진기어를 넣었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자 차가 스스로 움직인다. 조심하여 일단 주차장을 빠져 나왔다. 다행히 아직 차는 거의 다니지 않는다.

어제 배중령과 같이 연습했던 코스를 따라 천천히 차를 몰아갔다. 시속 20마일 정도를 유지하면서 운전하니 전혀 위험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30분 정도를 방향을 바꾸어 가면서 이리 저리 캠퍼스를 훑고 다니니 조금 감각이 생긴다. 연료 게이지는 여전히 불이 들어와 있다. 다른 것은 문제가 없는데 아직 백미러를 볼 정신이 없다는 것이 조금 문제다. 일단 연습을 마치고는 아침식사를 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학교로 가려는 데 mobile phone이 울렸다. 배중령이 급한 연락사항이 있을 때 사용하라면서 나에게 빌려 준 노키아에서 만든 흑백 핸드폰이다. 우리나라의 시티폰 정도 크기 - 최석숭씨 핸드폰과 비슷한 - 이다. 전화를 받아 보니 오늘 자기가 오후에 수업이 없으니 Swindon 시내를 한번 다녀오자는 것이다. 이 곳 Shrivenham은 300호 정도밖에 안되는 작은 마을이라서 대부분의 문화생활이나 물건 구입은 Swindon을 이용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 곳 지리를 확실하게 익혀 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찬성이다. 나를 위하여 시간을 내 주겠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지.

  나의 애마를 몰고 Language Centre로 향했다. 어려울 것 하나도 없다. 다만 연료 게이지에 들어온 경고등이 자꾸 맘에 걸린다. 하여튼 차가 움직이는 데는 문제가 없길래 조심조심 주차를 시켰다. 주행보다 역시 주차가 어렵다. 두 번을 전.후진을 거듭한 끝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강의실에 들어가서는 사람들에게 나의 애마를 자랑하였다. 내가 보기에도 주차장에 서있는 차 중에서 제일 폼이 나는 것 같다. 그리고 연료를 넣을 수 있는 제일 가까운 곳을 물었더니 이구동성으로 Sainsbury까지 가야 하는데 좀 멀다고 한다. 옆의 폴란드 애기 Dorota가 지도까지 꺼내서 설명을 해 주는데 그리 멀어 보이지는 않는다. 배중령한테 얘기해서 같이 가면 될 것 같다.

  수업시간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일단 내 차에 마음이 가 있어서 듣는 둥 마는 둥 수업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자랑스럽게 차에 올라서 안전벨트를 맨 후에 차의 시동을 걸었다. 부르릉-- 차가 가볍게 떨렸다. 그리고는 끝이었다. 어라! 이상하네 다시 키를 살짝 돌렸다. 부르릉--- 마찬가지다. 연료게이지 외에 오른쪽에 경고등이 하나 들어와 있다. 마음이 조급해 져서 몇 번이나 계속 시동을 걸려고 했지만 요지 부동이다. 엄청 속상했다. 그러나 할 수 없다. 밧데리가 나갔거나 어딘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 어떻게 할지 막막하다.

일단 배중령한테 전화를 했다. 통화 중이다. 뭔가 크게 고장이 났다면 견인을 해야할 텐데... 일단 가방을 뒤져서 차량보험회사 전화번호와 Policy Number를 확인하였다. 배중령한테 통화를 해보고 여의치 않으면 보험회사에 연락하여 견인을 하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힘없이 터덜터덜 걸어서 기숙사로 돌아왔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이니 일단 점심식사를 하였다. 별로 밥맛이 없어서 계란 후라이 두 개와 빵 한조각만 먹었다. 방으로 돌아와 차량 매뉴얼을 꺼내 놓고 살펴보니 연료 게이지의 경고등은 연료가 8리터 남았을 때부터 켜지고, 아까 오른쪽에 들어온 경고등은 Gegerator와 관련된 경고등으로 되어 있었다. 그럼 발전기가 뭔가 잘못된 건가?

