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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수의 일상사

[일상] 소소한 일상의 소중한 의미

by 무딘펜 2016. 12. 4.

  "장미꽃을 그렇게 소중하게 만든 것은, 그 꽃을 위해 내가 들인 시간이다."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작지만 지속적인 관심이 소소한 행복감을

나에게 되돌려 준다.


  사무실 앞 공터에 있는 주차장에서 누군가 양동이에 물을 받아 놓고 걸레를 적셔서 차를 닦고 있다. 세차장에 가면 가벼운 비용으로도 반질반질하게 만들 수 있는 걸 가지고 저렇게도 할 일이 없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기 애마에 대한 사랑과 여유가 부럽기도 하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2000년대 초 영국 유학 시절이 생각난다. 4000파운드를 주고 영국 합참대학에 유학왔던 이집트인 장교에게서 5살짜리 중고 폭스바겐 PASSAT2.0을 샀다. 90년대 초에 면허증을 따긴 했지만 그동안 차를 몰아본 적도, 차를 소유한 적도 없었던 나는 그 차를 정말 좋아했다. 매일 학교까지 몰고 다니고, 시간날 때마다 가족들을 태우고 돌아다녔다. 그리고 주말마다 세차를 하고 가끔씩 왁스까지 칠해주는 지극 정성을 다했던 기억이다. 조그만 흠집이라도 생기면 DIY 가게에 가서 흠집 제거제를 사다가 정성껏 닦아 내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고 이웃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살던 곳은 영국의 시골 마을이었는데, 우리나라의 면 소재지 옆에 있는 자그마한 동리를 생각하면 된다. 좁은 동네라서 모두들 알고 지내는 이 조그만 공동체에서는 서로 돌보아주는 면도 있지만 상호간에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혹시라도 먼지 쌓인 차의 주인에 대해서는 주변 이웃들이 동네 이미지에 안 좋다고 잔소리를 늘어놓기도 하였다. 


  차 문제 뿐만 아니라 여름철이면 주말마다 100평 남짓한 정원을 잔디 깎는 기계를 돌려서 말끔하게 이발을 시켜줘야 했다. 단층 건물에서 세들어 살긴 했지만 내가 살던 집의 정원은 얼마나 넓었던지 채소밭 하나를 가꾸고, 그 옆에서는 배드민턴 게임을 해도 될 정도였다. 거기다가 집 앞에는 작은 정원이 하나 딸려 있기도 했다. 그러므로 잔디깍는 것 뿐만 아니라 철마다 백합이나 장미, 그리고 내가 이름도 잘 모르는 새로운 화초를 가꾸는 일도 빼놓을 수 없는 나의 주말 과제였다.


  농촌에서 농삿일을 거든 폼이 있어서 할 만은 했지만 그래도 처음에는 힘들고 귀찮았는데, 하면 할수록 나름대로 재미도 쏠쏠하고 반짝이는 차와 정원과 꽃들을 바라보며 말로 표현 못할 흐뭇함을 즐기기도 하였다. 그리고 2년 여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다음에는 그러한 생활이 문득 문득 그리워지곤 한다.


  내가 관심을 기울이고 사랑해 줄 대상이 많이 존재한다는 건 상대보다도 오히려 내가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일찍 퇴근하여 서재라도 정리하여야겠다. 책상 위도 좀 훔치고 탁자 위에는 장미 한 송이라도 꽂아야겠다.


<어린왕자>에 나오는 구절이 입가를 맴돌아 찾아보았다.


 "장미꽃을 그렇게 소중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시간이란다." 
  "내가 나의 장미꽃을 위해 소비한 시간이라..." 
  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러나 네가 나를 기르고 길들이면 우린 서로 떨어질 수 없게 돼. 넌 나에게 이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사람이 되고 난 너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