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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생각 짧은 글/2. 비스듬히 세상 보기

좌충우돌 촌놈의 영국 유학기(4)

by 무딘펜 bluntpen 2008. 9. 4.

<Tuesday, 20/01/2004>

어제 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인지 다섯시에 잠이 깨었다. 침대를 정리하고는 홍차를 한잔 마시며 영어 테이프를 몇 번 들으니 6시가 되었다. 간단한 운동복 차림으로 어제 정해둔 코스를 따라서 조깅을 했다.

군인들이 많아서인지 이 시간에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잘 아는 영어 중의 한가지인 "Good Morning!"을 남발하면서 두 바퀴를 돌고 나니 땀이 비 오듯  한다. 단언하건대 영국의 겨울 날씨는 별루 추운 것이 아니다. 영하로 내려가는 경우가 거의 없고 우리 늦가을 날씨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오늘은 조금씩 이슬비가 내린다. 어차피 우리나라처럼 쏟아지는 비가 아니니까 다른 사람들도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운동 후 샤워를 하고 돌아와서 방을 정리하다 보니 빨래감이 만만치 않다. 아직 아침식사는 멀었으니 한번 빨래나 해 볼까 하고 Laundry Room이라고 씌어진 곳으로 갔다. 드럼형 세탁기가 두개, 건조기가 두개가 있다.

한국에서 드럼형 세탁기를 써 본 경험이 없는지라 설명서를 열심히 읽었다. 토큰을 넣고 작동을 시키라고 한다. 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다 넣어 보았지만 크기가 맞지 않는다. 할 수없이 Reception으로 가서 "How can I work washing machine?" 영어스럽다. 알아듣는다. "You should use this token." 애들이 가지고 노는 제기 만들 때 사용하는 엽전처럼 생긴 토큰을 들고 보여준다.

받아 들고는 "Thank you"하고는 올라오려는데 "NO, no, no, no, no" 정확히 다섯 번을 외친다. 뭐가 잘못되었나? "쏼라 쏼라  one pound." 흠 그럼 그렇지. 공짜가 어디 있나? 토큰 하나 당 1파운드 20펜스씩 내고 2개를 구해 가지고 올라왔다.

식사 전에 일단 세탁기를 돌려야지. 그런데, 아차다. 아무리 둘러봐도 세제가 없다. 음 이건 또 어디서 구하나? 할 수 없이 또Reception에 갈 수 밖에. 내려가서 물으려는데 세제가 영어로 뭐더라? 이건 정말 어렵다. 다시 올라왔다. 컴퓨터를 켜고 한컴사전에 들어가서 '세제'를 쳤더니 'detergent'다.

의기양양하게 다시 내려가서 "Where can I purchase some detergent?". 못 알아듣는다. 세 번을 말했다. 그래도 못 알아듣는다. 바보! 할 수 없이 "The Chemical material for washing clothes"라고 했더니 겨우 "I understand, you say 'detergent'?"

이런 강세가 틀렸군. 나는 앞에다 강세를 두고 말했는데 이 녀석은 두 번째 음절에 두고 발음하는 것이었다. 어떤 단어는 강세가 의사소통의 Key가 된다는 걸 깨달았다. 하여튼 학교의 Spar Shop에서 세제를 판다는 정보를 알아내곤 이따가 수업 끝나고 사오기로 했다.

아침식사 후에 오전 수업이 9시 30분부터 시작하는데 걸어서 갈려면 9시에는 출발해야 하므로 준비를 서둘렀다. 그런데 "똑똑똑" 누군가 노크 후에 또 문을 연다. 윽! 어제의 그 발음 시원찮은 청소부 아저씨다. 그리고 그 뒤에는 그 아저씨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거한이 버티고 서 있다.

아저씨가 다짜고짜 들어와서는 뭐라고 쏼라쏼라 한다. Pardon?"과 "Sorry?"를 남발하면서 캐취한 내용인 즉 어제 와서 보니 난방이 시원치 않아서 자기가 다른 곳으로 옮겨 준다고 나한테 얘기하고 Reception에도 부탁을 했는데 누가 찾아와서 그런 얘기 하지 않았냐는 것으로 요약되는 얘기다.