일단 배중령 집에 전화를 하였다. 글로리아가 전화를 받는다. 그런데 배중령이 기다리다가 지쳐서 기숙사로 직접 오기 위해 출발했다는 것이다. 급하게 옷을 차려입고 밖으로 나왔다. 아마 배중령은 어제 내 차를 세워둔 주차장으로 올 것이다. 그리로 뛰어갔다. 그리고 주위를 살펴 보았으나 배중령의 하얀색 Volvo는 보이질 않는다. 한참을 기다렸으나 만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다시 기숙사로 들어가 전화를 하였더니 방금 들어왔다가 다시 나갔단다. 이거 오늘 일진이 왜 이래?

부슬부슬 내리는 찬비를 맞으며 한참을 서 있다가 혹시나 하여 Language Centre에 있는 주차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저쪽에서 누군가 비옷을 입고 자전거를 몰고 오면서 아는 체를 한다. 자세히 보니 배중령이다. 차를 몰고 온 게 아니고 자전거를 타고 왔으니 내가 알아 볼 수가 없지? 하여튼 반가웠다. 시동이 안 걸리고 Generator에 경고등이 들어온다고 설명했더니 상당히 걱정을 하면서 일단 차로 가보자고 한다.

배중령이 차에 올라서 시동을 거니까 부르릉--- 우웅--- 하더니 차가 시동이 걸리는 것 아닌가? 이 놈의 차가 주인을 몰라보고 반항을 하는 건가? 자리를 옮겨 앉아서 내가 다시 시동을 걸어 보았다. 부르릉--- 역시 안 걸린다. 배중령이 웃으면서 키를 끝까지 돌리라고 한다. 손목에 힘을 약간 더 주니까 부르릉--- 웅---하고서 시동이 걸려 버린다. 이런--- 내가 키를 반까지만 돌리고 시동 안 걸린다고 난리를 친 거구만.

 서로 마주 보면 한참을 웃다가 일단 배중령이 운전을 하고서 Swindon을 향했다. 국도인 A420도로를 타고서 15분 정도 달리니 Sainsbury가 나왔다. 우리나라의 대형 식품매장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주로 판매하는 곳이다. 일단 계산대로 가서 Nectar Card라는 것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백화점 카드 비슷한 역할을 하는 카드다. 그리고 나서 근처의 주유소로 가서 연료를 만땅 채웠다.

나보고 직접 주유를 해 보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별도의 주유원이 없다. 자기가 직접 차에 기름을 넣고 카운터로 가서 계산만 하는 방식이다. 주유기를 잡고 조심스레 연료를 넣으니 50리터가 들어간다. 36파운드 어치다. 우리나라 돈으로 75,000원정도이니 좀 비싸다.

주유소 사무실로 들어가서 먼저 L자 표지를 하나 샀다. 6.5파운드다. 우리나라의 초보운전 표지와 같은 것이 이곳의 L자 마크이다. 하얀색 바탕에 붉은색 글씨로 L자가 새겨져 있는데 아마도 Learner of Car Driving의 표시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마크만 달면 이곳에서는 도로의 왕이라고 한다. 주위의 차들이 스스로 알아서 피해 준다고 한다. 그러니 차라리 Lord of Load의 약자가 맞지 않을까 싶다. 카운터로 가서 L자 표지를 내밀고 내가 주유한 탱크 번호를 주유기 번호를 얘기 해 주니 계산을 하여 준다. 

주유를 마치고 다시 Swindon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Sainsbury 바로 앞은 지름이 10미터 정도 되는 Round-About이 있다. 이 것은 우리나라의 로터리와 비슷한 교통체계인데 서너 개의 방향에서 Round about에 진입한 차량이 그곳을 돌아서 자기가 원하는 길로 빠져나가는 방식이다. 신호등이 없는 대신 이 Round about이 교통정리를 해준다. 이 곳에서의 절대 규칙은 무조건 오른쪽에 있는 차량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밀리고 바빠도 오른쪽에 차가 오는 한은 Round about에 진입하지 못한다. 신호등에 익숙해져 있는 나로서는 상당히 혼란스러운 체계였다.

Swindon은 Sainsbury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예전에는 철도 차량을 만드는 공업도시로 유명한 곳이었다는 데 지금은 조금 쇠락한 기분이 감도는 도시다. 인구는 30만 정도 하니까 우리나라의 군청 소재지 정도 되는 수준이다. 일단 이 도시에서 제일 번화하다는 Town Centre로 갔다.

