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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짧은 생각들

싸우지들 마세요

by 무딘펜 2022. 10. 26.
(노자에 따르면) 세상을 제대로 다스릴 사람이라면 자기 스스로 귀히 여길 보물이 없어야 한다. 자기가 꿈꾸는 세상이 옳다 하여 그 세상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이를 벗어나면 갈등과 분열, 혼란과 파국이 그의 책임 하에 찾아올 것이다. 무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외곬은 아니어야 나라 살림을 맡길 수 있지 않겠는가!

박종인, <세상의 길 위에서 내가 만난 노자> p.33

1.
노자를 편애하면서 30년 가까이 여행기자라는 특이한 경력으로 살아온 박종인 씨가 쓴 책이다. 2003년 출판되어 품절된 것을 중고로 구했다.

여행을 좋아하는데다가, 제대로 이해는 못하지만 무조건 노자를 좋아하기 때문이다(게으른 성격 탓에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오히려 탈이 난다는 노자의 생각이 내 맘에 딱 든다)

2.
자기가 생각하는 옳은 세상을 꿈꿀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그것을 타인에게 전하고, 공유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까지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순간, 나아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를 적대시하는 순간부터 '갈등과 분열, 혼란과 파국'이 생겨난다. 매우 익숙한 장면이다.

3.
여러 사람 앞에 나서서 일하는 사람은 최소한 외곬은 아니어야 한다. 그건 작은 취미 모임 회장이건, 동창회 총무건, 장관이나 대통령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생각을 말하는 입보다는 다른 이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귀를 더 크게 열어야 하는 자리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되는 요즘이다.

4.
같은 맥락으로 이 책에서 인용된 버틀란트 러셀의 이야기도 마음에 와 닿는다.

"불관용과 편협함, 그리고 방향이 다소 잘못되었더라도 그것을 그대로 밀고 나가는 정력적인 행동 자체가 존경할 만한 것이라는 믿음으로 인해 세계가 고통받고 있다."

5.
위에서 박종인 씨가 인용한 도덕경 구절의 원문은 이러하다.
不尙賢使民 不爭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不見可欲 使民心不亂
是以聖人之治
虎其心 實其腹 弱其志 強其骨,
常使民無知無欲使大知者不敢爲也爲
無爲則無不治.

이 글에서 유심히 보게 되는 것은 정치의 요체로 노자가 내세우는 虎其心 實其腹 弱其志 強其骨이다.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게 하며, 그 배를 든든히 채워주고, 바라는 바를 실현하고자하는 욕구를 절제하게 만들며, 건강하고 튼튼한 삶을 영위하게 하는 것.

오늘날 정치가 가장 실패하고 있는 것이 경제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弱其志가 아닌가 생각한다. 양보와 타협없이 서로 자기의 주장(志)이 옳다고 다투고 있는 모습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不尙賢使民 不爭" 세상이 분쟁으로 휘말리지 않게 하려면 똑똑한 사람을 추켜 세우지말라는 것이다. (헛)똑똑한 사람들이 나서서 분쟁을 해결하기보다는 분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는 걸 우리도 알지만 혹시나 하고 추켜 세우면 역시나!

이 부분도 바로 앞에서 말한 弱其志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세상의 한 면만 보는 사팔뜨기들이 자기의 志를 실현하기 위해 세상을 시끄럽게 만드는데, 그들의 면면을 뜯어보면 소위 똑똑한 자들이니 말이다.

정치를 하시는 분들이여, 노자가 말한 정치의 네 가지 요체를 행하기 힘들거든 제발 虎其心 弱其志라도 자기자신에게 비추어 봐주십쇼.

6.
이 글이 특정한 사람들, 특정한 정당이나 정부를 꼬집어 비판하고자 쓴 글이 아님을 굳이 밝히고 싶다. 참고로 이 책은 2003년도에 출판되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