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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독서생활

여정의 독서 : 대니얼 C. 데닛, <박테리아에서 바흐까지> #1

by 무딘펜 2022. 10. 23.

1.
어제까지 <좀머씨 이야가>를 읽으며 마치 여행하면서 본 것, 생각난 것을 맥락없이 적어가듯이 독서하면서도 그렇게 글을 써 보았다. 쉽지 않았지만 독서하면서 내가 하는 생각을 놓치지 않고 모두어서 끌고가는 재미는 있었다.

이번에는 소설도 아닌 과학서적류, 페이지도 680이 넘는 책을 한번 도전해 보겠다. 이 책이 3부로 나누어져 있으니 나도 3개로 쪼개어 글을 써본다.

2. (데닛은 누구?)
저자는 대니얼 데닛. '과학과 철학을 가로지르는 우리 시대 가장 독창적인 사상가이자 심리철학, 인지과학, 생물철학의 선구자'라고 소개되고 있다.

과학과 철학을 섭렵했으니 대단한 건 알겠는데, 그 다음에 나오는 이상한 학문은 도대체 뭘 연구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 류의 저자소개가 제일 싫다. 이런 소개를 통하여 독자들에게 주고 싶은 인상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 쓴 책이니 군말없이 많이들 사서 읽어라'일까? 기분 나쁘다.

그나마 데닛의 사진이 맘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처럼 생겨서 읽어 주기로 한다.


저자에 대한 내 마음에 드는 소개는 오히려 역자 서문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런 인물이라면 한번 그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볼 만 하지 않은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배움을 청하고... 직접 농사를 짓는 농부이기도 하고, 훌륭한 드러머이자 합창단원이고 항해전문가이기도 하며 서양문화의 산물을 두루, 깊게 섭렵한 흔치 않은 인물 p.31"

3. (번역자의 고민)
번역서를 읽는 어려움은 짜증과 내 짧은 외국어 실력에 대한 서글픔의 범벅이다. 그나마 이 책의 번역자 신광복(전문적인 번역가는 아니지만 데닛의 관점과 글쓰기에 매료되어 그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사람)는 그런 독자의 마음을 일부는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좀 긴 문장이지만 독자에 대한 그의 배려를 옮겨본다. 번역과정에서의 고민과 노고가 느껴지고 이 책은 읽어볼 만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데닛의 학술적 주장과 가독성을 살리자면 그의 재귀와 문장의 리듬감 등을 포기해야 하고, 그의 문장이 주는 재미를 살리려면 가독성을 포기해야만 한다. 옮긴이는 여기서 전자를 택했다.

데닛 '문장'의 재미를 느끼는 것은 영어 원서를 읽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번역서에서는 정확한 의미와 가독성을 잡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또 문제가 생겼다. 긴 문장들을 나누어야 할 때, 원래 문장의 단어들을 최대한 존중하여 그대로 나누기만 해서 번역하면 의미가 흐려지고, 의미를 또렷하게 전달하려면 원서에는 없는 텍스트를 보충해 넣을 수밖에 없다. 저자를 최대한 존중하려면 전자를 택해야 마땅하겠으나, 역시 의미의 공백이 없게 옮기자는 결심에 따라 저자에 대한 실례를 무릅쓰고 텍스트에 약간 개입하는 쪽을 택했다.

데닛 특유의 서술이 주는 위트와 폭포수 같은 지식 세례를 조금이라도 살리고자 옮긴이 주를 넣은 곳이 많은데, 어떤 독자에게는 이것이 군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p32-33


4. (한 페이지 요약)
이 책의 좋은 점 한 가지는 번역자인 신광복씨가 20페이지에 달하는 서문을 통하여 이 책에 대한 친절한 안내를 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 책을 단 한 페이지로 요약해 놓았다. 이것만 이해하면 더 이상 이 두꺼운 책을 읽을 필요 없을 것이다.

전 생명 세계에서 있었던 사이클들의 무수한 반복으로 최초의 자기복제가 생겼으며, 있을 법하지 않은 아주 낮은 확률로 일어난 일들의 증폭으로 인해 생명체가 생겼고,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무목적적이고 무마음적인 과정에 의해 다양한 생물들이 생겼고 인간도 생겨났다.

