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 백수의 일상사

내 삶의 오래된 흔적

by 무딘펜 2018. 6. 10.

1.
집안 정리를 하다가 구석에서 발견한 진짜 오래된 자명종! 결혼하여 부천에서 첫 살림을 차렸던 1990년 즈음에 샀던 것이다. 내가 서울에 있는 직장까지 두 시간 가까이 출퇴근을 했어야 했기에 이 자명종의 역할은 우리 가족의 밥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었다.(너무 과장인가? ㅎㅎ)

뽀얗게 탄 먼지와 때를 물티슈로 한참을 문지르니 겨우 옛 모습을 되찾는다. 오랫만에 만났지만 하나도 안 변한 옛친구를 만난 듯 반갑다.

2.
이 시계와 만났던 그 시절, 시골에서 올라와 막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나와 대학을 갓 졸업한 아내가 만나 낮에도 전등불을 켜야했던 지하 단칸방에서 겨우 신접 살림을 차렸다.

옷장 하나, 간이 화장대 하나, 냉장고와 가스렌지, 밥상과 이불이 살림의 전부였던 그 시절, 그래도 그곳에서 우리는 신혼의 단꿈을 꾸었고 큰 애가 태어났다. 2년 정도를 살다가 내가 군대에 가는 바람에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

3.
여러가지로 부족한 것 투성이였지만 가장 불편한 건 화장실이었다. 지하에서 1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어른은 몸을 웅크려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그 좁디좁은 화장실은 일을 본 후 바가지로 물을 떠서 뒷처리를 해야했던 재래식인데다가 남녀 공용이었다. 화장지도 없어서 신문지로 대신했던 그 곳에서 갓 시집 온 새색시였던 집사람이 얼마나 불편했을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하다.

4.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이 꿈만 같다. 하지만 어려웠던 그 시절에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젊음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내 삶에 대하여 감사하며 살 수 있는 건 아마도 나의 삶에 그런 어려운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라면... 젊음이 넘치던 그 시절의 나이만 돌려준다면 나는 기꺼이 그 시절로 돌아가서 좀 더 열심히 살아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