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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생각 짧은 글/1. 유쾌한 백수생활

[일상사] 오랜 자취생활에서 터득한 인생의 진리

by 무딘펜 bluntpen 2011. 7. 14.



   중고교 시절 대부분을 나는 자취생활을 하며 학교를 다녔다. 워낙 깡촌놈이라서 중학교조차도 집에서 20리는 떨어진 면소재지로 유학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자취생활의 어려운 점에 대해서야 말해서 무엇하랴만 사실은 누구에겐가 간섭받지 않고 내 나름의 생활을 꾸려나간다는 해방감은 하숙생활보다 나에게는 훨씬 더 잘 맞았던 것 같다.

   더구나 자취생활을 통하여 나는 두가지 (내 나름대로 유익한) 좋은 점을 가질 수 있었다. 첫째는 점심을 당연히 안 먹는 것으로 습관이 들었다는 점이다. 물론 처음에는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다. 자취생활을 하면서 집에서 때우는 것이야 간장에 밥을 비벼 먹더라도 어떻게든 때울 수가 있는데, 항상 고민되는 점은 점심 도시락이었다. 밥을 짓는 일이야 간단하지만 도시락 반찬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신경쓰이는 일인가?

   그러다보니 점심을 굶는 것이 밥먹는 일처럼 되었고 결국 지금도 점심을 안 먹는 것이 나의 정상적인 식습관이 되었다. 물론 아주 중요한 약속이 있는 경우는 예외지만 말이다. 하여튼 나름대로 길다면 긴 점심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건 장점이 아주 많다. 사실 내 블로그의 글들도 점심을 통하여 작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좋은 점은 긴 자취생활 끝에 밥하고 간단한 반찬 만드는 일은 나름 도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휴일이나 시간이 나면 집에서 예전의 그 요리(?)실력을 발휘하곤 하는데, 내 착각인지는 몰라도 집사람보다 내가 한 음식이 애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식사준비과정에서 가장 힘든 골치거리는 뭐니뭐니해도 설거지다. 요리야 나름대로 창의성도 발휘하고, 맛있게 먹을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준비하면 나름 재미도 있는데, 맛있게 식사를 한 다음 포만감에 다소 노곤한 상태에서 쌓여있는 설거지 꺼리를 바라보면 누구라도 귀찮다는 생각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자칭, 타칭 현모양처인 내 집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식사가 끝난 다음에 눈치를 보면 설거지에 대해서 귀찮아하는 얼굴 빛이 역력하다. 식사가 끝난 한참 후에 목이 말라서 물 한잔 마시려고 주방에 가보면 저녁식사 후 쌓아놓은 그릇들이 싱크대 가득한 경우가 허다하다. 

   나는 평상시는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지만 요즈음은 좀 여유가 있어서 함께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능하면 내가 설거지를 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설거지도 요령인데, 먼저 초벌로 한번 헹군 후에 퐁퐁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음식 찌꺼기나 말라붙은 밥풀같은 것은 미리 한번 헹구어 씻어낸 후 설거지를 한다. 내가 설거지를 하는 날은 나는 가족들에게 스스로 먹은 그릇은 먼저 싱크대에 가져다 놓으면서 초벌로 헹구어 두도록 부탁(?)한다.

   두번째는 분류를 잘 해야한다. 깨끗한 것에서부터 기름기가 묻어서 닦기 힘든 것까지... 이것들을 뒤섞으면 대충 씻어도 될 그릇까지 손이 훨씬 많이 가게 된다.  또한 크기에 따라 분류를 한다. 수저, 공기, 접시, 냄비류... 

   나의 설거지 순서는 깨끗한 것부터... 큰 것부터 퐁퐁을 묻혀서 닦는다. 닦아놓은 큰 그릇안에 작은 그릇을 닦아서 넣고 물을 틀어두면 헹구는 일이 한결 편하다. 그리고 부피도 작아져서 작업의 능율이 오른다. 헹구는 순서는 작은 것부터...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내가 자주 설거지를 도와주는 자상한 남편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예전에 자취할 때 익혔던 요령일 뿐이고, 자주 도와주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항상 갖고 산다.

   그리고 설거지에서 배우는 중요한 교훈 한 가지... 어차피 다음번 식사를 위해서 설거지를 안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것을 미루어 놓았다가 다음 식사를 준비하면서 설거지를 하게 되면 항상 싱크대는 안 씻은 그릇으로 지저분하고 냄새를 풍기게 된다. 그런데 식사가 끝난 후 재빨리 설거지를 끝내게 되면 언제라도 깨끗한 싱크대를 유지할 수 있다. 

   어차피 한번 해야하는 설거지. 이를 언제 하느냐에 따라서 항상 지저분한 싱크대일 수도 있고, 항상 깨끗한 싱크대일 수도 있다. 세상 살다보면 이와 같은 일들이 많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을 미루다 보면 피하지도 못하고 결국 그 일을 하게 되지만 뒷맛은 항상 찜찜한...

   이왕 해야하는 일이라면 신속하게 그리고 즐겁게 해치웁시다.(나에 대한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