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25/01/2004>
일요일이니까 마음 놓고 잤다. 일어나 보니 일곱 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오늘은 비는 내리지 않지만 기온이 많이 내려가 있다. 얼른 운동복으로 갈아 있고서 바깥으로 나갔다. 춥다고 움츠리기 시작하면 한이 없다. 여기서는 춥다고 해 보았다. 영하 1도나 2도 정도이니 우리나라의 강추위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그러나 역시 나오니 춥다. 어제 빨래를 해 널어둔 속옷이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아 운동복만 걸치고 나왔더니 추위가 뼈 속으로까지 파고든다. 길바닥은 얼어서 하얗고 조금 미끄러웠다.
같은 코스를 돌고 들어갈까 생각하다가 오늘은 오전에 특별히 할 일도 정해져 있지 않아서 일단 Defence Academy 외곽을 샅샅이 돌아보기로 하였다. 일곱 시인데도 아직 상당히 어둡다. 도로 쪽으로 다니는 차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런닝 코스는 외곽이라 숲을 따라서 뛰어야 하기에 더욱 어둡다. 앞이 잘 보이지 않지만 감각에 의존하여 길을 따라갔다. 기숙사에서 20분 정도를 달리니 RMCS 본부건물 옆의 경비초소가 나왔다. 거기서부터는 아는 길이다. 철조망 바깥은 골프장이 있고 그 너머로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잔디가 푸르게 펼쳐져 있으며 멀리로는 성 비슷한 것이 보인다.
언젠가 한 번 탐사를 해보고 싶었던 지역이라 출입문을 찾아보니 한 군데 있다. 문이 잠겨 있었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문과 연결된 곳에 단추가 있다. 단추를 누르고 문을 당기니 열린다. 살짝 바깥으로 나갔다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들어올 때가 문제일 것 같다. 바깥쪽에는 단추가 뭐고 없다. 그리고 오늘은 어차피 철조망 안 쪽만 보아도 상당히 먼 거리일 거라는 판단 하에 그냥 들어와서 다시 런닝 코스를 따라 뛰었다.
익히 보아두었던 테니스장과 승마장을 지나고 항공대를 지나고 캠퍼스 지역 관리사무소를 도니까 내가 항상 다니는 Language Centre로 가는 자그마한 다리가 나타나고 JSCSC 건물이 나타났다. 이 건물 앞 쪽이 내가 매일 뛰는 코스다. 오늘은 다른 길을 택하여 JSCSC건물을 뒤로 도니 큰 연못을 나타났다.
여기가 학교소개 책자의 배경으로 쓰였던 풍광이 괜찮은 장소다. 조금 더 가보니 축구장이 두개, 테니스장이 4면, 럭비구장이 하나 있었다. 어디 가나 푸른 잔디가 잘 가꾸어져 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철조망을 따라 방향을 바뀐 오솔길을 따라 다시 뛰어 갔더니 여기는 어제 저녁에 보아둔 곳과 연결되는 지점이다. 10분 정도를 더 뛰니 처음에 출발했던 기숙사가 보였다. 한 시간 가량 걸린 것 같다. 지난번에 기숙사에 있는 지도에 표시되어 있던 12Km코스가 이 코스를 말하는 것 같다. 어느새 날이 밝아 있었다.
어제 공고를 보니 오늘 아침과 점심은 우리 Kitchener Hall에서 Australian's day 행사를 하는 관계로 Roberts Hall에 가서 먹어야 한다. 샤워를 하고 아침식사를 위하여 Roberts Hall로 갔다.
내가 사는 기숙사와 어차피 마찬가지 구조와 음식이었지만 그래도 일주일을 묵은 곳이랑은 다르게 좀 낯설게 느껴졌다. 입맛도 없고 오랜만에 무리하여 뛰었더니 입맛도 없어서 달걀 후라이 두 개와 빵 한 조각으로 간단히 때우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일요일은 나같이 갈 곳 없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나가고 없다. 이 때가 찬스다. 오늘은 내 노트북을 이곳 LAN에 연결하여 사용하는 방법을 한번 연구해 보기로 하자.
