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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생각 짧은 글/2. 비스듬히 세상 보기

좌충우돌 촌놈의 영국 유학기(6)

by 무딘펜 bluntpen 2008. 9. 4.


<Friday, 23/01/2004>

아침 달리기를 한 후에 오늘도 Tea 아줌마가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오늘은 "Sugar and Cream, Please!"로 정상적인 커피를 마셨다. 그러나 아무리 맛을 보아도 우리나라의 자판기에서 뽑아먹는 마담커피가 최고다.

아침식사는 일부러 간단하게 달걀 후라이 한 개와 후레이크로 때웠다. 훨씬 속이 편하고 좋았다. 대부분의 음식이 칼로리가 높아서 부담스럽다. 어김없이 9시에는 쩔렁이 아저씨가 방문을 하여 조금 수다를 떠시다가 나갔다.

오늘 첫 시간은 Keith가 담당이다. 오늘은 Lottery에 대하여 토의하는 것이었는데, St. Ambrosia라는 섬나라에서 Lottery를 통하여 천만 달러를 모았는데 이것을 어떤 사업에 얼마씩을 쓸 것인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복권을 추첨하는 방식을 설명하면서 Random이라는 단어를 물었는데 아무도 몰랐다. 내가 대답을 했는데 목소리가 작았는지 무시했다. 다시 옆의 아랍 애가 Random이라고 말하자 그제서야 알아듣는다. 내 발음이 안 좋은가? Listening과 Speaking을 고루 잘하지 않으면 상당히 어려운 과제라서 그냥 옆에서 듣기만 하고 내게 의견을 묻는 경우에만 대답했다.

두 번째 시간은 내가 좋아하는 Sue 아줌마 시간이다. 멤버는 호화 캐스팅, 앞에서 소개한 애들과 글로리아가 합세를 하였고, 사우디 남자 애들이 두 명 더 들어왔다. 주말에 할 일에 대하여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말을 하는 시간에는 집을 구하고 차도 구해야 하는 나의 스케줄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는데 별로 무리가 없었다.

나머지 시간은 일주일간 배운 것을 복습하는 의미의 시간을 가졌기 때문에 부담이 없었다. 옆에 앉은 짐바브웨의 Violet이 시간이 나는 대로 컴퓨터를 가르쳐 달라고 한다.

첫 시간에 내가 Mouse Potato(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서 TV만 보는 사람을 가리켜Couch Potato라고 하는 것에 빗대어 매일 컴퓨터에 매달려 마우스만 굴리며 사는 사람을 말함.)라고 뻥을 쳤더니 내가 컴퓨터를 잘하는 줄 아는가 보다.

하긴 내 컴퓨터 실력이야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지만 문제는 영어 실력이다. 알기만 하면 뭐하냐? 표현할 능력이 안 되는 걸. 그래도 아가씨가 컴퓨터를 가르쳐 달라는 데 거절하면 안 되겠길래 다음 주는 바쁘니까 그 다음 주에 내 노트북을 가지고 와서 가르쳐 주겠다고 약속했다. 아무래도 다음 주에 열심히 영어실력을 쌓아서 최소한의 의사소통 능력을 갖추어야 이 약속을 지킬 수 있겠지.

수업이 끝나고 글로리아와 얘기를 나누었다. 배중령이 오늘 일찍 퇴근하니 오후 4시경에 집으로 와서 인터넷으로 차를 알아본 후 내일 차를 사러 가자는 것이었다. 도와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내 영어실력으로 어떻게 적당한 차를 사겠는가? 차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오늘 꼭 해야 될 일이 두 가지다. 첫째는 인터넷 Password를 부여 받는 것이고 두 번째는 군 숙소를 신청하는 것이다.

어제도 글로리아와 같이 집으로 오는 바람에 신청을 못해서 오늘은 끝나자마자 Margaret을 찾아갔으나 식사하러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할 수없이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잔 뽑았다. 20펜스다. 우리 돈으로 450원정도. 처음으로 마셔보는 것인데 아침에 마시는 아줌마 커피보다는 내 입맛에 좀 맞는다.

