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27/01/2004>
이제는 이 생활이 습관이 많이 들었다. 아침에 눈이 번쩍 떠져서 시계를 보니 여섯 시다. 조금 후에 알람이 울렸다. 운동복을 갈아입고 조깅을 나섰다.
오늘은 정말 춥다. 어제 우연히 신문을 보다가 올해는 1월말부터 2월까지 강추위가 몰아칠 것 같다는 기사가 눈에 띄었는데 정말인가 보다. 조금 달리니까 몸은 훈훈해 지는데 손이 너무 시렸다. 손을 비비며 한참을 달렸다. JSCSC 건물 앞을 지나가는데 문 앞에 두 사람이 서 있다. "Good Morning!" 힘차게 인사를 하였더니 그들도 "Hello!" 하면서 정답게 인사를 받아준다.
두 번째 바퀴를 도는 데도 그대로 그 자리에 있다. 장난끼가 발동하여 "Good morning, again!" 했더니 웃으면서 "Hello, again!" 한다. 옆에 사람이 "Very fun!" 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세운다. 영국 사람들은 엄지손가락 세우는 게 버릇인가 보다.
아침 식사 후에 후식으로 나온 사과와 오렌지를 하나씩 꼬불쳐서 방으로 가지고 왔다. 여기서는 사람들이 사과껍질을 까지 않고 그냥 우적우적 베어 먹는다. 나도 물에 살짝 씻은 후에 어적어적 베어 물었다. 별로 느낌이 나쁘지 않다. 오렌지는 나중을 위하여 책상 서랍 속에 숨겨두고 준비를 하여 방을 나섰다.
오늘은 아침 일찍 어제 갔던 Central Store에 가서 CD-RW를 살 계획이다. 거기가 8시 30분에 문을 열기 때문에 수업시작 전에 가는 게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을 나서니 예의 그 청소부 아저씨가 눈에 띈다. 복도 끝 방부터 내 방 쪽으로 청소를 해오고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했더니 내일은 내 방의 침대 시트를 갈아준다고 한다. 고맙다고 인사하고는 학교로 향했다.
Store에 가니 이미 문을 열어두고 있다. "Do you have CD-RW?" 혹시 CD Writer하고 헷갈리지 않을까 하고 "You know, Data Storage"를 첨언했다. 알아듣는다. 이제는 물건 사는 것은 정말 문제가 없다.
CD-RW를 세 개 달라고 하고서 벽에 붙어 있는 카탈로그에 100MB짜리 Zip Drive가 눈에 띈다. "How much is the 100mega byte Zip drive?" 7파운드 76펜스란다. 지갑을 꺼내려다 보니 아차 지갑을 안가지고 왔다. 이런 실수가!
할 수 없이 가방을 뒤지니 동전이 우수수 쏟아졌다. 동전 종류가 워낙 많다 보니 아직 어떤 게 얼마짜리인지 잘 몰라서 물건 살 때 별로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주먹을 꺼내 들고 정리를 해 보니 4파운드가 조금 넘는다.
CD-RW가 한 장에 1파운드 17펜스니까 석장만 사면 커피 값은 남겠기에 석장을 달라서 해서 가게를 나섰다.
Language Centre에 도착하니 아직 아홉시 전이다. 커피를 한 잔 뽑아 들고 첫 번째 강의가 있는 강의실로 갔더니 벌써 일본 애 Sayah와 Yumi가 와있었다.
"Why do you come here this early?" 두 여자 애는 Swindon에 살고 있는데 시간에 맞춰 올 수 있는 버스가 7시 50분밖에 없어서 그 버스를 타고 오면 여기 8시 45분에 도착하게 되어 매일 일찍 온다고 한다. 어제 산 차를 한바탕 자랑을 하였다. 부담 없이 얘기하니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었다. 어차피 혀 굴리기를 잘 못하는 동양인끼리라서 그렇겠지만.
잠시 후에 강사인 Callum이 들어왔다. 와서는 Beckett Fair라는 중고품 상점을 소개하는 리플릿을 보여준다. 오늘 오후에 거기 가서 중고 자전거를 살 계획이란다. 매주 수요일 오후에 잠깐 열리는 우리의 벼룩시장과 비슷한 형태인데, 책이나, 장난감, CD, 헌 옷, 자전거 등이 많이 나오고 운 좋으면 상당히 싸게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찬스란다.
나도 어차피 차를 샀지만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자전거를 구입하여 타고 다니는 것이 건강에도 좋고 주차문제도 없고 여러모로 편리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거기에 가서 물건을 한 번 구경하고 맘에 들면 사야겠다.
첫 수업은 Romina와 짝이 되었다. 이 애는 칠레인 인데 나이가 16살이라고 부모는 이혼하여 아버지는 아르헨티나에 어머니는 칠레에 살고 있다고 한다. 더 이상 물으면 상처가 될 것 같아서 그 정도로 신상파악을 해 두었다. 아직 발음도 서툴고 문법은 완전히 꽝이다. 그래도 귀여우니까 옆에서 모르는 것은 성의껏 도와주었다. 내 발등의 불도 못 끄는 주제에.