어제 나한테 한 얘기가 그거였구나 하는 깨달음이 번쩍했지만 이미 닦아 놓은 터를 버리고 또 다른 방으로 갈 수는 없다. Radiator는 고장 났는지 작동되진 않지만 견딜만하다. 오히려 내가 겁나는 건 또 다른 새로운 장소로 옮기는 것이다. 그래서 "Oh, no. I like this room, I don't want moving out, no problem." 그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겨우 이해를 하는 눈치다.

그리고는 뒤에 데리고 온 거구를 Radiator로 데려가서 뭐라고 설명한다. Cold, not work, repair 등의 단어가 들리는 걸 보니 아마도 Radiator가 고장이라서 수리하라는 얘기 같다.

그리고는 거구가 작업을 하는 동안 본인은 간단히 청소를 하고 나간다. 나가면서 또 엄지를 치켜들면서 "Very Good!"하고는 나간다. 나 원 참. 도대체 뭐가 Good이라는 건지? 금연인 방에서 피운 담배꽁초까지 치워 주면서 칭찬을 해주는 데는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 내가 영어실력이 왠만큼 되면 이것도 물어봐야 할 항목에 끼워둔다.

하여튼 수업 받으러 갈 시간은 다 되었고 그렇다고 방안을 사람을 두고 갈 수는 없어서 수리가 끝나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다행히도 5분 정도 만에 수리를 끝냈다. 손을 대보니 따뜻하다. "It's very hot, Thank you, It's good repaired!" 하면서 아까 청소부 아저씨가 나한테 한대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매우 기뻐하며 자기가 오히려 "Thank you, Thank you"하면서 나간다.

이제 수업시간까지 20분 정도 남았다. 빠른 걸음으로 학교로 가니 10분 정도 걸린다. 의외로 가깝다. 오늘은 어제 잠깐 인사를 나눈 Callum이라는 젊은 강사가 첫 시간 담당이다.

어제 같이 공부했던 낯익은 얼굴들이 눈에 띈다. Sayah, Yumi라는 일본 애들과 오늘 새로 참가한 Yuki라는 여자, 독일에서 온 Cathreen, 짐바브웨 소녀 Violet, 칠레에서 온 애기 같은 애, 그리고 사우디의 AmadA, 폴란드 아줌마는 이름이 기억 나지 않는다. 그리고 새로운 얼굴 한 둘.

과거와 과거진행형에 대하여 배웠는데 그냥 그랬다. 다만 역시 나는 Listening이 약하고 얼굴이 좀 덜 두껍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둘째 시간에는 David라는 늙수그레하면서 상당히 재미있는 강사였다. 첫시간이 끝나고 둘째 시간까지는 30분 정도 휴식시간이 있는데 15분전에 들어갔더니 아까 그 멤버에 약간 명이 더 있었다.

일본 애 Sayah가 말을 걸어왔다. 보조개가 상당히 귀여운 애다. 근처 대학에서 Art를 전공한다고 들은 것 같다. "Yoon Seok, Please write your name in Chinese Character." 하긴 일본 애들도 한자를 읽을 줄 아니까. 칠판에 크게, 멋있게 내 이름을 한자와 영문으로 써 주었다. 그리고 金은 Gold, 允은 Truly, 錫은 white iron, 즉 Tin을 의미한다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주었더니 모두들 고개를 끄덕끄덕하는데 제대로 이해들은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자리에 들어와 앉았는데 폴란드 애 옆이다. 얘도 또 주문을 한다. 내 이름을 한글로 써 보라고 한다. 오늘 나를 훈련 시켜먹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친절하게 웃으면서 내 수첩에 "김 윤 석"하고 또박또박 이름을 써 보였다.

그런데 이 순간 전혀 생각지 않은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바로 내 뒤에서 "어머, 한국 분이세요?" 오잉! 뒤돌아보니 내 나이또래 정도의 여자가 서있다. 정말 예쁘다. 역시 한국 여자들이 예쁘다. 이 자리에서는 더욱 예쁘다.

한참 동안 한국말을 안 썼더니 말을 잊어버려서 반갑다는 인사도 못하고 그냥 "아! 예"하고 대답했다. 자리를 끌어다가 내 옆에 앉는다. 그리고는 그냥 별다른 얘기 없이 수업에 각기 충실했다.

