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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생각 짧은 글/2. 비스듬히 세상 보기

좌충우돌 촌놈의 영국 유학기(5)

by 무딘펜 bluntpen 2008. 9. 4.


<Wednesday, 21/01/2004>

아침부터 몸이 좀 처진다. 그래도 일어났다. 간단히 잠자리를 정리하고는 여섯시부터 조깅을 하였다.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내가 도착한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까지 4일 연속하여 해가 반짝 떴었는데 어제부터는 우중충한 날씨가 이어진다.

배중령한테 물어본 결과 며칠 전처럼 겨울 날씨가 좋은 경우는 매우 드물단다. 아마도 내가 영국에 온 것을 환영하는 의미로 며칠간 연속 날씨가 좋은 것이라나. 후후.

식사 후에 방으로 돌아왔다. 방의 티 테이블에 보니 팻말이 있다. 한 쪽은 "Tea, Please!" 다른 쪽은 "Don't disturb me!" 오늘은 이걸 연구해 보아야겠다.

오늘은 방이 세탁물로 좀 어지러우니 청소부 아저씨가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 "Don't Disturb me"를 걸었다. 아홉시가 되었고 청소부 아저씨가 열쇠를 쩔렁거리며 돌아다니는 소리도 들리는데 내 방에는 노크가 없다. OK, 성공이다. 이건 이럴 때 써먹는 거구나. 가방을 싸들고 Language Centre로 갔다.

오늘은 첫 시간이 Keith라는 강사다. 내 옆 자리에는 Heike라는 뚱뚱한 독일 여자가 앉았다. 강의 진행이 넘 빠르다. 오늘은 옆 사람과 공동으로 뭔가 작성하고 발표하는 것이 많았는데 조금 어려웠다.
예를 들면 선거 캠페인을 작성하는 것은 당 이름을 정하고 구호를 정하고, 세금, 소비, 교육, 환경문제 등에 대한 정책을 작성하여 발표하는 것인데 후! 한글로 해도 어려운 걸 영어로 하라니 강의 시간이 좀 길게 느껴졌다.

두 번째 시간은 내가 여기 와서 첫 번째 수업을 받았던 Sue가 담당 강사이다. 굉장히 친절한 여자라서 마음에 든다. 표정도 대단히 풍부하고 특히 발음을 정확하게 해주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것 같아 고맙다. 그리고 구성원도 내가 여기 온 첫날과 같다.

오늘은 Poland인인 Dorota가 내 짝이다. 부가의문문을 만드는 것이 첫 과제였는데 나야 말은 못해도 문법은 전문이니 쉬웠지만 Dorota는 한숨을 푹푹 쉬며 어려워했다.

두 번째 주제는 각종 음악 장르에 대한 것이었는데 음악을 틀어주고 무슨 장르인가 알아맞히고 나서 그것에 대하여 토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Heavy Metal과 Salsa가 나오자 칠레에서 온 애기같이 생긴 Romina가 귀엽게 춤을 춘다. 모두들 웃으면서 박수.내가 보기엔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데 숙녀에게 나이 묻기는 좀 뭣해서 그냥 대학생 정도로 취급하기로 했다.(몇 달 후에 떠날 때 물어보니 중3 나이더군.)

짐바브웨에서 온 Violet은 여기 온지 2년 반이 되었다고 한다. 뭘 하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는데, 학생이겠지. 처음 온 날 나의 파트너였기에 나만 보면 굉장히 친절하게 군다.

일본에서 온 약간 머리가 짧은 여자 애 Sayah는 공부를 상당히 열심히 한다. 수업 전에 강의실에 들어가면 일찍 와서 책을 펴놓고 공부를 하고 있다. 열심히 예습 복습을 한 덕분인지 수업시간 전체 분위기를 좌우한다.