가는 도중에 몇 번이나 Round about을 만났다. 통과 요령은 동일하다. Town Centre에 도착하여 Swindon 역 근처의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무료 주차장은 없고 시간당 80p(펜스) 정도를 받는다. 우리 돈으로 180원 정도로 생각하면 되는데 여기는 따로 관리요원이 없고 요금 지불기에 가서 돈을 넣고 스티커를 받은 후에 차량에 부착하면 된다. 그냥 공짜로 주차할 수도 있지만 가끔씩 도는 순찰에 적발될 경우 80파운드를 내야 하므로 조금 위험부담이 크다. 그냥 돈을 내고 맘 편하게 일을 보는 게 훨씬 낫겠다.

Town Centre는 그래도 조금 도시다웠다. 백화점도 있고 은행과 술집과 서점과 각종 가게들로 북적였다. 일단 제일 급한 일이 은행계좌를 여는 것이므로 근처의 HSBC 지점으로 갔다. HSBC는 홍콩 상하이 은행의 약자로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크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세계적인 은행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근처에 유명한 영국의 Lyoid은행이 있었지만 배중령이 거기와 거래를 해 본 결과 일 처리가 느리고 불친절하다고 해서 HSBC와 거래하기로 하였다.

Desk로 가서 나의 더듬더듬 영어로 계좌를 열고 싶다고 했더니 아가씨가 뭐라고 한참 지껄이는데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할 수 없이 배중령이 나섰다. 요지인 즉  지금 현재 다니고 있는 곳이 어디고, Passport를 가지고 왔느냐는 거다. 현재는 Language Centre에서 영어를 배우고 있고 9월부터 본 과정에 들어간다고 말해 주며 Admission Letter를 보여 주었다. 그런데 가방을 뒤져 보니 아차! 여권을 안 가지고 온 것이다. 다음번에 여권을 가지고 방문하면 20분 내로 계좌를 열어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서 철수했다.

 주변의 백화점과 전자제품점을 들리고 Tesco라는 우리의 E-mart와 유사한 큰 슈퍼마켓에 들러서 몇가지 물건을 산 후에 다음 코스는 이곳에서 유명하다는 Outlet으로 향했다. 이 곳은 19세기에 열차제조공장으로 쓰이던 어마어마하게 큰 건물을 미국인이 사서 창고형 매장으로 개조한 곳인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품들을 싼 값으로 살 수 있는 곳이라 런던이나 맨체스터에서도 쇼핑객들이 와서 들끓는다는 곳이다.

특히 크리스마스 세일기간인 1월 중에는 겨울제품들이 거의 땡처리 수준의 가격으로 나오기 때문에 잘만 하면 정말 괜찮은 물건들을 싼 가격에 살 수 있다고 한다. 주로 의류나 신발, 가방, 그릇 종류가 주종이었다. 오늘은 옷가게를 중심으로 훓어 보기로 하였다. 버버리, 이브생 로랑, 팀버랜드 같은 명품으로 알려진 제품들이 쭉 진열되어 있었다.

 가게를 돌면서 가격을 보니 우리나라의 옷값과 별 차이가 없다. 영국에서 유명한 버버리는 여성코트류가 150파운드 정도의 가격이다. 여기는 상표값을 하느라고 여간해서는 세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정도의 가격이라고 한다. 양복도 보통 70-80파운드 정도면 입을 만한 옷을 살 수 있었다. 여성의류는 보통 20파운드 정도, 아동의류는 그것보다 싼 10-15파운드면 살 수 있다. 생각보다 싼 가격이다.

신발가게에 들어가니 Clark가 두켤레 30파운드에 팔고 있었다. 마침 내가 Casual하게 신을 수 있는 신발이 없어서 냉큼 사버렸다. 튼튼하게 생긴 것이 10년은 신을 수 있을 것 같다. 등산용품 전문점에 가니 방수와 방풍은 물론 땀 배출이 완벽하게 된다는 고아텍스로 만든 등산복이 100파운드에 팔고 있었다. 입어보니 정말 좋아 보인다. 고아텍스 외에도 방수제품들이 정말 많다. 영국은 특히 비가 자주 오는 곳이라고 하니 하나 장만하고 싶었지만 일단은 비용을 생각하여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후퇴하였다.