다른 애들은 모두 돌아가고 앞에 아랍애가 한 명 앉아 있다가 나에게 말을 건넨다. 이런 경우 처음 묻는 말은 정해져 있다. "Are you Japanese?" 예상 질문이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나온다. 당연히 단숨에 준비했던 답변이 나간다. "No, I'm Korean. I come from south Korea." 다음 질문은 "South Korea is up or down?"

흠 지도상 위치를 묻는 거군. "Down, do you know Seoul?" 안다고 한다. 그러더니 "푸트 보르" 어쩌고 한다. 아랍계통 애들은 L이나 R을 엄청 굴려서 발음한다. 이 분야는 미국인도 못 당한다. 위의 말은 Football, 축구라는 얘기다.

예전에 우리나라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축구경기를 몇 번 한 것이 기억에 남는가 보다. 자신이 사우디 장교라 길래 계급이 뭐냐니까 Second @#$%라고 하는데 못 알아듣겠다.

한참 단어퍼즐을 풀고 나니 본인은 사우디 육군 중위인데 1년 과정으로 Civil English를 배우러 왔다는 얘기였다. 내가 못 알아들은 말은 Lieutenant인데 이 단어는 미국에서도 각 군별로 발음이 다르고 영국에서는 "레프터넌트"로 발음한다. 그러니 처음 듣는 단어일 수밖에.

녀석은 가족도 없이 혼자 와서는 사우디 군인 5명이 근처에서 합숙을 하는데 영어수업이 끝나면 시내를 배회하다가 잠을 자고 또 수업 듣고 생활이 단조롭고 무척 외롭다고 하소연을 한다. 나는 여기 온지 일 주일 째이고 2월 16일에 가족이 오기로 했다고 했더니 부러워하면서 내 영어실력이 좋다고 칭찬한다.

나와 영어실력도 비슷하고 해서 시간만 있으면 저녁에 Pub으로 데리고 가서 맥주나 한잔 같이 할까도 생각했지만 오늘은 내 일정이 바빠서 그냥 Bye 했다.

조금 후에 Language Centre의 직원인 Pat라는 여자가 들어오길 래 상황설명을 하고 Password를 발급 받았다. 나도 이제 내 ID로 인터넷 연결이 가능하게 되었다.

다음 Misssion은 숙소를 알아보는 것이다. 젤 중요한 일이므로 마음을 다져 먹고 RMCS의 Headquarters로 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마침 뒤에 여자 분이 따라 오길래 문을 잡아 주었다. -나도 신사라오.-

그런데 그 여자가 마침 Receptionist여서 상황을 설명했다. "My name is Yoon Seok Kim come from South Korea. I plan to study Master's course of Defence Administration from Septemberin this college, RMCS. Now I live in Mess Kitchiner Hall, but my family will arrive here UK in sixteenth of February. So I urgently need a families quarters. How can I do? Help me" 리스닝에 약점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일단 내가 할 말을 중간에 끊기지않고 단숨에 전달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요령을 터득한 덕분에 내 처지는 설명이 되었다.

"Oh, I see. BUT" 그리고는 자기가 담당이 아니라고 다른 사무실을 한참 설명해 준다. 귀 기울여 들으면 못 들을 건 없을 것 같았지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버텼다. 그랬더니 예상대로 어디다 전화를 하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한다..

잠시 후 어떤 나이든 여자가 왔다. 그러나 그녀도 담당이 아닌가 보다. Defense Housing Executive라는 곳의 약도를 하나 들고 와서는 거기 가서 Mr. Blake와 얘기해 보라고 한다. 두 여자가 이구동성으로 "Your English is very GOOD"이라고 치켜세우는데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오늘 들어 세 사람이 벌써 칭찬을 했으니 내가 속을 만도 하지.

하여튼 다른 건 몰라도 이제 외국인을 만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하긴 사정이 급하니 두렵다고 안 만날 수도 없지 않은가?

DHE는 학교 내에 있는 기관이 아니었다. Watchfield의 Axis Road에 위치하고 있었다. 몇 바퀴 돌아서 겨우 찾았다. 들어가서 또 장황한 설명 후에 일단 자기들이 접수하여 상급기관에 할당을 요청하는데 장담할 수는 없다는 설명을 들었다.