그 옆의 같은 일본 애인 Yumi는 눈이 엄청 크고 순하게 생겼는데 아직 영어에 익숙치 못하여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사우디에서 온 육군 장교인 AhmadA는 9월 달에 나와 함께 RMCS의 석사과정에서 공부하기로 계획되어 있는데 IELTS 성적이 나와 마찬가지로 Level 7.0수준을 받아야 하는 점을 상당히 부담스러워 했다. 그 녀석이 제안하기로는 여기 Language Centre에서 배우는 이외에 별도로 공부를 하지 않으면 그 정도 점수를 따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고 한다. 나도 걱정이다.

독일여자인 Cathleen은 굉장히 내성적이다. 독일어는 영어와 어순이 같고 단어도 비슷한 것이 많아서 상당히 쉬울 텐데도 의외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인상이다. 체코에서 온 Lenka라는 애는 오늘 수업에 참가하지 않았는데 상당히 쾌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여튼 사흘째 수업을 무사히 마쳤다.

점심식사를 위하여 기숙사 식당으로 내려갔다. 혼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저 앞에서 왠지 눈에 익은 하얀 콧수염 사내가 걸어오더니 음식을 담아서 내 옆에 앉는다. 다정스레 인사를 하는데 기억이 날 듯 말 듯 하다. "Can you remember me?" 나에게 묻는데 어디서 만났더라? "Are you working in the Main Reception?" 나의 물음에 웃는다. 잘못 짚은 것 같다.

아하! 퍼뜩 생각이 났다. 첫날Language Centre에서 접수할 때 Margaret 다음으로 만나 대화를 나눈 John이라는 사내다. 나이가 드니 나의 기억력도 이제 한계에 이르렀나 보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Oh! John, Sorry. I don't remember you"라고 재빨리 사태를 수습했지만 왠지 찝찝하다.

하긴 요 근래 외국 사람들을 하도 많이 만나다 보니 그 얼굴이 그 얼굴 같다. 평소에 사람 얼굴과 이름은 잘 기억하는데 이번엔 실수를 하고 말았다. 사람이면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영국인들은 특히 자기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는데 나는 John에게 이제 찍혔다.

점심식사를 마치고는 오늘 목표를 인터넷 접속으로 잡았다. 일단 Reception으로 갔다. 이곳에는 낮에는 Receptionist - 우리나라로 치면 안내요원인 Niki라는 여자가 앉아있고, 일과 후부터 다음날 아침까지는 Porter라고 불리는 두 사람이 교대로 근무를 한다.

Niki에게 "I want to use Internet, but I have no ID and Password?"라고 했더니 어디엔가 전화를 하더니 전화번호 하나를 적어준다. 5775. "If you call on this number, They'll give you a password." 일단 전화번호를 받아 들고 공중전화로 가서 전화번호를 누르려는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이곳 전화번호는 지역번호 다섯 자리와 전화번호 여섯 자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Niki가 준 번호는 네 자리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아무리 보아도 보통 전화번호는 아니다. 구내전화번호 같다.

할 수 없이 다시 Niki에게 가서 "I don't understand this number, is this the Extension number?"라고 물었더니 맞다고 한다. "How can I use a Extension?" 뭔가 장부를 꺼낸다. 거기다 이름과 시간을 쓰란다. 필요한 사항을 기록하고 나니 Key를 하나 주면서 바로 앞에 있는 Booth를 가르쳐준다.

진작 그렇게 가르쳐 줄 것이지 사람을 고생시키다니. 하여튼 Booth를 열고 전화를 걸었다. 여기 와서 제일 겁나는 일이 전화 통화하는 것이다. 얼굴을 마주보고 얘기하면Body Language라도 사용해서 의사소통을 하겠는데 이놈의 전화는 전혀 그것이 통하질 않으니.

하여튼 일단 전화를 걸고 상대방이 얘기를 꺼내기 전에 다짜고짜 내가 할 말을 해버렸다. "I'm Yoon Seok Kim come from Korea. I live in this Kitchener Hall and I study in Language Centre. I wish to use Internet, Can you give me a password?" 다행히도 내가 말하는 동안에 중간에 말을 끊지 않았다.