일단 노트북을 가지고 컴퓨터실로 갔다. 컴퓨터실에 있는 데스크 탑의 뒤에서 LAN선을 빼어서 내 노트북에 연결했다. 요즈음은 별로 컴퓨터에 신경을 안 썼더니 그 다음에 네트워크 연결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헷갈린다. 일단 이것저것 열어보면서 기억을 더듬었다.
결국 방법은 알아냈다. 그러나 여기서 막혀 버렸다. 학교 측에서 보안상 IP Address를 볼 수 없도록 봉쇄를 해 놓았던 것이다. 이런 낭패가 있나? 여기서는 내 컴퓨터 실력도 한계다.
할 수 없이 그냥 데스크 탑을 이용하여 Internet을 연결하였다. 일단 Yahoo의 메일로 가서 살펴보니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그 동안 보냈던 메일들 중에서 대부분이 전달이 안 되고 전부 되돌아와 있다.
한참을 연구하다 보니 전달이 안 된 것은 전부 Hanmail.net다. 유료화로 인하여 수신이 안 되는 것 같다. 하여튼 영국 내에서 쉽게 사용이 가능한 학교 인터넷 e메일을 하나 만들어 보려고 노력했으나 영어 실력이 짧아서 머리만 아프다. 포기다.
그냥 후퇴하여 방으로 돌아와서 수첩정리를 하다 보니 곽주사님 집 전화번호가 보인다. 사무실에는 사람이 없겠지만 오늘이 일요일이고 지금 한국시간이 오후니까 통화가 가능할 것 같다. 그 동안 아무 소식을 전하지 못하여 걱정하고 있을 것 같아 일단 전화를 걸었다.
배중령이 가르쳐 준 인터넷 라인을 이용하였다. 마침 집에 있어서 통화가 되었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것, 그리고 열심히 꽃밭에서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 차 문제는 해결이 되었고 집 문제도 해결될 기미가 보인다는 것, 그리고 집을 구하는 대로 연락처를 주기로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혹시 행자부와 연락이 안될 수도 있으므로 그 쪽에도 내가 말씀드린 내용을 전화로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전화를 한 김에 올라 와서 Aberdin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김주열씨 한테 출발하기 전에 전화번호를 파악해 둔 번호로 전화를 했다. 한참동안 받지 않길래 내 핸드폰으로 연락하라고 메시지를 남기도 끊었다.
아무래도 아침에 너무 무리를 한 것 같다. 온 몸이 쑤시고 아프다. 오늘은 특별히 해야 될 일도 없으니 일단 침대에 누웠다. 어느 방향으로 누워도 편칠 않다. 역시 지나친 것은 뭐든지 금물이다.
조금 누워서 뒤척이다 보니 어느새 잠이 들어서 깨어보니 12시 30분이 되어 있었다. 아래 층 식당에서는 행사로 왁자지껄하다. 근처의 호주인들이 전부 가족 동반으로 모였으니 식당이 꽉 찬 것 같다. 요 맘쯤에 여러 나라가 각기 모임을 많이 하는 가보다. 며칠 전에는 독일인들이, 오늘은 호주인들이, 그리고 우리도 어제 Oxford에서 모임을 가진 것을 보니 말이다.
일요일 점심시간은 지금부터 13시 30분까지이다. 그런데 영 입맛이 없다. 그냥 잠시 창가에 앉아서 해바라기를 하며 이런 저런 상념에 잠기다가 오늘은 외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옷을 차려 입고 바깥으로 나갔다. 소개책자에 보면 레스토랑이 두 군데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거기까지 가서 외식을 할 처지는 아니고 갈 곳은 뻔했다. 앞에 있는 Macdonald로 갔다. 사람들이 상당히 바글바글했다. 주로 가족 단위로 오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뛰었다.
지난번 첫날은 문을 열고 들어갈 때부터 주눅이 들더니 오늘은 전혀 부담이 없다. 내 돈 내고 내가 먹는데 누가 뭐라겠나? 일단 들어가서 카운터에 있는 날씬한 흑인 소녀에게 "One Macchicken Priemere, fried potato and a Coke, please" 빅맥은 너무 커서 야채를 반 이상 흘리면서 조금 지저분하게 먹은 기억이 있어서 가격은 좀 비쌌지만 다른 메뉴를 선택했다.