내가 사정이 급하다고 했더니 열흘 내에 Language Centre의 Margaret을 통하여 결과를 알려 주겠다고 한다. 나오면서 이미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확인 사살 겸, "Please, Would you tell me your name?" 공손한 표현법을 한번 연습하였다.

기숙사로 돌아오니 이미 세시가 넘어 버렸다. 배가 고팠다. 그러나 참는 수밖에. 컴퓨터실로 가서 새로 받은 Password를 이용하여 Internet을 접속하였다. 문제없었다. 한 가지 문제는 역시 한글이 지원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네 시 경에 배중령한테 받은 핸드폰 사용법도 익힐 겸 전화를 해서 방문가능여부를 확인한 후 걸어서 배중령 집으로 갔다. 글로리아와 아이들은 한복으로 예쁘게 차려 입고 있었다.

영국인 Sponsor 집에 세배를 가기로 하였단다. 여기 JSCSC에 오는 외국인 장교들은 출발 전에 미리 근처의 영국인 중 지원자와 Sponsor 약속을 하고 온다고 한다. 영어와 영국문화에 서툴기 때문에 처음 적응할 때 도움을 많이 받는다고 하는데 매우 부러웠다. 유학생들도 이런 제도가 있으면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유학생들이 처음 도착하여서는 그곳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의 도움을 받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언어습득이나 문화에 외국문화에 익숙해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가족들이 세배 간 사이에 배중령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배중령도 한국인이 그리웠던 탓인지 여러 가지 얘기를 많이 했다. 그리고 CNN을 틀어놓고 시청하면서 해설을 해주는데 상당한 영어 실력이었다.

금방 갔다 온다던 글로리아가 늦길래 어제 인터넷에서 찾아 둔 중고차 연락처를 가지고 전화를 했다. (물론 배중령이)

그런데 어제 인터넷에서 가격이 잘못 표시가 된 것 같다. 내가 눈 여겨 보아둔 시트로엥 2.9는 어제는 2,700파운드인 줄 알았는데 앞에 1자가 빠진 것이었다. 후! 이러면 차 사기가 힘들겠는데.

서로 얼굴을 마주보면서 곤란해 하다가 갑자기 배중령이 참! 하고는 무릎을 쳤다. 아까 낮에 같이 공부하는 이집트인 장교가 차를 팔겠다고 컴퓨터를 광고문을 작성하는 걸 도와주었는데 괜찮은 차 같았다는 것이다. 나나 마누라는 운전을 잘 못하니까 반드시 Auto로 사야 하는데 그 차가 오토이기만 하면 절호의 찬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첩을 가져와서 연락처를 확인하니 전화는 없고 마침 배중령 집에서 멀지 않은 같은 Romanwalk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렸지만 일단 그 집까지 가보기로 했다. 사람이 없더라도 차 구경이나 하자는 것이다.

걸어갔더니 집 앞에 마침 차가 세워져 있었다. 은색 폭스바겐 1,800cc짜린데 아까 낮에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 기숙사 앞에 차가 한 대 서 있어서 자세히 살펴보면서 저 정도면 좋겠다 싶었는데 그것과 같은 모델이었다. 일단 맘에 들었다. 차량 관리 상태도 무척 양호했다. 비가 내려서 자동세차가 되어서 그런지 굉장히 깨끗했다.

마침 주인도 집안에 있는 것 같아 문을 두드렸더니 주인이 나왔다. 이것저것 더 물어보고 얼마에 팔 거냐고 했더니 본인이 두 달 전에 5,200파운드에 샀는데 4,300파운드에 팔고 싶다고 한다.

알고 보니 이 이집트 장교는 현 이집트 대통령인 무바라크의 사위라고 한다.  몇째 사위인지는 나도 모른다. - 그런데 몇 달 전에 자동차 사고가 나서 부인이 좀 다쳤는데 그 사고차량은 폐차시키고 이 차를 새로 샀으나 부인이 이제 운전은 싫고 버스로 다니겠다고 하고, 자기도 학교가 가까우니 차가 불필요해서 7월에 본국에 돌아가기 전에 미리 차를 팔아버리겠다는 것이다.