중간 중간에 한국에 대한 질문이 나올 경우 나의 의견을 한국어로 한 두 번 물은 기억은 있다. 오늘 강의의 첫 번째 주제는 지난주에 매스컴을 통해서 들은 소식이나 기억에 남는 일이 뭐냐는 것을 돌아가면서 얘기하는 방식이었다.

내 차례가 되었다. "I arrived here UK on last Friday. I'm living in Kitchener Hall now. And I have no house, no car, no television, no radio, and can't use Internet, so I couldn't hear any news. Sorry."라고 했더니 강의실이 온통 동정의 눈빛이다. 다들 뭔가 안 되었다는 표현들을 한 마디씩 하는 것 같은데 못 알아듣겠다.

옆의 한국여자 분이 자기가 집구하고 차구하는 일들에 대하여 나를 도와주겠다고 한다. "I wholly expect it, Thank you very much". 나머지 수업은 강사가 인터넷에서 받아온 신문기사를 돌아가면서 읽고, 중간 중간의 단어에 대한 해설 및 내용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방식이었다.

나만의 오해일수도 있지만 내가 Reading은 좀 나은 것 같다. 다른 애들은 도대체 발음이 엉터리다. 통탄할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애들은 뭔가 열심히 얘기를 하고 강사와도 의사소통이 되는데 나는 잘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문제점을 나타내는 산 표본이 바로 나라는 생각이다.

하여튼 수업이 끝날 무렵에 그 여자 분이 목요일 수업자료를 강사에게 달라서 해서 나까지 챙겨 준다. 수업을 마치고 이것저것 얘기를 나누며 걸어왔다. 여자 분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 내가 자전거는 끌고 함께 걸어왔다.

자기는 여기 작년 7월부터 JSCSC에 1년 과정으로 와 있는 육군 중령인 남편을 따라 여기에 와서 지내고 있는데 처음에 이 과정을 듣다가 몇 달 쉬고 다시 지난주부터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여기 Swindon 지역으로 온 사람들은 모두 자기들이 미리 연락을 받아서 마중을 나가고 집을 구하고 차를 사는 등 초기 정착을 도와주었는데 내가 오는 것은 전혀 몰랐고 의외라고 했다. 내 자신도 어떻게 여기 왔는지 믿기지 않을 만큼 바쁘게 준비를 하였고 이 곳에 한국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여  연락할 생각조차 못했다고 했다.

한국 여자분(Gloria Jeong)은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도착한 날부터 고생한 얘기를 몇 가지 했더니 이해가 간댄다. 언제 저녁시간에 와서 같이 앞으로 일을 의논해 보자고 했다. 절대적으로 내가 바라는 바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당장 오늘 저녁식사 후에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약도와 전화번호를 받았는데 Shrivenham지역은 이미 정찰을 마친 상태라 어디쯤 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분들을 만난 것이 나에게 행운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다. 며칠 동안의 고민을 통하여 이제 어느 정도 영국생활을 혼자 헤쳐 나가겠다는 단단한 각오도 되어 있는 상태이고 내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해결해 나가는 것도 결국 나에겐 엄청난 경험과 재산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이분들의 도움을 받아 쉽게 적응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한 쪽은 어려운 길이지만 스스로 한 가지씩 배우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감으로써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길 일 테고 다른 쪽은 쉬운 길이지만 스스로 경험함으로써 얻는 성공의 기쁨이 적을 수밖에 없으리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제는 어차피 쉬운 길 쪽으로 갈 수 밖에 없으리라. 또 한 가지는 오늘 글로리아 정을 만나고 나서 30분 정도 한국말로 대화를 한 이후에는 다시 내 머리 속의 사고방식이 한국어로 세팅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요 며칠간은 어쩔 수 없이 무엇인가 행동하고 생각할 때 영어로 생각하고 상황에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어가 퍼뜩 떠오른다.

너무 생각이 많다. 일단 벌어진 일이니 하늘이 나를 도와주기 위해서 보내준 구세주라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 편하겠다.