물론 인간만이 의식을 지닌 것은 아니다. 인지 능력은 점진적으로 진화해왔고 우리는 그것을 크게 네 단계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마지막 단계의 능력을 지닌 생물, 즉 능력에다 이해력까지 갖춘 것은 물론이고 부유하던 합리적 근거를 포착하여 표상할 수 있는 생물은 지구에서는 아직 인간밖에 없다. 인간이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밈이 잘 침투할 수 있는 뇌를, 그리하여 결국 밈에 절여진 뇌를 가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랬기 때문에 인간은 밈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 언어를 지닐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문화 역시 진화해왔고 문화적 대물림과 유전적 대물림은 공진화했다. 문화적 진화의 가속에 언어가 큰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언어를 비롯한 다양한 생각 도구들 덕분에 인간은 마음에 관해 묻고 대답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문화적 진화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주로 하의상달식 설계가 개발되고 전달되었으나, 우리 인간이 진화의 현장에 나타나 문화적 진화가 생겨나면서 상의하달식 설계가 가능해지게 되었다. 진화 자체도 다원주의적이기만 했던 것에서 점점 감 다원화된 것이다.

그리고 무목적적이고 무마음적이며 하의상달식인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로 탄생한 우리 인간이 컴퓨터 같은 뛰어난 기계들을 만들었고, 그 기계들이 또 놀라운 소산물들을 만들었으므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가 컴퓨터를, 그리고 컴퓨터가 만든 놀라운 산물들을 간접적으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산물들이 눈부시게 발전하는 미래에도, 미래에 우리가 밟아온 과거의 궤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인공지능도 우리에게 계속 의존할 것이다. p.17

이해가 되는가? 나는 10%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밖에 없다.


5. ( 이 책의 저자와, 독자로서 내가 갖추어야 가장 기본적인 태도 - 마음에 대한 철학적 함정과 신비주의에 대한 경계)

마음을 신비의 영역으로 남겨두려는 '심신이원론'의 대표적 주창자는 데카르트이며, 저자는 우리가 극복해야할 것을 "데카르트 중력"이라고 말한다. 그의 서양학문에 끼친 영향이 워낙 지대하기 때문에 마음에 대한 그의 전제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마치 중력처럼 우리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 내가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만 골라서 뽑아 본다.

1) 마음이 사물보다 먼저 있었다
2) 이해하지 않고는무언가를 할 수 없다
3) 생명체의 최종 목적은 신의 영역이므로 거론하면 안된다
4) 내 의식에는 나만 특권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5) 외부에서 인과가 생성된 후 비로소 마음이 그것을 인지한다.

같은 이야기이지만 "데카르트 상처"라는 용어도 의미심장하다.

테런스 디콘Terrence Deacon은 심신이원론이 마음이라는 것을 물질, 즉 몸으로부터 억지로 뜯어내는 견해라고 보고, 그 두 가지가 분열된 것을 가리켜 '데카르트 상처 Cartesian Wound'라 불렀다.

데카르트 상처가 회복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 즉 마음이 물질로는 설명될 수 없으며 설명되어서도 안 되는 신비한 어떤 것이길 바라는 사람이 아직도 많긴 하지만, 그래도 20세기부터는 이 상처를 기워보려는 시도들이 많이 이루어져왔다. 그리고 데닛은 이 책에서 그 상처를 제대로 봉합하는 완전한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 책의 여정은 데카르트 상처를 기우는 바느질이 한 땀 한 땀 진행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p.23

6. (데카르트 중력에 대한 뒤집기)
이에 대한 통찰은 세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찰스 다윈 - 마음이 마음 없는 것들을 창조한 것이 아니다. 마음은 진화의 가장 나중 단계에서 생긴 것이다.

앨런 튜링 - 완벽한 계산기계(예, 컴퓨터)가 되기 위해서 산수를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데이비드 흄 - 외부에서 발생한 인과가 먼저가 아니고 우리 마음 속에서의 '기대'가 먼저다.

6. (뜻을 접다. 일단!)
여기까지가 본격적인 독서에 들어가기 전의 준비운동이다.

이 부분에서 생각한다. 이 책을 읽는 여정을 내가 끝까지 기록힐 수 있을까? 문학작품이라면 내 느낌과 생각을 기록하면 그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만 과학서적류는 다르다. 더구나 이런 분야에 대한 지식이 얕은 내가 단 한번의 독서로 이 어려운 책을 어느 정도 체계적으로 요약하고, 일부나마 내용을 전달할 수 있으리라는 의욕은 과욕임을 깨닫는다. 나에게는 심한 노동일테고, 혹시라도 기대를 가지고 내 글을 읽어줄 다른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 기록은 접되, 여행은 계속한다. 한 두번 더 이 코스를 다녀 본 후에 다시 펜을 잡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