낮에도 중고차 상인이 두 사람 왔다 갔는데 이 차가 99년 식이고 마일리지가 9만 마일을 넘었다고 해서 너무 가격을 후려치려 하길래 팔지 않았다고 한다.

일단 차 상태를 점검해 보았다. 나는 외양과 차 내부의 상태를 보고 배중령이 운전대를 잡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소음 적고, 승차감 좋고, 뒷 트렁크도 넓다. 내부도 정말 깨끗하게 관리되었다. 운전자의 성격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배중령도 엑셀레이터나 브레이크, 핸들 등이 조작이 상당히 부드럽고 좋다고 한다. 폭스바겐 이 모델이 튼튼한 기종이라 마일리지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4,000파운드 이하로 후려쳐 볼까도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도둑놈 소리를 들을 것 같아서 4,000파운드를 제시했다. OK. 악수로써 계약은 성립되었다. 월요일에 대금을 지불하고 차량을 인수 받기로 하였다. 매우 만족스럽다.

휘파람을 불며 배중령 집으로 돌아와서 인터넷으로 메일을 몇 군데 보내고 저녁밥을 먹었다. 얼마 만에 먹어보는 밥이냐. 정말 맛있었다. 쌀도 우리나라에서 먹는 것에 뒤지지 않는다. 내일 Oxfored에서 설날 기념으로 한인회 모임이 있다고 해서 다섯 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기숙사에는 오늘밤에 오스트리아, 독일, 스위스인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자리가 있었다. 이 늦은 밤에도 음악에 맞추어 전통춤을 추는 그들의 모습이 무척 아름답고 부럽게 느껴진다.

이제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는 느낌이다. 내가 여기 Kitchener Hall에 입성한 시간이 바로 일주일 전 이 시간이었는데 그 때는 그리 막막해 보였던 일들이 이제는 어느 정도 윤곽이 보인다.

내가 나름대로 버텨내기 위해서 이를 악문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배중령과 글로리아 그리고 항상 나를 친절과 인내심을 가지고 대해준 주위 외국 사람들의 도움이 매우 컸다. 또한 이 드넓은 캠퍼스에서 그 많은 사람 중에 한국인인 글로리아를 만나게 된 것은 정말 행운 중의 행운이었다.

올해는 정말 모든 일이 내가 노력한 이상으로 잘 풀려주는 것 같아 너무 행복하고 감사한다.

<Saturday, 24/01/2004>

오전은 특별한 일이 없이 빈둥거렸다. 컴퓨터실에 가서 국내 소식들을 뒤져 보았으나 조류독감과 귀성전쟁 얘기 외에는 별로 눈에 들어오는 소식이 없다. Cranfield University의 안내책자를 뒤지며 학교생활에 대하여 구상하기도 하고 가지고 온 CD를 뒤져서 필요한 내용들을 노트북에 정리하기도 하였다. 오랜만에 별로 부담 없이 한나절을 보낸 것 같다.

점심식사 후에는 밀린 빨래를 하였다. 세탁방법은 이미 익혀둔 것이라 어려울 것이 없었다. 건조기도 돌려볼까 생각하다가 작동방법이 너무 뻔하다. 역시 토큰을 사다가 작동시키면 되는 방식이다. 당장 급한 것은 아니고 또 누군가 건조기를 작동시킨 후 자리를 비워서 빨래가 꽉 차 있길래 옆에 있는 Drying room으로 갔다.

그 곳에는 바깥에는 전기다리미가 있고 안쪽 방에는 빨래 건조대가 4단 높이로 양쪽에 마련되어 있었다. 어떤 게으른 녀석들인지 일주일은 되었음 직한 빨래를 아직도 걷어가지 않고 있다. 다른 빨래들을 한 쪽으로 몰아놓고 내 빨래를 정성스레 널었다. 정말 오랜만이다. 이렇게 빨래를 해서 건조대에 널기 까지 해 본 것이. 빨래를 끝내고 나니 마음이 날아갈 듯이 상쾌하다.