아차! 글로리아 정을 만난 기쁨에 학교 Spar에서 세제 사오는 것을 깜빡했다. 점심식사를 때우고 영어테이프를 들으며 한 시간 가량 빈둥대다가 학교 Spar로 갔다. 주로 음식물이나 과자 부스러기, 음료, 비누, 세제, 그리고 학용품류를 파는 작은 가게다.

여자 점원이 한 명 있길래 내 발음도 시험해 볼 겸 "Where is the DETERGENT?"하고 둘째 음절에 악센트를 주면서 꽉 물었더니 알아먹는다. 위치를 가르쳐 주길래 한 통을 집어 들고 그 외에 필요한 게 있는지 돌아보니 노트가 있다. 그것도 집어 들고 카운터로 가서 "Is there a overseas telephone card?" "OK, we have it." 10파운드짜리 두개를 사 들고 기숙사로 복귀하였다.

복귀하는 길에 공중전화에 들려서 집사람에게 전화를 하였다. 그런데 전화 거는 게 또한 생각처럼 만만치가 않다. 일단 공중전화(payphone)에서는0800-073-1144를 누르고 다음은 내가 산 카드의 PIN을 눌러야 한다. 908-615-9537. 다음은 한국국가번호 82, 다음은 옥천의 지역번호 043에서 0를 제외한 43, 마지막으로 처갓집 전화번호 일곱 자리를 눌러야 한다.

통화료는 5분에 2파운드, 우리 돈으로 4,600원 정도 된다. 일단 통화가 되었다. 막상 통화가 되니 반갑기는 하지만 별로 할 말은 없다. 글로 쓰면 수다스러워 지지만 말은 적은 내 성격 탓이다.

도착하여 잘 지내고 있다.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오늘 한국 사람을 만나서 저녁에 그 댁에 가기로 했는데 집 문제로 차 문제랑 아이들 학교문제 등에 대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얘기를 하였다.

마누라는 내일 모레가 설날인데 내가 타국에서 혼자 보내는 것이 좀 가슴 아픈 모양이다. 1월 31일이 우리 어머님 생신인데 자기가 애들 데리고 시댁에 다녀올 테니 나는 여기에서 전화라도 꼭 드리라고 당부한다. 우리 마누라 사람됐다.

예전에는  시댁에 가는 것을, 특히 나 없이 가는 것을 별로로 여기더니 이제는 내가 얘기 꺼내기도 전에 먼저 다녀오겠다고 하다니. 상당히 고마웠다. 3주 후에 영국에 오면 유학기간 동안만큼이라도 정말 가정적인 남편이 되어 주어야지.

기숙사에 돌아와서 공부를 좀 하다가 다섯 시에 달리기를 하였다. 그리고 나서 빨래를 하려고 Laundry Room으로 갔더니 누군가가 이미 빨래를 돌려놓았다. 방에서 잠시 월요일에 Sue 선생님이 내 준 숙제를 하고서 30분 후에 가보니 빨래는 이미 끝났는데 주인은 어디 가고 없다.

이것들이 정말 매너 없네. 빨래를 꺼내 내팽개칠 수도 없고 할 수 없이 운동화를 가지고 가서 빨았다. 산 지 일년이 넘었는데 한 번도 세탁한 적이 없었던 것인데 구석구석 솔질을 해가며 깨끗하게 빨았다. 한국에서라면 상상도 못할 일인데 정말 내가 부지런한 '바른생활 사나이'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운동화 세탁을 마치고 가 보니 아까 그 녀석이 빨래를 마치고 건조기로 옮겨서 말리고 있는 중이다. 내 빨래를 집어넣고 설명서를 보면서 작동을 시켰더니 문제없었다. 세제가 마치 케이크 조각처럼 하나씩 포장되어 있어서 매우 편리했다. 어느새 저녁식사 시간이 되어 일단 빨래를 돌려놓은 상태에서 식사를 하러 갔다.

저녁 식사를 간단히 마친 후 식당 옆에 있는 공중전화박스에서 글로리아 정 집으로 전화를 하였다. 남편인 배중령이 받았다. 반갑게 몇 가지 얘기를 나누고 자기가 지금 나를 데리러 기숙사 앞으로 오겠다고 했다.