둘째 시간은 David의 독해위주 수업이다. 글로리아가 조금 늦게 도착하였다. 첫 주제는 오늘도 변함없이 고국에서 날아온 새로운 뉴스를 얘기하는 것이었다. 나야 뭐 신문도 안보고 인터넷도 거의 이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라 오늘도 지난 주에 이어서 내 신상 이야기를 하기로 하였다.
오늘은 차를 산 얘기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수업 시작 전에 Sayah와 한 번 연습을 해 둔 터라 청산유수로 말이 나온다. 내가 생각해도 조금 만족스럽다. 그런데 차 얘기가 나오니, 어떤 차가 좋으니, 나라별 교통체계가 어떠니, 차량 보험이 어떠니, 운전면허가 어쩌니 하고 얘기가 길어져서 한참을 얘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별 어려움이 없었다.
수업이 예정보다 10분 정도 늦게 끝나는 바람에 글로리아와 서둘러서 배중령 집으로 향했다. 마침 Romina와 아랍 애들 둘이서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마침 셋이 다 Watchfield에 살고 있어서 함께 얘기를 나누며 걸어왔다. 쿠웨이트인인 Salman은 18살이고 사우디 아라비아인인Ohsama는 20살이다.
집에 도착하니 배중령은 이미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바깥에서 나의 애마를 점검하며 잠시 기다리니 배중령이 나왔다. 배중령이 차를 몰고 Main Gate로 향했다.
오늘은 처음 보는 여자가 근무 중이었다. 사정얘기를 하고 Admission Letter를 보여주며 차량 출입증을 요구했더니 9월에 정식으로 RMCS에 입교하기 전까지는 정식 출입증은 힘들다고 한다.
Language Centre에 현재 다니고 있으니 첫 번째 Term이 끝나는 3월까지 임시 출입증을 발급하여 주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의 Personal Pass를 보여 달라고 하는데 아차! 내가 지갑을 안 가지고 온 걸 깜박했다. 차량 출입증은 고사하고 내가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문제였다.
할 수 없이 배중령의 보증 하에 1일 차량 출입증만 끊어 가지고 안으로 들어갔다. 기숙사 주차장에 주차를 시키고 5시 50분에 만나서 간단히 주행연습을 하고 나서 다시 차를 몰고 나가 가능하다면 오늘 두 달짜리라도 차량 출입증을 만들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나의 건망증을 배중령도 알았는지 사진 1매와 나의 출입증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점심식사를 간단히 하고서 잠시 영어공부를 하다 보니 벌써 네 시가 되었다. 오늘은 약속이 있으니 일찍 달리기를 했다. 나의 코스를 돌려고 보니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며칠 전에 봐 둔 철조망을 따라서 도는 긴 코스로 접어들었다.
나무가 빽빽한 흙길을 달리니 기분도 상쾌하고 다리도 덜 아팠다. 전체 코스의 2/3정도를 돌아오니 40분 정도 소요되었다. 다리가 무척 아프고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었지만 곧바로 샤워를 한 후 옷을 갈아입고 나니 20분 정도 시간이 남았다.
배중령이 와서 운전연습만 해도 시간이 모자랄 것 같다. 연습이 끝나고 다시 정문에 가서 차량 출입증을 가지고 씨름을 하는 것보다 내가 한번 가서 부딪쳐 보기로 하였다.
마침 내가 인원 출입증을 만들 때 도와주었던 까까머리가 근무를 서고 있었다. 어눌한 내 영어실력 때문에 나를 기억하는가 보다. 항상 써먹는 레퍼토리인 내가 지금 랭퀴지 코스를 밟고 있는데 9월부터 석사과정을 들어간다. 지금Kitchener Hall에 살고 있고 어제 차를 샀는데 차량 출입증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각본대로 얘기했더니, 흔쾌히 차량 출입증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닌가?
출입증 신청서에 내가 잘 모르는 것은 차량 매매 계약서까지 자기가 살펴보며 빈칸을 채워서는 올해 말까지 유효한 차량 출입증을 발급하여 준다. 정말 고맙다. "Thank you!"를 연발하며 이름을 물어보니 Gary라고 했다. 명찰을 보니 Gary F. Smith라고 되어 있다. 기억했다가 정답게 인사라도 해야겠다.
배중령이 이미 차 앞에 와 있었다. 자랑스럽게 차량 출입증을 내미니 훌륭하다고 칭찬하다. 워낙 내가 영어실력도 모자라고 빌빌대니까 요즘은 나를 칭찬하는 사람이 참 많다. 하여튼 기분은 나쁘지 않다.
나는 녹색운전면허 소지자다. 92년도에 광주 상무대의 보병학교에서 OBC교육을 받을 때 2주 만에 덜렁 딴 1종 보통 살인면허다. 차에 일단 올랐다. 시동을 거는데 열쇠를 어디다 꽂아야 할 지도 모르겠다.
Auto니까 클러치는 없어서 다행인데 발끝으로 엑셀에이터와 브레이크를 감지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래도 박아받자 내차니까. 더구나 종합보험까지 들었겠다. 시키는 대로 용감하게 시동을 걸고 변속기를 주행에 놓은 후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었다.