오늘은 저녁에 Oxford에서 열리는 한인의 밤 행사에 가기로 했기 약속 때문에 3시경에 달리기를 하였다. 정해진 코스를 두 바퀴 돌고 나서 아직 내가 가보지 않은 곳인 Main gate의 동쪽지역을 천천히 뛰어서 돌아보았다.

울창한 나무숲이 이어져 있고 끝부분에는 학교 관계자의 숙소인 듯한 멋진 건물 하나가 서있다. 그리고 철조망을 따라 나있는 오솔길을 따라 기숙사로 돌아왔다. 오솔길에는 통나무를 2-3Cm정도로 조각조각 내어서 깔아 놓았다. 이 길을 따라서 달리기를 하거나 승마를 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

여기는 달리기 코스가 8Km, 10Km, 12Km, Half Marathon코스로 나누어져 정해져 있는데 대부분의 코스가 이처럼 잔디 위에 나무 조각을 깔아 놓았다.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바닥에서 달리기를 할 경우 다리에 무리를 줄 수 있고, 그렇다고 잔디 위를 달리게 할 경우에는 잔디보호에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해 놓으니까 비가 왔을 경우 배수에 전혀 문제가 없어서 달리기에는 아주 적격이다. 다만 승마코스와 겹치는 데가 많아서인지 소담스런 말똥이 곳곳에 널려져 있어서 조심을 해야 한다.

돌아오는 길에 말을 타고 지나가는 Primary School의 학생인 듯한 어린 애들을 만났다. 망아지 크기의 말 잔등에는 기수가 타고 있고 한 마리마다 다른 한명의 어린애가 고삐를 잡고 마부노릇을 하고 있다. 모두들 검은색 헬멧을 쓰고 귀여운 승마바지에 장화를 신었는데 정말 귀여웠다. 모두 다섯 마리의 말이 지나갔는데 그 옆에는 키가 늘씬하고 승마복이 정말 어울리는 멋진 여자가 흰색 말을 타고 애들을 통솔하고 있었다. 우리가족도 같이 말타기를 배워서 함께 달려보면 정말 재밌을 것 같다.

돌아오는 즉시 샤워를 하고 떠날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복장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공식 모임이니 정장을 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편하게 케주얼 차림으로 갈까? 배중령한테 전화를 했으나 어디 갔는지 통화를 못했다. 아직 시간은 조금 남아 있으니 정장을 입어야 할 경우를 대비하여 일단 와이셔츠를 다림질하기로 하였다.

Drying Room으로 가서 아까 보아둔 다리미를 찾았다. 혹시 이것도 토큰이 필요한가 하고 살펴보니 다행히 전원 스위치를 올리자마자 불이 들어온다. 다림판 위에도 와이셔츠를 놓고 다림질을 하였다.

다림질도 정말 오랜만이다. 마음먹은 대로 깔끔하게 다려지질 않는다. 그리고 다리미가 조금 고물이라서 스팀이 규칙적으로 나오질 않고 질질 새듯이 나와서 영 작품이 나오질 않는다. 할 수 없이 이민가방을 뒤져서 가지고 온 우리 다리미를 꺼내 가지고 와서 다시 다렸다. 첫 번째 것은 조금 엉성한 데 두 번째 것은 봐 줄만 하다. 역시 부단한 연습이 최고다.

배중령과 통화가 되었다. 정장은 필요 없으니 간편하게 입고 오라고 한다. 면바지에 약간 두꺼운 티 하나를 꺼내놓고 옷을 입으려는데 윽! 또 나의 실수. 속옷이 없다. 오늘 입었던 것은 달리기 하고 돌아와 땀에 절어 있으니 입을 수도 없고 난감하다.

하지만 어쩌랴? 속옷 없이 그냥 면바지와 티를 입었다. 그런데 티 위에 잠바를 걸치려니 티가 너무 두꺼워서 영 어색하다. 아무래도 체중 조절이 필요하겠다. 설마 얼어 죽으랴 싶어서 그냥 그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약간 쌀쌀하긴 했지만 어차피 실내에서 행사를 할 거니까 문제없을 것이다.