바깥으로 나오니 눈이 엄청나게 내리고 있었다. 바람과 함께 눈보라가 몰아치니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30미터 정도를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여 차에 타니 차도 길도 온통 눈에 뒤덮여서 옴짝달싹을 할 수가 업다.  히터를 가동시키니 10분만에 유리에 붙어 있는 눈이 녹아 내리고 겨우 운전이 가능했다.

거리로 나오니 도로에는 가득 눈이 쌓여 있는데 차들이 전부 거북이 걸음이다. 갑자기 내린 폭설이라서인지 체인을 감고 다니는 차는 한 대도 눈에 띄질 않는다. 시속 30마일로 조심조심 운전을 하여 평소 30분 거리를 1시간 30분만에 기숙사에 도착하였다. 

배중령을 보내고 방에 들어오는 6시가 조금 넘었다. 얼른 옷을 갈아 입고 식당에 내려가 저녁식사를 맛있게 하였다. 오늘은 여러 군데를 돌아다녔더니 유난히 배가 고파서 뭐든지 맛있었다.  특히 아스파라가스로 만든 수프는 맛이 고소하고 먹을 만 했다. 오늘도 결국은 저녁운동을 못하고 말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저녁식사를 하고 Friends를 두 편 정도 시청하고 나니 너무 졸렸다. 샤워도 하기 귀찮다. 시계를 보니 9시 밖에 안 되었지만 졸립다. 녹음기를 침대 맡에 틀어놓고 누워서 조금 듣다 보니 어느새 잠이 들었다.


<Thursday, 29/01/2004>
아침에 일어나니 온통 흰눈으로 덮여 있다. 오랜만에 많은 눈이 내리니 우리라면 상당히 짜증스러울 텐데 여기서는 온통 축제 분위기다. 어린 애들은 금방 내린 눈 위에 발자국 찍기를 하거나 눈을 똘똘 뭉쳐서 눈사람 만들기에 즐겁다. 우리처럼 눈을 굴려서 눈사람을 모양새 있게 만드는 건 잘 모르는 것 같다. 눈을 밟으며 아침 운동을 하였다. 바람은 조금 불었지만 눈이 와서인지 제법 날씨는 포근하다.

차 유리위에 눈이 쌓였다. 조금 녹아서 운전은 힘들었지만 대강 긁어내고는 학교까지 운전을 했다. 내 실력에 2주 후에 고속도로를 타고 가족들을 데려오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연습을 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무조건 차를 몰고 다니기로 하였다.

첫시간의 Callum부터 둘째 시간의 David까지 온통 눈 얘기를 중심으로 한 날씨 얘기였다. 여기 영국에서는 워낙 겨울날씨가 구질구질하다보니 날씨 얘기는 좀처럼 꺼내지 않는 주제인데 오늘은 특별히 기분들이 나는 가보다. 특히 여기는 아랍에서 온 애들이 많은데 이 애들은 난생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눈을 본다고 한다. 거기다가 앞으로도 영영 이런 눈을 못 볼 가능성이 있다면서 수업시간까지 빼먹으며 눈 구경과 눈싸움에 열중이다.

쉬는 시간에는 나도 나가서 잔디밭에 쌓인 눈을 굴려서 조그만 눈사람을 만들었다. 마른 나뭇가지까지 주워다 얼굴까지 완성하고 나니 여러 사람들이 신기한 듯이 구경을 한다. 그 앞에서 조금 잘난 체를 하다가 깜박 두 번째 시간을 조금 늦어 버렸다.