시간이 급하다. 빨래도 돌려놓았는데 할 수 없다. 아까 그 녀석도 빨래 돌려놓고 자리를 비웠으니 나도 그렇게 하는 수밖에. 그래서 사람은 함부로 다른 사람 욕을 하면 안 되는구나.

대충 옷을 차려 입고, 이민가방을 뒤져서 신라면 몇 개와 애들한테 줄 껌을 몇 통 챙겼다. Reception으로 내려가니 한눈에도 당장 한국 사람인지 알아 볼 수 있는 큰 키의 사나이가 반가워하며 악수를 청한다. 머리를 군인답게 짧게 깎았는데 바로 배기수 중령이었다.

배중령 집은 내가 예상했던 지역에 있었다. 아주 가까운 거리이고, 집 앞에 태극기가 걸려있다. 며칠 전에 정찰할 때 내가 왜 이 태극기를 못 봤나 싶다. 아마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앞을 지나가면서도 무심결에 지나친 것 같다.

배중령 댁은 애들이 셋이고 먼젓번에 3개월 과정으로 왔던 오중령이라는 분의 작은 딸아이까지 돌보고 있었다. 마침 글로리아 정과 애들은 옆의 일본인 집에 일본어를 배우러 가고 없었다. 소파에 편한 자세로 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배중령은 육사 43기로 올해 중령 진급을 하였단다. 예전에 인도, 파키스탄 업저버로 근무한 적도 있고, 연합사에서 근무하다가 진급 후 이곳의 JSCSC에 1년 과정으로 공부하러 와 있다고 했다. 집은 4 Bedroom의 매우 큰 집이었다.

지난주에 Heathrow 공항에 도착했을 때의 얘기를 하다가 영국 대사관의 한국 군수무관 얘기가 나왔을 때 화가 났다. 배중령이 지난번에 런던에 있는 대사관에 갔을 때 군수무관인 윤중령에게 인사를 하고 왔다고 한다.

그러니 아마도 배중령이 이곳 Shrivenham에 살고 있다는 것을 윤중령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몰랐다고 하더라도 모든 유학생들은 도착하면 대사관에 연락을 취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명부를 찾아보면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을 텐데 분명히 도와줄 수 없다고 내게 말을 했다.

대사관에 내가 전화 했을 때 본인이 직접 도와주지 못할 상황이라면 배중령 연락처나 하다못해 여기에 한국인 장교가 있다는 얘기라도 해주어야 할 것 아닌가? 배중령 뿐만이 아니라 Swindon 지역에는 해군의 문대위도 와서 공부하고 있다는데 윤중령은 나에게 아무 얘기도 없었다. 군수무관의 역할이 물론 영국에 있는 교민들이나 유학생을 챙기는 일이 주 임무는 아니지만 같은 국방부 소속의 사람들끼리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든다.

30분 정도 후에 글로리아가 애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큰애가 11살이고 제일 막내가 6살이다. 아직 애들이 어려서 매우 부산스러웠지만 오랜만에 사람 사는 집에 온 것 같아 오히려 좋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새로 만난 한국인이라서 매우 반가워하는 것도 같다.

여자 애가 셋, 남자애가 하나인데, 남자애는 우리 작은 딸 다민이랑 동갑이다. 조금 있으면 여자 친구가 올 거라고 얘기해 주었더니 매우 흥미를 갖는다. 짜식, 매우 까졌군.

애들 학교문제가 주로 얘깃거리였다. 이 곳의 Watchfield Primary School은 영국에서도 알아주는 International School이라고 한다. 특히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오는 아이들을 위한 배려가 대단하단다. 다만 우리의 중학교 과정인 Secondary School은 여기서 차타고 15분 거리인 Faringdon에 있는데 외국인에 대한 배려가 적어서 처음부터 거기로 가면 조금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한다.

큰 애가 91년생이니까 올해 Secondary School에 가야 하지만 1년 정도 늦추고 Primary School의 6학년으로 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신라면을 주었더니 "이 귀한 걸? 하면서 매우 좋아한다. 오랜만에 -그래 봤자 일주일도 안 되었지만 만난 우리나라 사람이라 정신없이 이것저것 얘기하다 보니 어느새 10시다. 넘 오래 있었다. 배중령이 다시 자기 차로 기숙사까지 데려다 주었다.