배중령 댁에 도착하니 한인회 모임에 싸 가지고 갈 음식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 집집마다 한 가지씩 한국음식을 준비 해 가지고 가는 거란다. 나야 뭐 준비할 처지가 안 되니 그냥 빈대 붙는 수밖에.
배중령 댁은 녹두 빈대떡을 준비하고 있었다. 정말 냄새가 구수하다. 점심도 부실하게 먹었고 벌써 저녁식사 시간이 된 데다가 오랜만에 맡는 빈대떡 냄새가 오장육부를 자극했지만 참았다. 식욕을 누르기 위해 애꿎은 텔레비전 채널만 이리 저리 돌리다 보니 준비가 끝났다.

남자애인 명성이는 옆집의 Benedict라는 영국 친구 집의 파자마 파티에 보낸다고 한다. 쉽게 말해서 거기서 재운다는 뜻이다. 아마도 내가 합류함으로써 같이 타고 갈 공간이 부족해서 궁여지책으로 그 집에 보내는 것 같다.

그런데 글로리아가 명성이를 데리고 그 집에 갔다가 기분 나쁜 얼굴로 돌아왔다. 당연히 그 집에서 저녁식사까지 먹여줄 줄 알고 데리고 갔더니 자기들 식사밖에 준비를 못했으니 저녁을 먹고 보내달라고 했단다.

배중령은 영국 사람들 사고방식이 원래 그런 걸 알면서 미리 그 문제를 상의하지 않고 애를 덜컥 보낸 우리 잘못이라고 애써 위로하지만 글로리아는 이 집에 유난히 Benedict이 자주 놀러 오는데도 항상 식사도 챙겨주고 오늘도 그 애가 좋아하는 롤빵까지 한 봉지 사서 보내 주었는데 너무 야박한 것 같다고 섭섭해 한다. 국가간의 문화차이를 절감하였다. 하여튼 일단 샌드위치를 급히 만들어서 명성이를 먹여서 그 집에 보내 놓고는 출발하였다.

Oxford까지는 이곳 Shrivenham에서 40분 정도 걸린다. 가는 길에 Faringdon의 이 박사라는 분 댁에 들렀다. 이 분은 삼성전자에 근무하였었는데 이곳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잠시 귀국하였다가 아예 사표를 내고 이곳에서 지금 박사코스를 밟고 있는 분이다. 다행히도 근처에 있는 영국 전자회사에 상당한 대우를 받으며 취업이 되어서 이 곳에 아예 뿌리를 내릴 예정이라고 한다. 아직 박사는 아니지만 곳 받을 것이므로 이 박사로 불러 준단다.

아담한 이층집에 부부와 14살짜리 딸, 9살짜리 아들과 살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재미있는 우연을 발견했다. 올해 초에 이 박사 부모님께서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는 온 가족이 귀국을 하였다가 일주일 후에 다시 돌아왔는데 나랑 같은 비행기를 타고 왔다는 것이다. 이들은 Heathrow 공항에서 Oxford까지 버스를 타고 와서 거기에 맡겨둔 자기차를 끌고 돌아왔다고 한다. 으이그! 조금만 운이 좋았으면 정말 편하게 올 수 있었을 텐데...

이 박사가 오늘 모임의 위치를 알고 있어서 앞에 서고 우리 차가 뒤를 쫓아갔다. Oxford까지는 우리의 국도와 비슷한 A420도로를 타고 간다.

대부분 2차선이고 가끔 4차선도 나타나는데 2차선은 제한 속도가 시속 50마일 정도이다. 도로가 혼잡하진 않지만 곳곳에 속도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는 카메라가 그려진 표지판이 세 개 나오고 나서 카메라가 나타난다. 제한속도에서 5마일 정도는 봐 준단다.

그리고 영국 도로에서 특이한 것은 도로가 만나는 지점에는 신호등이 아니라 Round-About이라고 하는 로터리 비슷한 것이 설치되어 있는데 진입을 하여 돌다가 자기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빠지면 되는데 절대규칙이 오른쪽 차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오른쪽에 차만 오지 않으면 자기 마음대로 가도 상관없다.