지난번 빅맥을 시켰을 때는 잘 못 알아먹더니 오늘은 금방 알아듣는다. 다만 "Ok, @#$%, or take out?"이라고 묻는다. 앞에야 못 알아들었지만 take out이야 우리나라에서도 일상화된 영어 아닌가? "I'll eat here" 간단하다. 6파운드다. 우리나라 돈으로 13,000원. 배불리 먹은 건 없지만 외식치고는 가격상은 상당히 푸지게 먹었다.
다음은 옆에 있는 슈퍼마켓으로 갔다. 이제는 물건들이 어디에 있는지 잘 보인다. 우리나라의 Lotto와 같은 복권도 있고, 간단한 문구류도 있다. 주로 식품류가 진열되어 있지만, 샴푸, 린스, 면도기 같은 생활용품도 있고, 자동차에 비치해서 사용하는 물건들과 각종 CD며 DVD들도 있다. 요즘 면도를 하고 나면 얼굴이 상당히 당겨서 로션을 하나 사고 싶었는데 로션은 없고, 핸드크림이 있다. 그거 하나 사고 카운터로 가서 계산을 하였다.
돌아오면서 멀리에서 바라보니 배중령 댁은 차가 없는 걸 보니 Oxford에 있는 교회에 예배 보러 갔는가 보다. 그리고 내일 조금 옆쪽에 내가 월요일에 인수 받기로 한 폭스바겐이 차고에서 반쯤 나와 서 있다. 약간 돌아서 차 있는 곳으로 가 보았다. 혹시 그날은 어두웠고 비가 내렸기에 내가 잘못 볼 수도 있었기에 자세히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 본 것이 맞다. 정말 차 관리를 깨끗하게 하였다. 차 모양을 다시 보아도 맘에 든다. 나를 위하여 준비된 차라는 생각이 든다.
주인이 나와서 또 이것 저것 대화하면 귀찮을 것 같아 그 집 뒤쪽으로 해서 Watchfield를 조금 돌아보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그런데 오늘도 또 열쇠를 안에 두고 문을 잠겨 버렸다.
Reception에 내려가니 오늘은 새로운 Porter가 있다. 대머리에 상당히 유쾌해 보이는 노인네였다. 콩글리쉬로 상황을 설명하고 열쇠를 받아 들고 올라가 문을 열었다. 다시 열쇠를 반납하며 "What should I say in this situation? Please teach me the right expression" 이라고 했더니 "You can say 'I leave a key back in the door'"라고 한다.
대충 맞는 표현 같다. 충실한 학생이 되어 한번 복창하고는 "Thank you!"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올라 오려는데 "Hey, hey!" 다시 부른다. 내가 뭘 잘못했나 하고 돌아가 보니, "What's the meaning of your bow when you said 'thank you'?" 내가 고맙다고 하면서 머리를 숙인 것이 신기했나 보다. "In my country Korea, we make a bow when we say 'good morning' 'Hello' to elder people or 'Thank you' to anyone who help us"라고 대답했더니 "Very good!" 이라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여기서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법은 없다.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면서, 아니면 손을 살짝 들어서 인사를 하는데 내가 습관적으로 고개를 숙이니까 이상하긴 하지만 공손해 보였는가 보다. 하여튼 문화차이다. 그리고 나는 나보다 한참 나이 많은 노친네에게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서양식으로 인사할 자신은 아직 없다.
들어와서 공부를 좀 하다가 오후 4시경에 김주열씨한테 다시 한번 전화를 했다. 마침 집에 있어서 통화가 되었다. 무척 반가웠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앞으로 훈련계획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었다. 김주열씨는 8월에 훈련이 끝나고 복귀하도록 되어 있다.
5월 중에 나의 유학길을 도와 준 영국인 군수무관이 Scotland에서 결혼식을 한다고 하니 기회가 닿으면 결혼도 축하해 주고 김주열씨도 만나고 Scotland도 한번 둘 겸하여 가보고 싶다. 혹시 그 때 못 보면 귀국 길에 런던에 들러 Exeter에 있는 백광석 사무관이랑 같이 한번 만나자고 약속을 하였다.