그러나 들려온 대답은 "Sorry, You should tell it the language centre?" 일단 버텼다. "No, I'm living here in Kitchener Hall, and I want to use this hall's computer" 그러나 어떤 여자인지 정말 차가운 목소리다. "You should tell it Language Centre." 더 이상 버티려고 해도 이제 영어실력의 한계가 왔다. "OK, Thank you" 전화를 끊었다.

방으로 돌아와서 영어공부를 조금 하다 보니 몸이 으슬으슬 춥고 피곤하다. 지금 내가 해야 될 일이 뭔가 생각해보니 일단 글로리아에게 전화를 하여 집 문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아보는 것이 급선무인 것 같다.

그러나 서너 번이나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나 계속 통화 중이다. 내일 같이 강의를 듣도록 되어 있으니 만나서 얘기하는 수밖에 없다. 바깥이 매우 시끄럽다.

내다보니 운동장에서는 Rugby게임이 한창이다. 여기에서도 수요일 오후는 전투 체육의 날 행사를 하는가 보다. 그런데 상당히 노친네들인 것 같은데도 힘이 펄펄 넘친다. 여기서는 일과 후에 각종 스포츠나 레저생활을 즐기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승마를 하는 사람도 많고 럭비, 축구, 달리기 등 자기 몸 관리에 상당히 신경들을 쓴다. 물론 그래도 우리나라보다 중증 비만자가 훨씬 눈에 많이 띄긴 하지만 하여튼 여가활용 면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 오후 다섯 시니까 불쌍한 우리 국방부 직원들은 퇴근을 해야 하나? 퇴근하고 누구랑 한잔 할까? 오늘은 무슨 공부를 해야 하나? 하는 생산적인(?) 일들에만 신경을 쓰고 있겠지. 그런데 이들은 일과 이후에는 뭔가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에 남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부럽다.

왠지 오늘은 정말 컨디션이 안 좋다. 몸살기운이 있는 것 같다. 지금 아프면 안 되는데 일단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서 Friends를 감상했다. 다섯 시에 달리기를 해야 하는데 오늘은 아무래도 글렀다. 비도 부슬부슬 내리고 이 몸 상태로 뛰었다가는 설상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일단 휴식을 취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이다. 침대에 누웠다. 그래도 별로 편치 않다. 이놈의 침대는 정말 구식이다. 아마 우리나라 사병 내무반에 들어가는 침대보다도 더 구식이고 불편할 것 같다. 전혀 편안한 기분을 주지 않는다. 이럴 땐 따뜻한 방바닥에 이불 덮고 눕는 것이 최곤데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지만 별로 식욕이 없다.

이러다간 된통 아플 가능성이 있다. 며칠간 쌓인 스트레스가 몸살로 나타나나 보다. 모든 걸 접어두고 잠을 자기로 했다. 아예 창문을 닫고 불을 껐다. 내일은 좋아져야 할 텐데

<Thursday, 22/01/2004>

다섯 시 경에 눈을 떴다. 의외로 몸이 가벼웠다. 다행이다. 주섬주섬 잠자리를 챙기고 홍차를 한잔 끓여서 마시니 기분이 좋아졌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여섯시에 기숙사를 나섰다. 약간의 빗방울과 바람. 개의치 않는다. 어차피 이곳 날씨는 이렇다고 포기하는 것이 편하다. 정해둔 코스를 돌고 들어와 샤워를 하니 개운하다.

참 오늘은 팻말을 "Tea, Please!"로 걸어보았다. 일곱 시가 되자 누군가 노크를 한다. 여자다. "Hello!" 인사를 하고 보니 시골 다방 마담 스타일의 아줌마다. "Coffee, or Tea?" 물론 커피, "Sugar, or Cream?" 물론 둘 다.

그런데 "둘 다"를 영어로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Sugar, Please!" 할 수 없이 설탕커피를 먹었다. 영어 짧으면 자기 먹고 싶은 걸 못 먹는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다.