두 번째 시간에도 역시 눈 얘기다. 원래 David는 독해 위주로 강의를 진행하면서 학생들에게 말을 많이 하도록 유도하는 스타일의 강의 방식이라 분위기만 잡히면 거의 한 시간 가량을 더듬거리는 영어들로 화제의 꽃을 피우곤 한다. 나는 눈이 많이 왔을 때 교통체증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한다는 것과 그래서 겨울철에 우리나라에서는 항상 체인을 가지고 다니다가 눈이 오면 이것을 타이어에 씌우고 운행한다는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일본 애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알아 듣지를 못한다. 여기서는 체인 자체를 아예 팔지를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영어로 설명하느라 조금 힘들었다. 일본 애 Sayah의 지원사격을 받아서 ‘Tire chain is made of steel and shaped like as net. When it badly snows, we wear it to the tire and it make the tire less slippery"라는 설명으로 간신히 때워 넘겼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니 제법 눈이 많이 녹았다. 특히 차가 다니는 도로는 거의 눈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차를 몰고 캠퍼스를 몇 바퀴 돌고나니 답답한 생각도 들고 운전이 별거냐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과감하게 정문을 박차고 도로로 진출했다. 그러나 여기 지리는 아직 깜깜이다. 아직 차가 쌩쌩 달리는 국도를 탈 자신은 없고 일단 캠퍼스 옆의 한산한 2차선 도로로 접어 들었다.

뒤에서도 차 한대가 바짝 따라온다. 조금 속력을 내어 보지만 아무래도 불안하다. 일단 옆의 갓길로 차를 뺐다. 그리고 담배를 한 대 피우며 마음을 다 잡아 먹고는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조금 속력을 내어 달려 보는데 앞에서 오는 차가 내 차를 향하여 오는 것 같다. 일단 양 어깨에 힘을 주고 엑셀을 밟았다.

 여기는 마을에서는 30마일 이내로 달려야 하므로 별 문제 없지만 마을을 벗어나면 2차선은 40마일까지 달릴 수 있으므로 다른 차들과 보조를 맞추기에는 내 실력상 좀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마을로 통하는 길은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서 캠퍼스 뒷길로 접어 들었다. 다행히 거의 차가 다니지 않는다. 조금 속력을 내어 보았다. 40마일인데 별 문제가 없다. 앞뒤와 반대 차선 모두 차가 없다. 조금씩 엑셀에 힘을 주었다.

갑자기 차가 부아앙--- 하면서 튀어 나간다. 깜짝 놀라 브레이크... 아무래도 아직 감각이 무디다. 다시 엑셀을 밟았다 브레이크를 밟았다 하면서 일단 발의 감각을 느끼면서 10분 정도를 가니 1Km이상 쭉 뻗은 직선 코스가 나온다. 핸들을 꽉 잡고는 서서히 엑셀을 밟아 나갔다. 40마일...45마일...50마일...55마일... 가슴이 콩닥거리고 손이 떨린다. 차체도 좀 흔들리는 것 같다. 다시 속도를 줄였다.

40마일 정도의 속도는 무난하게 주행할 수 있겠는데 그 이상은 내가 감당하기는 좀 버겁다. 거기다가 여기는 초행길이라 도로 사정을 잘 모르니까 일단 오늘은 시속 40마일을 기준으로 연습하기로 했다. 마을을 서너 개 지났다. 학교를 벗어난 지 이미 30분 정도가 흘렀다. 이제 돌아갈 길이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일단 농장으로 들어가는 좁은 도로로 들어가서 차가 오는지 조심조심하면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오던 길을 하나씩 기억하면서 복귀를 하였다. 복귀하는 길은 조금 자신이 붙어서 인지 약간 여유가 생긴다. 시속 45마일까지는 밟아도 속도감을 견디어 낼 만 하다. 다행히 길은 잃지는 않아서 무사히 복귀를 하였다.

 돌아와서는 밀린 빨래를 하였다. 이번에는 토큰을 두 개 사서 건조기까지 돌려 보았다. 정말 깨끗하게 건조가 된다. 면바지가 주름하나 없이 깨끗하다. 별도로 다림질을 할 필요가 없다. 정말 편리한 세상이다.

 빨래를 마치고 운동까지 하고 나니 6시가 되었다. 저녁식사시간은 7시부터이니 아직 시간이 남았다. 운전 연습 때문에 몸이 근질근질하다. 참으면 병 나겠다. 간편한 운동복 차림 그대로 차에 올랐다. 그리고는 아까 달렸던 길을 다시 한번 달렸다. 이미 눈에 익은 길이긴 하지만 이제는 야간 운전이다. 내 시력에는 30미터 앞을 식별하기도 곤란하다. 차의 라이트도 별로 밝지 않다. 거기다 비가 질척질척 내려서 와이퍼를 작동시킬 수 밖에 없다. 속도를 40마일 이상 내기는 불가능이다. 할 수 없이 상향 라이트를 켰다. 맞은 편에서 오는 차가 거의 없어서 문제는 없었다.