글로리아는 내일 학교의 1일 선생님으로 임명되어 한국 및 우리나라의 설날 풍습에 대하여 설명하기로 되어 있단다. 그 때 내가 가지고 온 한국에서 만든 껌을 주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해서 리필용 봉지에 든 자일리톨 두개를 배중령 편에 보냈다.

유학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하는 것은 제일 중요한 목적이겠지만 나름대로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나라의 이미지를 외국인들에게 전해주는 외교사절의 역할도 부수적으로 맡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배중령은 현재 중령(진) 신분이라 나와 비슷한 수준의 월 1,480파운드 정도의 체재비를 받는다. 외국인 장교에게 특별히 제공되는 관사에 사는데도 불구하고 750파운드의 월세를 내고 나면 나머지로 한 달을 버텨야 하는데 아무래도 버겁다고 한다. 봉급통장에서 많은 부분을 송금 받아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실정인 것 같다.

나 역시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하긴 국가에서 돈을 대주어서 외국에 나와 새로운 학문과 경험을 쌓는 것만 해도 그게 어디인가 마는 한 가지 욕심을 내자면 이곳에서 생활하다 보면 영국 사람들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과 어울릴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든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일년에 한두 번 고국을 소개하는 행사가 있는데 이럴 경우 행사경비가 수월치 않단다. 미국이나 사우디, 독일 같은 나라에서는 정책적으로 이런 비용을 지불하여 주는데 우리는 그런 제도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개인들이 모아서 행사를 치룰 수밖에 없다고 한다. 다른 나라들은 다 하는데 우리만 빠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외국인 장교들을 일년에 몇 번 정도 집에 불러서 간단한 식사라도 하려고 하면 그 비용 또한 무시할 수 없다고 한다. 내일 같은 경우도 글로리아가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1일 교사로 임명되어 한국을 소개하게 되면 한국소개 테이프나 책자 또는 아이들이 흥미를 가질 만 한 기념품 같은 것을 제공하면 상당한 홍보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회는 영국뿐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는 이곳에서는 더욱 그 홍보효과가 클 것이라고 생각된다. 외국에 나와서 애국자 아닌 사람 없다고 이들도 한 가지, 한 사람이라도 우리나라를 홍보하기 위하여 무척 애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으며, 가능한 한 이런 부분이 개인 부담이 아닌 어느 정도 국가에서 지원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외국에 내보내는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생활 하는 지가 바로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들의 인상을 많이 좌우하므로 유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이 민간 외교관임을 명심하고 행동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국가에서도 우리의 국력에 걸 맞는 자세를 보일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이미 돌려둔 세탁물은 꺼내서 건조를 시키려고 하니 이미 시간이 너무 늦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 것 같다. 일단 방으로 가지고 들어와서 책상, 소파 등 귀퉁이에 빨래를 널어놓았다. 보기는 흉하지만 할 수 없다.

세면을 하고 나니 11시다. 이제 전화 카드도 생겼고 전화 거는 방법도 알아냈으니 12시(한국시간으로 아침 9시)까지 기다렸다가 사무실이랑 몇 군데 전화를 해야지.

배중령이 알려준 전화를 싸게 거는 방법이 있었다. PIN번호를 누른 후 08452-445-445를 누르면 시내통화 요금이 적용된단다. 인터넷 전화의 일종인 것 같다.

이것을 이용하여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아무도 받지 않는다. 뭐가 잘못 되었나 해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몇 번이나 걸었다. 그래도 아무도 받지 않는다. 행정용 전화라서 그런가 해서 집사람한테 다시 전화를 했다.

받는다. 집사람에게 사무실에 아무도 받지 않는다고 했더니 웃으면서 설날 연휴 아니냐고 한다. 맞다. 연휴인데 누가 있을 턱이 없지. 이런 바보. 집사람에게 이민 가방 싼 것 중에서 큰 짐은 내려놓고 여기 가지고 와서 먹을 수 있는 음식물 위주로 짐을 싸는 것이 좋겠다고 얘기했다.

방으로 돌아와서 잠을 자는데 잤다. 다른 때는 좀 일찍 잤는데 오늘은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늦어서인지 매우 피곤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뇌리를 복잡하게 오고 간다. 그러나 쉬자.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뜨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