참 오늘이 설날이지? 일찌감치 식사를 하고 집에 전화를 하였다. 지금 이 시간이면 한국은 오후 5시경이니까 집에 들 있으려니 해서 전화했으나 아무도 받질 않았다. 섭섭했다.

방으로 올라와서 강의준비를 했다. 역시 오늘도 9시 경에는 어김없이 나의 친구 청소부 아저씨가 쩔렁거리는 열쇠소리와 함께 나타났다. 쓰레기통을 비우고 세면대를 훔치고 나서 오늘 아저씨의 얘기 주제는 전기면도기 사용법이었다.

세면대 위에 있는 줄을 당기면 불이 켜지고 그 전등 옆에 전기면도기를 꽂아서 사용할 수 있는 콘센트가 있다는 것이다. "Thank you, But I don't use electric shaver, I use it" 내 면도기를 보여 주었다. 그래도 이 아저씨 다시 한번 끈기를 가지고 강의를 진행 하신다. 할 수 없다. "OK, I understand, thank you." 강의 끝.

강의료로 에쎄 담배 한 갑을 선물했다. 그런데 아저씨는 일주일에 한 개피 정도만 담배를 피신단다. 하여튼 내 성의니까 고맙게 받는 것 같았다.

학교를 가는 길에는 제법 빗방울이 굵어졌다. 걸어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도 대부분 비옷을 걸치고 있다. 그러나 나야 뭐 맨주먹이니까 그냥 비를 맞고 학교로 갔다.

아침에 머리에 뿌린 스프레이에서 영국 냄새가 났다. 우리랑은 향이 조금 다르지만 흔히 영국 사람들이 쓰는 향인 것 같다. 하여튼 스타일이 조금 구겨진 상태로 강의실에 들어갔다. 안경이 빗물에 젖어서 조금 불편했지만 티슈를 가지고 가지 않았기에 그냥 힘차게 뿌려서 썼다.

첫 시간은 쾌활한 영국청년 Callum의 시간이다. 멤버도 거의 그 멤버. 오늘은 신체 각 부분의 명칭과 병과 상처, 증세에 대한 설명, 치료에 대하여 배웠다. 상당히 쉬운 것이라 대충 지나갔다.

두 번째 시간은 재밌는 노친네 David와 함께하는 독해시간. 오늘 교재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중에서 일부분을 요약한 것이다. 멤버 중에서 오스트리아에서 온 두 여자 애들은 가슴에 I like number 7이라고 씌어진 티셔츠를 똑같이 입고 왔다. 얘들도 아마 독일어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는 가보다. 스페인 출신의 한 여자 애랑 셋이서는 더듬거리는 법이 없이 강사와 의사소통이 매우 원활하다.

글로리아도 참석했다. 내가 들어가면서 한국식으로 고개를 숙여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더니 상당히 당황해 하는 기색이다. 한국 사람끼리 옆에 앉지 말자고 한다. 좋은 생각이다.

나는 제일 젊고 이쁜 칠레 소녀 Romina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내 옆에는 짐바브웨의 Violet이 앉았다. 과자를 권한다. 대부분의 애들이 과자나 빵이나 초코렛을 들고 수업에 들어온다. 그리고 수업 중에도 뭔가 우물거리는 애들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라면 당장 쫓겨날 판인데 여기선 개의치 않는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Reading은 역시 내가 별루 딸리지 않는 분야라서 수업이 편안하다. 거기다가 두 아가씨를 옆에 앉히고 하는 수업이니 기분도 나쁘지 않다. Romina는 읽는 게 좀 약해서 내가 옆에서 도와주기도 했다. 신사도를 충분히 발휘하여.

수업을 마치고는 글로리아와 걸어서 왔다. 관사 입주 문제를 알아보았는데 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며 양식을 준다. 초은이 학교문제는 의외로 쉽지 않을 것 같다. Watchfield Primary School의 6학년은 꽉 차서 더 이상 받을 수가 없다고 한다.