속도를 50마일까지 올려 보았다. 이제는 감이 온다. 아까 보았던 직선 코스에서는 더 밟아 보았다. 오예! 시속 60마일이다.  핸들 잡은 손이 자꾸 떨린다. 할 수 없이 속도를 줄이고 운전을 했다. 낮에 돌아왔던 지점까지 15분 정도에 도달했다. 이왕 왔으니 더 가보자는 생각이다. Go다. 10분정도를 더 가니 Shrivenham 으로 가는 표지판이 나온다. 여기의 표지판은 우리 표지판보다 작을 뿐만 아니라 영어가 선뜻 눈에 들어오지 않아 표지판을 놓치기 십상이다.

 하여튼 일단 그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그런데 조금 더 가니 이런! 국도와 만났다. Oxford에서 Swindon으로 가는 A420 도로다. 도로에는 비가 오는 데도 불구하고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다. 제한 속도 50마일. 시속 80Km다. 그러나 어차피 이 길은 내가 앞으로 자주 다녀야 할 길이고 이제는 뒤로 돌 수 있는 공간도 없다.

그대로 좌측 깜박이를 넣고 국도로 진입했다. 주위를 달리는 차들의 속도가 엄청나지만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앞차의 뒤에 바짝 붙었다. 어둡기 때문에 차선을 보는 것 보다 앞 차를 쫓아가는 것이 훨씬 쉬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앞차가 엄청 달린다. 나도 눈에 힘을 주고 엑셀을 밟았다. 시속 60마일이다. 좌이퍼가 정신없이 좌우로 왔다갔다 하고 나도 아무 생각이 없다.

좌우로 휘는 부분에서는 핸들 제어가 좀 어렵다. 등 뒤로 땀이 흐른다. 히터를 끌 정신도 없다. 오로지 앞 차만 보고 쫓아갔다. 가다보니 Round about이 하나 나온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이 도로가 주도로 일테니 직진이다. 오른쪽을 힐끗 보고는 그대로 엑셀을 밟았다. 코너웍이 잘 안된다. 뒤에 따라오던 차량이 경적을 울린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산 L자 표지를 붙이고 나오는 건데... 하여튼 그대로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5분을 더 가니 또 Round about이 나온다. 그런데 맞은 편으로 내가 첫날 와서 빅맥을 사먹은 MacDonald 표지판이 보이는 것 아닌가? 엄청나게 반갑다. 타지에서 고향친구 만난 것 같은 느낌이다. 오른쪽 차가 빠지기를 기다리며 표지판을 보니 왼쪽길로 빠지면 Shrivenham이다. 일단 왼쪽 깜박이를 넣고 과감하게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아차다. 1Km 정도 거리를 달려도 깜깜하기만 하고 아까 그 방향이 아니다. 5갈래 길 중에서 나는 아주 작은 샛길로 빠져 나간 것이다. 할 수 없다. 내 실력에 턴은 무리다. 또 Go다. 세상 모든 길은 다 통하게 되어 있다는 내 신념대로 천천히 차를 몰고 가면서 표지판을 열심히 살폈다.

5분 정도 가니 왠지 분위기가 익숙한 풍경이다. 아까 복귀하던 길과 만난 것이다. 이 길도 무척 반갑다. 힘차게 속도를 내면서 달렸다. 그런데 앞으로 뭔가가 휙 지나간다. 머리끝이 쭈빗해지며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이런! 산토끼 한 마리가 무엄하게도 내 앞길을 가로질러 간 것이다. 가슴을 쓸어 내리며 조금 더 달리는데 때때로 짐승들이 앞으로 지나갔다. 이곳에서는 야간 운전시에 정말 짐승들을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조금 더 가니 기숙사로 들어가는 문이 나왔다. 드디어 집에 돌아왔다. 거의 7시 30분이 되어 있었다. 식당으로 급하게 내려가서 식사를 마쳤다. 식사를 하고나니 조금 피곤하긴 하지만 오늘 무사히 운전교습을 마친 것이 자랑스럽다.