상당히 꾀가 나고 하기 싫었지만 하루라도 예외를 두면 규칙이 무너질 것 같아 할 수 없이 주섬주섬 차려 입고 달리기를 하였다. 저녁식사는 정상적으로 우리 기숙사에서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식사하는 사람도 적고 해서 시중드는 아가씨들에게 상냥하게 인사를 했더니 웃으며 받아준다. 내친 김에 하나씩 음식을 가리키며 무슨 음식이냐고 전부 물어보았다.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는데 잘 못 알아듣겠다. 그냥 고맙다고 말하고는 밥(처럼 생긴 것)과 돼지고기 양념볶음(처럼 생긴 것)을 조금만 가지고 가서 간단히 먹었다.
저녁 식사 후는 TV Room에 가서 스포츠 TV에서 하이라이트를 보았다. 이 곳 사람들은 축구라면 사족을 못 쓴다. 그래서 축구팀과 유명한 선수들을 몇 사람 연구를 해서 화제가 궁할 때 써 먹으려고 가끔 스포츠 TV를 보고 있다.
한참을 신경 써서 TV를 보고 있으니 머리가 좀 아프다. 방으로 올라와서 어제 널어 둔 빨래를 걷어서는 정리한 후에 잠자리에 들었다.
<Monday, 26/01/2004>
아침에는 역시 추웠다. 며칠 전에 라디에이터를 수리를 하였으나 이 녀석이 소리만 요란하고 별로 난방효과는 없는 것 같다. 이불을 걷고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힘을 내었다.
우리나라에서 출발하기 전에 우체국 국제소포 무게를 맞추느라고 산 체중계로 몸무게를 재어보니 70Kg에 육박했다. 이 정도면 비상사태다. 얼른 일어나 침대 정리 후에 아침운동을 하고 돌아와서는 샤워를 하였다.
그런데 이 놈의 샤워기는 물을 틀어놓고 거의 10분 정도를 기다려야 따뜻한 물이 나온다. 운동을 마치고 들어오는 길에 먼저 샤워기 꼭지를 돌려놓고 방에 들어와 샤워준비를 마친 후 샤워장에 가니 겨우 따뜻한 물이 나오기 시작한다. 즐겁게 샤워를 마치고 나니 아침 7시가 조금 넘었다.
곧바로 그 동안 연락을 못 드린 사무실에 전화를 하였다. 과장님을 비롯하여 유학준비 할 때 도움을 주었던 분들에게 전화를 하고 나니 전화 카드가 다 되었다. 국방부는 지금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에 있나 보다. 새로운 국장님이 취임을 하였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내 자리도 아직 비어있는 것을 보니 조직개편은 이루어지지 않았나 보다. 하여튼 모두들 반가운 목소리들이었다.
조금 힘들긴 하지만 업무를 떠나 개인 발전을 위하여 노력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 내게는 무척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행자부에도 연락을 하였지만 오늘은 전체 워크숍을 하고 있기 때문에 통화가 곤란하였다. 방으로 올라오지 않고 곧바로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올라왔다.
오늘은 왠일로 청소부 아저씨가 오질 않는다. 월요일이라서 게으름을 피우시나 보다. 아저씨에게 열쇠가 주어진 것을 보니 주인이 없는 빈방이라도 청소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 그냥 학교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오늘은 Keith와 Sue의 수업이 있는 날이다. Keith의 수업시간에는 시간이나 화폐, 거리, 무게 등의 단위에 대하여 배웠다. 읽는 것은 할 만 한데 카세트를 통하여 듣는 것은 정말 어렵다. 20문제 중에 두 문제를 맞았다. 좀 창피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양 옆에 있는 아랍 녀석들은 10문제를 넘게 맞췄다. 아랍 애들은 수업시간에 되는 얘기, 안 되는 얘기 가릴 것 없이 엄청 나서서 떠든다. 그리고 강사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것을 보니 듣기도 어느 정도 되는 것 같다. 다만 읽고 쓰는 것이 약하다.