이 박사가 성격이 찬찬하여 50마일로 달리니까 성질 급한 배중령이 속을 앓는다. 그런데 배중령 뿐만이 아니다. 영국 사람들도 운전대 잡으면 성질 급해지는 것은 비슷한 모양이다. 2차선에서 4차선으로 들어서자마자 대부분의 차들이 쌩쌩 달리며 우리를 추월한다.

40분 정도 달리니 Oxford의 야경이 눈에 들어왔다. 낮에 보면 정말 멋있는 도시라고 한다. 대부분 고풍스런 건물들로서 고층건물은 거의 없고 다른 곳보다 도시 정비가 잘 되어 있다고 한다. 유명한 영국의 이층버스도 몇 대 지나간다. 도시 한가운데를 통과하는데 도시 전부가 대학이다. 이 도시에 있는 여러 독립적인 College가 모여서 Oxford 대학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학생들 위주의 도시라서 거리마다 젊은이들이 넘쳐흘렀다.

모임 장소인 어느 College의 강당에 도착하였다. Oxford 한인학생회 회장이 현재의 한인회 회장을 맡고 있어서 올해는 여기에서 모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역시 대학 도시답게 학생이 전체 한인회의 대부분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어른들은 아무래도 자기 본업을 제켜두고 적극적으로 일을 추진하기 어렵다 보니 24살의 젊은 회장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홀에 들어가니 벌써 여러 사람들이 도착해 있다. 나는 일단 한인회 가입원서를 쓰고 1년 회비인 10파운드를 냈다. 글로리아가 가지고 온 빈대떡을 넘겨주고 오면서 의외로 음식을 준비해 온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음식이 부족할 것 같다고 걱정을 한다.

그런데 임원 한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니 음식을 단체로 주문을 하였고 7시 경에 도착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점점 사람들이 많이 들어온다. 특히 외국인들이 반이다. 한국사람 중에 아는 사람을 따라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일부는 초대 받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자리는 200석 정도를 준비한 것 같은데 참석자는 거의 두 배는 되는 것 같다. 학생들이 일어서서 이곳저곳에서 의자를 가지고 와서 자리를 마련해 보지만 역부족이다. 미리 참석자들의 명단을 받아서 자리를 마련했으면 좋았을 텐데, 지난 번 추석모임에는 참석자가 적어서 오늘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리라고는 예상을 못했다고 한다.

일단 일부는 앉고 일부는 서서 모임을 시작하였다. 사회는 이곳 Oxford대 1학년인 여학생과 남학생이 맡았는데 한국어와 영어로 각각 말을 하는데 잘 알아듣지 못하는 내가 들어도 정말 영국인의 영어와 똑같다.

사회자의 간단한 인사말 후에 곧바로 식사가 시작되었다. 외국인부터 먼저 식사할 수 있도록 배려해 달라는 사회자의 부탁도 있었지만 한국인들은 뒤에 서서 아는 사람끼리 인사 나누기에 바빴고 외국인들이 먼저 줄을 섰는데 우와 정말 줄이 길다. 꼬불꼬불 몇 번이나 접혀있다.

배중령이 아는 사람 몇몇을 소개 시켜 주었다. 한국인 교회 전도사님과 학생 몇 사람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한참을 기다려도 줄이 줄어들지 않는다. 배에서는 온통 아우성이지만 참고 기다릴 수밖에.

5살인 막내 효성이에게 영어와 한글로 이름을 써보라고 했더니 꼬불꼬불 나름대로 알아볼 정도는 쓴다. 특별히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이름정도는 쓴다면서 글로리아가 흐뭇한 표정이다. 역시 부모마음은 똑같다. 처음 어릴 때는 내 아이가 천재가 아닌가 의심하고, 조금 더 커도 남의 애들 보다는 뛰어나다고 착각하며, 객관적인 성적이 나와도 그럼에도 우리 애는 공부 빼놓고 이러 이러한 것은 잘한다고 자위하며, 남들이 다 손가락질을 해도 우리 애는 마음만은 착하다고 변호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결국 식사하기는 글렀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식사를 하려면 두 시간은 걸릴 것 같다. 이 박사가 먼저 일어섰다. 일단 근처의 아는 사람 집에 들렀다가 나중에 다시 합류하겠다고 한다. 우리는 그냥 집으로 복귀할 마음으로 바깥으로 나왔다.