배중령 집에 전화를 했더니 인터넷 연결중이어서 전화가 불통이다. 집에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일단 슈퍼에 들러서 와인을 한 병 샀다. 특별히 8파운드를 주고 비싼 걸루 샀다. 차를 몰고 배중령 집으로 갔더니 이층 침실에는 불이 켜져 있는데 아래층의 거실에는 불이 꺼져 있다. 이미 식사를 마치고 잠자러 올라갔나 보다. 이미 밤 8시가 넘어 버렸다. 지금 방문하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하고 돌아 오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그냥 집에 들어가면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방향를 틀었다. 그저께 배중령과 가 본 Sainsbury를 한 번 다녀 오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국도로 들어갔다. 이제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다. 와이퍼는 가끔씩 수동으로 조작해 주면 되는 정도다. 차들도 이제는 많이 다니지는 않는다. 시속 50마일로 제한 속도를 지키면서 천천히 엑셀을 밟았다. 눈에 익은 도로고 2차선 샛길보다 도로가 넓어서 오히려 운전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Sainsbury의 Round about에는 15분 만에 도착했다.

여기 통과하는 법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일단 오른쪽을 살피고 과감히 진입했다. 뒤에서 차가 빵빵거린다. 내 핸들조작 실력상 차선을 지키면서 부드럽게 원을 그린다는 것이 어차피 어렵기 때문에 다른 차선을 짓밟으며 지나갔기 때문이다. 당황스럽지만 일단 270도를 돌아서 길을 접어 들었다. 어! 그런데 이 길이 아닌가벼? 또 두갈래 길이 나오는데 먼젓번에 왔던 길이 아니었다.

 오른쪽으로 갈까 왼쪽으로 갈까 망설이는데 뒤에서 또 빵빵거린다. 그런데 갑자기 쿵--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진동이 느껴졌다. 두갈래 길 중에서 선택을 하지 못해서 갈래길의 중간 지점에 있는 보도 블록이 깔린 부분을 앞쪽 범퍼가 올라 탄 것이다. 일단 뒤를 돌아보며 약간 후진을 하고서 오른쪽 길로 빠지니 약간의 공간이 있었다. 차를 세워놓고 살펴보니 범퍼에 긁힌 자국이 생겼다. 내 몸 다친 것처럼 가슴이 쓰렸다.

일단 담배 한 개피를 피워 물고 한참동안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대로 복귀할까도 생각했지만 차까지 상처를 입히고 여기까지만 왔다 간다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일단 온 김에 Swindon도 갔다 와야겠다.

 차 시동을 걸고 잠시 앉아서 Swindon에 진입하는 방법을 머릿속으로 구상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엑셀을 밟고 용감하게 Round about으로 돌진하였다. Swindon 표지판은 쉽게 눈에 띄었다. 그 방향으로 핸들을 꺾는데 또 뒤에서 빵빵거린다.

이번에는 깜박이를 깜박하고 넣지 않아서 뒷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은 모양이다. 내가 오늘 완전히 도로의 무법자가 되어 버렸다. 하여튼 일단 Round about과 4거리 세군데가 연속된 복잡한 도로를 온갖 수모를 무릅쓰고 뚫고 나가니 Swindon 표말이 보였다. 일단 성공이다. 시내니까 시속 30마일을 준수하며 진행하니 시내에서 만나는 첫 번째 Round about이 보인다. 이 정도면 되었다 싶어서 Round about을 타고 360도 회전을 하여 복귀길에 올랐다.

복귀하는 길은 시속 55마일을 유지하면서 달렸다. 제한속도의 5%를 넘는 경우 여기도 무인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서 딱지를 끊게 된다. 외국인의 경우 일정 이상 속도위반이면 법정에까지 가야 한다고 들었기 때문에 조심조심 운전했다. Swindon에서 Shrivenham까지는 무인카메라가 두군데 설치되어 있다. 카메라 설치지점에서 1.5마일 정도부터 0.5마일 간격으로 세 개의 카메라 그림이 서 있고 속도측정지점에는 바닥에 흰선으로 표시가 되어 있다. 찍히면 번쩍하고 카메라에서 불이 들어오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기숙사에 돌아오니 이미 밤 10시가 가까워져 있었다. 몸은 거의 파김치 상태다. 간단히 씻고서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