이 곳 Language Center에는 아랍인들이 전체의 1/3가량을 차지한다. 사우디, 쿠웨이트, 아랍연방, 이란 등에서 온 애들이 대부분인데 거의 같은 아랍어를 사용하는 데다 성격들이 다혈질이라 쉬는 시간에는 온통 아랍어 소리 밖에 들리질 않는다.
부자 나라들에서 온 아이들이라 영국에서도 나름대로 대접 받는 계층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을 위하여 저녁 시간에는 따로 강의가 개설되어 있는 정도이다.
Sue의 시간에는 크게 부담이 없다. 일단 문법을 중심으로 강의를 진행하므로 내 전공인데다가 다른 어느 강사보다도 발음을 천천히 그리고 분명하게 해주기 때문에 수업진도 따라가기가 쉽다.
끝날 무렵에는 Sue가 근래에 온 아랍애인 Salman과 Ohsama, 칠레 귀염둥이 Romina, 눈큰 일본 애 Yumi가 우리 클래스에서 조금 진도가 늦으니 다른 사람들이 양해를 하여 말하거나 읽을 때 천천히 해달라고 부탁한다. 나는 읽을 때 너무 빨리 읽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그거야 어렵지 않다. 상냥한 Sue 샘님 말씀이니 따라 주어야겠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JSCSC로 배중령을 만나러 뛰어갔다. 13시 10분에 만나서 대금을 지불하고 차 열쇠를 인수하기로 약속하였기 때문이다. 배중령은 마침 나와 있었지만 이집트인이 보이질 않았다.
이유인 즉, 차를 사고 팔 때 작성해야 할 서류가 집에 있고 소유주가 마누라 명의로 되어 있어서 오늘 저녁 집으로 와서 계약서를 쓰고 차에 대하여 자기가 간단히 설명을 한 후에 차를 가져가라는 것이다. 좋은 생각이다. 배중령과 헤어져 일단 기숙사에 복귀 후 점심식사를 하였다.
노트북을 열어서 공부를 하려는데 아무래도 CD-RW가 있어야 편리할 것 같다. 지금은 한글로 메일을 쓰기 어려운 데 여기서 아래아 한글로 작성 후 첨부물로 보내면 우리나라에서 읽어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영어공부자료는 대부분 미국식 발음이라 영국식과 매우 헷갈린다.
예를 들어 여기서는 알파벳 'o'는 그대로 'o' 로 발음한다. not을 '놑'이라 발음하는 식이다. 그리고 미국식처럼 발음을 생략하거나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러다 보니 미국식 교재로 듣기나 발음 공부를 한 나의 경우는 조금 혼동된다.
이 기회에 캠브리지에서 나온 리스닝 교재를 다운 받으려는 데 이럴 때 CD-RW가 매우 유용하리라 생각된다. 내 노트북에는 A드라이브는 없고 CD-Writer만 달려 있다.
바깥 날씨가 무척 쌀쌀하므로 일단 옷을 두껍게 차려 입고 학교 Spar Shop으로 갔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CD-RW를 팔지 않는다고 한다. 살 수 있는 곳을 물었더니 뒤 쪽에 있는 Stationary Store에 가보라고 한다. 캠퍼스를 돌며 한참을 뒤진 끝에 Central Store를 찾았다. 그런데 문이 닫혀 있었다. 문 앞에 붙어 있는 글을 보니 월, 화, 금요일에는 오전에만 수, 목요일에는 오후 15:00까지만 문을 연다고 되어 있다. 날씨도 추운데 헛탕 쳤다. 돌아오는 길은 더 추웠다.
기숙사에 돌아와서는 침대 속으로 들어가 카세트를 들었다. 그리고 4시 경에 런닝을 하고 샤워를 끝내고 나니 약속한 5시 반이 거의 다 되었다. 옷을 차려 입고 배중령 집으로 갔다.
아직 배중령은 돌아오지 않았고 글로리아가 애들 영어공부를 지도해 주고 있다. 여기서는 같은 학년이라도 교재가 학생들 수준에 맞추어 각각 다르다고 한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판단에 따라 레벨을 서서히 올려 가는데 5학년이 이 집 큰 딸 지성이와 부모님 없이 혼자 여기 와 있는 예원이는 10단계 중 6단계의 공부를 하고 있었다.
