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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생각 짧은 글/1. 유쾌한 백수생활

야후 블로그 - 46. 고향만감

by 무딘펜 bluntpen 2008. 9. 4.
고향만감
2007/07/10 오후 3:57 | 혼자만의 생각

메마르고 바쁜 도회생활에 지칠 때면 나름대로 핑계를 만들어 고향에 다녀오곤 한다. 예전같으면 기차타고 버스타고 그리고 나서 고갯길을 한참 걷거나 택시를 타고 다녀올 길이지만 이제는 제법 입에 풀칠할 정도는 되었답시고 내 차를 몰고 가면 서너시간 정도면 고향에 닿을 수 있으니 세상 참 편해졌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고향에 갔다 올 때마다 아쉽고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몇년 전부터 몸이 편찮으신 어머님을 도회로 모신 처지라 고향집도 없고 반겨줄 사람도 없는 고향이지만 그래도 꿈속에라도 마음껏 뛰어놀 나의 마음의 보금자리였는데, 70년대의 새마을 운동- 당시는 멋모르고 그것이 발전의 동의어로 생각했었는데 - 이후로 점점 문명의 흙탕물을 뒤집어 쓴 시골모습이 그리 눈에 차지는 않는다. 더구나 몇해 전에는 큰 장마가 온통 할퀴고 헤집고 지나간 다음부터는 고향산천이 온통 창자를 드러내고 신음하는 사냥당한 짐승의 모습인양 하여 몹시도 안스럽기만 하다.

한때는 소달구지에 쌀가마랑, 나무짐 또는 멀리 도회로 떠나는 이삿짐을 싣고 놋쇠방울 소리를 청명하게 울리며 느릿느릿 움직이던 신작로길은 온통 시커먼 아스팔트로 뒤덥히고, 마을 사이의 경계 구실을 하던 키 큰 미류나무는 밑둥까지 파헤쳐져 흔적도 없다. 송사리떼가 한가로이 노닐다 장난꾸러기의 돌팔매질에 깜짝놀라 허둥지둥대던 징검다리위로는 커다랗고 위압적인 현대식 시멘트 다리가 떡 버티고 서있다.

더욱 가슴이 저려오는 것은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가 이미 폐교가 되어 그 깔끔하던 모습이 누더기처럼 되어 마치 뒷골목 막걸리집 같은 수련원 간판이 걸려 있고, 뛰노는 아이들 하나 없이 썰렁한 모습을 보게 되는 점이다. 아름답게 교정을 감싸안고 독특한 향기를 내뿜던 측백나무 울타리랑 소사아저씨의 정성이 듬뿍 배어 금방 이발관에서 면도하고 나온 듯한 신선함을 폴폴 풍기던 가지런한 회양목 화단, 층층이 계단지어져 자태를 뽐내던 향나무, 그리고 이맘때 쯤이면 목청껏 노래부르는 매미들을 유혹하던 늠름하고 듬직한 기사를 연상케하던 아름드리 플라타너스들. 이제는..... 없다. 아니 일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옛날의 그 모습들은 아니다.

하긴 모두가 떠나고 온갖 것들이 변하는데 고향산천만 그리고 내 기억속에 자리잡은 그 교정만 옛모습을 지켜주길 바라는 것부터가 내 부질없는 욕심의 소치임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고향을 다녀올 때 마다 느끼는 왠지 모를 배신감은 오래전에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 간간이 꿈같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우리 모두의 가슴에 남는 씁쓰레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언제나 한가지 안도감으로 남는 것은 시골 마을 앞을 수호신인양 듬직하게 지키고 서있는 오백살도 더 먹은 느티나무이다. 나무밑에 넙적한 돌들을 깔아놓아 여름철이면 동네 사람들의 쉼터로 더위를 식혀 주었고, 단오 때가 되면 동네 장정들이 높다랗게 매어놓은 그네를 타며 훨훨 꿈을 펼치던 그 나무.

원래 이 느티나무는 두 그루가 나란히 심어져 있었는데 약간 작은 나무는 밑둥치에 큰 구멍이 있었고 거기에 동네 개구쟁이들이 불을 피우며 놀곤 했었다. 그런데 내가 중학교 다니던 어느 여름에 동네 후배녀석이랑 둘이서 꼭대기 쯤 올라가 말을 탄답시고 흔들며 놀다가 밑둥치를 뚜~욱 부러뜨려버렸다. 그 후로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미안한 감정을 느끼곤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시절의 기억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느티나무 껍질을 만지면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끼곤 한다.

이제는 영원히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이고 어린시절이기에 아쉬움이 가슴을 에리게 하지만 변함없이 고향을 지키는 느티나무와 약간은 변한 모습이나마 만나면 당장 개구쟁이 시절의 별명이 퍼뜩 떠오르는 어린시절 친구들 모습에서 그 꿈같이 아름답던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며 미소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