그런데 아까 만났던 글로리아가 다니는 교회의 전도사님이 따라 나오면서 자기 집에 가서 식사를 하자는 것이다. 나의 의견을 묻는다. 나야 새로운 한국사람 만나는 것에 대한 기대감도 있고 어찌하건 한 끼를 때우면 되는 거니까 좋다고 했다.

전도사님은 Yale대학에서 신학석사를 마치고 이곳 Oxford대학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분이란다. 이곳에는 한국인 교회가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이분이 운영하는 곳으로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로 학생들이 중심이고, 하나는 외곽에 위치하고 있는데 장년층이 중심인 교회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 교회 건물은 없고 영국교회의 빈 시간을 빌려서 예배를 보는 실정이며, 다른 한인 교회도 다 마찬가지라고 한다.

전도사님 댁은 3층의 넓직한 건물이었다. 아래층은 식당 겸 모임장소로 사용하고 2층과 3층은 가족과 이곳에서 돌보아 주고 있는 학생들이 생활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교회를 통하여 또는 인맥을 통하여 학생들을 이곳에 맡기는 부모들이 많다고 한다.

아래층의 넓은 방에서 학생들 10명가량이 성경공부를 하고 있고, 아주머니들 세분이 식사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 소개를 부산스레 하고 나서 글로리아는 본격적으로 나에게 전도를 하려고 한다.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인생에 개입하는 우연이나 행운에 항상 감사하지만 그것을 어떤 특정한 신에 한정하기를 꺼려할 뿐이고 남의 종교에 대하여 비판하거나 반대할 생각은 없으니 반드시 무신론자라고 할 것도 없다.

또한 집사람이나 특히 아이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찬성하는 입장이다. 그러니 성의를 가지고 나의 앞날에 대하여 걱정해 주는 크리스찬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가끔씩 맞장구를 쳐 줄 수밖에 없다. 가족들이 오면 이곳에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신앙생활의 독실함 여부는 본인들에게 맡길 생각이다. 특히 애들에게는 이 곳에서 공부하는 언니 오빠들에게 긍정적인 면에서 많은 자극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식사는 쌀밥과 순두부국이었는데, 순두부국이 한국에서도 먹기 어려울 만큼 기막히게 맛있는 솜씨다. 끼니마다 20명이 넘는 사람들의 식사를 준비하다 보니 전도사님 사모님과 그 여동생이라는 분의 음식솜씨가 프로 요리사 뺨칠 만큼 훌륭한 것 같다.

주로 식객들이 젊은 애들이다 보니 내 밥도 밥그릇도 위로 나온 밥이 그릇 속에 담긴 밥보다 많이 담아서 가지고 온다. 마침 상당히 시장했던 터라 한 그릇을 순식간에 뚝딱 비웠는데 더 먹으라고 하는 걸 체면상 배불러서 더 못 먹겠다고 했지만 조금 여운이 남았다.

우리가 식사하는 동안 아주머님들은 근처의 중국인 상회에서 사가지고 온 배추를 다듬어서 김치를 담그고 있었다. 식구들이 많다 보니 일주일에 한 번씩 김치를 담궈야 한단다.

이곳에서는 대부분의 동양식 식료품과 양념류를 중국인 상회를 통하여 구입하고 더 많이 필요한 경우는 런던 근처의 한인촌인 New Molden에 가서 사온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두배 내지 세배 정도 물가라고 생각하면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식사 후 녹차까지 대접을 받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니 벌써 9시 40분이다.

이미 한인회 모임은 끝났다고 해서 곧바로 Shrivenham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은 갈 때보다 덜 막혔다. 카메라가 있는 지역에서만 속도를 좀 낮추고 시속 90마일을 밟으니 금새 집에 도착하였다.

배중령이 Main Gate까지 태워다 주어서 금방 돌아왔다. 오늘도 또 배중령 댁에 많은 신세를 졌다. 나중에 갚을 기회가 있을까?

간단히 세면을 하고는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