교재를 읽는 수준을 보니 우리나라 2-3학년 애들이 국어책을 읽는 정도의 수준이다. 그래도 글로리아가 상당히 애들 영어공부에 관심을 가진 덕분에 이 정도 수준에 오른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역시 애들은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다. 살살 꾀를 부리니 글로리아가 야단을 치지만 남의 자식에게는 아무래도 엄하게 대하기 힘든 가 보다. 사뭇 사정 조다.
곧 배중령이 돌아왔다. 둘이 함께 이집트인 장교 집으로 갔다. 초인종을 누르니 반갑게 맞이한다. 무바라크의 딸이라는 부인이 주스를 한 잔씩 내어와서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일단 차에 관한 서류들을 설명을 들으며 인수 받았다.
아직 사고 한 번 나지 않은 차임에 틀림없다. 주행검사도 받았고 세금도 문제없다. 이번 4월 달에 주행검사와 세금을 내는 때가 돌아오도록 되어 있다. 영어로 되어 있는데다가 차에 대하여 문외한인 내가 아무리 살펴보아도 도움이 안 되니까 배중령이 이것저것 살펴보며 필요한 것을 확인하였다.
다음은 차로 가서 상태를 자세히 점검하였다. 어제 오후에 깨끗이 세차 및 청소까지 하였다고 한다. 차 안이 정말 깨끗하고 쾌적하다. 배중령이 차 안에서는 절대 흡연을 하지 말라고 한다. 나중에 다시 되팔 경우 500파운드 이상 가격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공감이 갔다. 지금은 차 안이 매우 쾌적한데 담배냄새가 배기 시작하면 아무래도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차는 폭스바겐에서 만든 Passat라는 모델이다. 차 주인이 하나씩 기능을 작동시켜 가며 자세히 설명을 해주는 데 모든 기능이 이상이 없다. 그리고 차에 대하여 잘 모르는 내가 보아도 편리하게 만들어진 차인 것 같다. 백미러 방향까지도 차 안에서 조정이 가능하고 의자의 위치나 높이 머리받침까지도 원하는 대로 조정이 가능하다. 에어컨과 CD플레이어도 빵빵하고 트렁크는 무척 넓게 설계되어 있다.
제일 문제는 주행거리가 만만치 않다는 것인데 이 차는 99년산이고 독일 차들이 대부분 튼튼하게 만들어져서 큰 문제는 없으며, 배중령이 몰아본 결과 소음이나 진동이 별로 느껴지지 않아서 주행거리가 10만 마일이라는 것이 거의 믿기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나야 뭐 차를 안 몰아봤으니 일단 믿을 수밖에. 하여튼 나로서는 모든 것이 만족이다. 사실 오늘 오전에 중고상(여기서는 Garage라고 한다.)이 4,300파운드를 제시하면서 사겠다고 전화가 왔었단다. 그런데 이미 나랑 약속을 한 상태고 같이 공부하는 배중령 얼굴을 봐서 나에게 파는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집안으로 들어가서 계약 서류를 작성하였다. 간단했다. 이름 쓰고 주소 쓰고 서명하면 된다. 이렇게 하고 나서 전 주인이 차량관리사무소에 서류를 보내면 거기에서 다시 나에게 확인 후 서류를 보내 준다고 한다. 의외로 간단했다.
경조사에 쓰는 깨끗한 봉투에 200파운드짜리 여행자 수표 20장을 깨끗하게 넣어서 겉에는 "Thank you for your wonderful car! I'll remember you and your kindness" 라고 조금 아부성 문구를 써서는 돈을 소유주인 부인에게 직접 건네주었다. 매우 만족하는 얼굴이었다. Key까지 넘겨받고 난 후 앉아서 얘기를 좀 나누었다.
이 집에는 4개월 된 남자아기가 있었다. "What a cute baby!"라면서 얼러 주었더니 애기가 방실방실 웃는다. 이집트인들은 얼굴 윤곽이 뚜렷하게 생겨서 무척 인상적이다. 아기도 그 핏줄을 닮아서 매우 귀엽다.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서 차를 몰고 나오는 데 떠나는 차를 보면서 조금 섭섭해 하는 듯이 보이는 것은 자기가 아끼던 물건을 떠나보내는 자의 인지상정이겠지.