아무래도 거리가 좀 멀더라도 Faringdon의 Secondary School로 보내야 할 것 같다. 어디든 본인이 하기 나름이니까 가능한 곳에 입학시켜야겠다. 그리고 오늘이 설날이니까 저녁에 식사하러 집으로 오라고 한다. 고맙다.

점심식사를 마치고는 공부를 좀 하다가 포항, 부천, 화성에 있는 누나들한테 전화를 했다. 한국시간으로 11시가 다 된 시각이라 다들 피곤했겠지만 무척들 반가워했다.

다섯 시에는 달리기를 하였다. 달리기를 하면서 살펴보니 - 모두들 잘 알고 있겠지만 - 이곳 영국에서는 차의 핸들이 우리와 반대로 차의 오른편에 달려 있고 차가 달리는 것도 우리와 반대로 왼편으로 달린다.

그럼 사람들은 오른쪽은 다닌다는 얘긴데 우리의 보도와 다른 점이 있다. 우리는 차도의 양편으로 보도가 있는데 여기는 대부분 차도의 한쪽 편에만 보도가 있다는 점이다. 런던과 같은 대도시는 몰라도 여기처럼 작은 도시에서는 보도가 한쪽만 있는 것이 공간 활용에 유용할 것 같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생각난 김에 얘기하자면 문을 여닫는 방향인데 여기는 문을 열 때 당겨서 여는 부분에는 손잡이가 있고 밀어서 여는 부분에는 손잡이가 없다. 손잡이 여부만 보면 당장 미는 문인지 당기는 문인지 알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우리의 경우는 양쪽으로 손잡이가 되어있고 열수도 있고 밀수도 있도록 되어 있어서 가끔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있는데 건물 설계할 때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

여섯시 경에 전화를 미리 하고 걸어서 배중령 댁에 갔다. 저녁식사는 떡국을 비롯하여 오랜만에 맛보는 김치, 깍두기 등 한국 음식이었다. 매우 맛있게 먹었다.

아이들에게 세뱃돈으로 5파운드씩을 주었더니 매우 좋아했다. 배중령 자녀는 큰딸이 지성, 중간 아들이 명성, 막내딸이 효성이라는 이름이다. 영어식으로 스텔라, 스타, 소냐라고 이름을 지어 부르고 있었다.

이 아이들 말고 다른 사람이 맡기고 간 예원이라는 아이는 사라라고 불렀는데 오늘은 고국에 있는 부모님이 보고 싶었는지 울고 불고 난리 치다가 식사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나타났는데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하긴 12살짜리가 부모 품을 떠나서 혼자 생활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으리라.

식사 후에 맥주를 한 잔씩 하면서 얘기를 나누다 2층으로 올라가 인터넷에서 주변의 중고차 나온 것을 한 번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매우 싼 편이었다. 3,000파운드 정도면 2,000cc급3년 정도 된 차량을 구입할 수 있었다. 내일 다시 한번 자세히 알아보아야 하겠다.

10시가 좀 넘은 시간에 기숙사를 향했는데 너무 오래 있어서 실례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배중령이 자기가 쓰던 핸드폰을 주면서 당분간 사용하라고 한다. 정말 고맙다. 이들이 여러 가지로 도와준 점을 꼭 기억했다가 다음에 한국에서 누군가 이곳으로 오면 이 사람들이 내게 해 주었듯이 꼭 되돌려 주어야지 하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도 또 열쇠를 방안에 두고 문을 잠궜다. Reception에 가서 보조열쇠를 가지고 와서 방문을 열었다. 오늘 Porter는 나만 보면 항상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건네고, 내가 말을 더듬어도 항상 격려를 해주는 노인네다. 열쇠를 반납하면서 자일리톨 껌 한 통을 가져다주면서 고마움을 표시했다.

오늘도 또 이렇게 하루가 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