차가 스르르 움직인다. 엑셀레이터로 발을 옮긴다. 갑자기 차가 왱하며 앞으로 나간다. 깜짝 놀라 브레이크 꽉! 덜컹 차가 선다. 브레이크를 밟는 감각과 엑셀레이터는 완전히 다르다. 엑셀레이터에는 살짝 발만 올려놓아도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 더구나 나는 Stick식의 트럭만 몰아본 터라 승용차는 더욱 민감하게 느껴졌다.
핸들도 내가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민감하다. 조금만 방향을 틀어도 바퀴가 휙휙 돌아간다. 나는 파워핸들로 운전을 한 번도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하여튼 일단 주차장을 빠져 나와 캠퍼스의 도로로 나섰다. 배중령이 시키는 대로 핸들과 엑셀레이터와 브레이크와 방향등을 조작하며 몇 번을 돌아보니 자신감이 조금 붙었다.
40분 정도 연습 후에 오늘 운전교습을 끝내었다. 내일부터 차를 몰고 학교도 가라고 하는데 글쎄다.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여튼 일단 부딪쳐 본다.
배중령과 헤어지고 나서 곧바로 저녁식사를 하였다. 식당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흑인 청년을 똑 만났다. 오늘은 만나자 마자 이름부터 물어보았다. Peter라고 한다.
식사를 하면서 축구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 하였다. 나에게 영국의 어느 축구팀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생각나는 팀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랑 아스날밖에 없다.
나는 사실 축구를 보는 것은 별루다. 직접 그라운드에서 뛰는 것은 좋지만. 그래서 어떤 특정한 팀을 좋아하고 말고가 없는데 대화진행상 아스날로 대답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학교 내의 축구클럽에 가입하고 싶다고 했더니, 매주 화요일 6시부터 기숙사 앞의 축구장에서 항상 시합이 있으니 거기 가서 가입하면 된다고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저녁식사 후에는 오랜만에 프리셀 게임을 하였다. 예전에는 재미있었는데 재미가 없었다. 'Friends'를 한편 보고나니 여덟시가 조금 넘었다.
복도로 나가 찻길을 바라보니 다니는 차가 별로 없다. 찬스다. 얼른 차 열쇠를 가지고 주차장으로 갔다. 나의 애마가 늠름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주차장 옆의 축구장에서는 아직도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축구시합이 한창이었다.
차 안으로 들어가 일단 시동을 걸었다. 약간은 두려움도 앞선다. 그러나 어차피 내가 몰아야 될 차니까 일단 기어를 주행으로 놓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었다. 차가 움직인다. 옆에 주차 시켜 놓은 차를 조심하면서 서서히 방향을 틀어서 주차장을 빠져 나왔다.
길에는 다니는 차가 거의 없다. 가끔씩 도로를 가로질러 가는 사람이 몇몇이 눈에 띄었지만 속도를 높이지 않고 달리니 별로 위험할 것도 없다. 갈림길에서는 속도를 낮추고 정석대로 깜박이를 넣었다. 별로 어려울 것 없다. 아까 배중령과 연습했던 코스를 몇 바퀴 돌았다. 재미없다.
이제는 다른 코스를 돌아본다. 이 코스는 직선이 길다. 조금 엑셀레이터에 힘을 준다. 잘 나간다. 신난다. 그런데 아 참! 이게 막다른 길이다. 흠... 문제다. 눈어림으로 보아서 공간은 충분한 데 내 실력에 방향을 틀 수 있을까? 일단 내가 차를 들어 올려서 방향을 틀지 못할 바에는 시도해 보는 거다. 일 미터 가량씩을 전진, 후진을 거듭한 끝에 다섯 번 만에 방향을 반대로 돌렸다. 야호다.
이제는 안 가 본 길을 위주로 캠퍼스를 헤집고 다녔다. 속도도 조금 올려본다. 30마일까지 나온다. 직선코스를 달릴 때는 이제 백미러를 보는 여유도 조금 생겼다. 한 시간 정도를 연습하다 보니 갑자기 삐삐 소리가 나면서 계기판에 못 보던 그림이 있다. 연료가 모자란다는 표시가 틀림없다. 불이 들어와도 한참을 더 달릴 수 있다고 알고 있었지만 여기서 주유소 거리를 알 수 없으니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주차장에 들어 와서가 조금 문제다. 다행히 차가 빼곡하지는 않아서 그런대로 주차를 시킬 수 있었다. OK, 이제는 나도 차를 몰 수 있게 되었다. 내일부터 틈나는 대로 열심히 연습하여 일주일 내에 고속도로 주행을 꼭 해보아야겠다.
이제부터는 운전 연습하랴, 공부하랴, 무척 바쁠 것 같다. 그리고 9월 달에 학기 시작 전에 말이 어느 정도 통하면 골프 레슨도 받는 것이 유리할 것 같다. 석사과정이 매우 빡빡하고 힘이 들것이라고 한다. 그 때가서 골프를 배우기는 아무래도 힘들 것이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 될 일도 너무 많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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