일단 배중령 집으로 차를 몰고 가서 주차를 시키고 그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였다. 오늘 메뉴는 닭죽이다. 막내 효성이가 닭고기를 워낙 좋아하는데 오늘도 닭고기를 먹자고 해서 준비했단다. 매우 맛있었다. 그런데 역시 효성이는 닭을 좋아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양손을 사용하여 아주 정신없이 먹는다. 표현이 좀 그렇지만 걸신들린 것 같다.
오늘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약간 익은 상태의 김치가 상위에 올라 있다. 한 접시는 내가 비웠다. 조금 염치없기는 하지만 자기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것도 만든 사람으로서는 기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자위해 본다.
저녁식사를 마치고는 곧바로 차량 보험문제로 뛰어 들었다. 영국에도 차량 보험이 여러 종류가 있는데 배중령이 지금까지 알아 본 바는 내 차의 전주인인 이집트인 장교가 가입해 있는 Tesco라는 회사가 가장 좋을 것 같단다.
혹시 늦어서 가입이 안 되면 어쩌나 염려하며 회사에 전화를 했더니 마침 전화통화가 되었다. 이름과 생년월일, 주소, 차고소유여부, 차종 및 등록번호 등과 차이 운전할 집사람의 간단한 신상을 알려주니 견적이 나왔다. 종합보험으로 514파운드란다.
운전을 전혀 하지 않았었기에 5년 무사고 증명이 없는 나로서는 상당히 싼 편이란다. 오랫동안 운전을 했던 배중령도 400파운드 가량을 내고 있으니 이 정도면 더 낮추기 곤란할 것 같다. 거기다 커버리지가 넓다. 유럽에서의 운전도 보장이 되고, 견인도 포함이 된다고 한다. 좋은 조건이라고 판단하여 가입했다.
걸림돌은 내가 운전연습이라도 하려면 지금 이 시간부터 가입해야 하는데 보험료 지불방법이 문제였다. 내가 가지고 온 한국에서 만든 Visa 카드를 불러 주었더니 곤란하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배중령 카드로 결제를 하였다. 돈 문제까지 신세를 지게 되었다. 조금 미안했다.
보험까지 가입했으니 이제 차 문제는 완전히 일단락되었다. 축하하는 의미로 글로리아가 와인을 한 병 들고 왔다. 여기서는 독한 위스키나 배부른 맥주보다 와인이 인기라고 한다. 한 잔씩 걸치니 오랜만에 먹는 술이라서 취기기 금방 오른다. 글로리아도 오랜만에 여러 가지 얘기를 늘어놓았다.
유쾌하게 지내다 보니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벌써 밤 열시가 되었다. 차를 기숙사까지 가져다 놓을 계획이었으나 와인 한 잔씩을 하였기에 내일 점심시간에 만나서 가지고 들어가기로 하고 헤어져 기숙사로 돌아왔다.
처음 내 차를 갖게 되었다는 기쁨에 서류들을 뒤적여서 정리를 하다 보니 어느새 12시가 다 되었다. 내일을 위하여 잠자리에 들었다.
'✒️ 긴 생각 짧은 글 > 2. 비스듬히 세상 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홀로서기 - 서정윤 (0) | 2008.09.04 |
---|---|
좌충우돌 촌놈의 영국 유학기(11) (0) | 2008.09.04 |
좌충우돌 촌놈의 영국 유학기(10) (0) | 2008.09.04 |
좌충우돌 촌놈의 영국 유학기(9) (0) | 2008.09.04 |
좌충우돌 촌놈의 영국 유학기(8) (0) | 2008.09.04 |
좌충우돌 촌놈의 영국 유학기(6) (0) | 2008.09.04 |
좌충우돌 촌놈의 영국 유학기(5) (0) | 2008.09.04 |
좌충우돌 촌놈의 영국 유학기(4) (0) | 2008.09.04 |
좌충우돌 촌놈의 영국 유학기(3) (0) | 2008.09.04 |
좌충우돌 촌놈의 영국 유학기(2) (0) | 2008.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