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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다가 말다가

♣ 나를 '우리'라는 우리 속에 가두지 말라.

by 무딘펜 bluntpen 2018. 6. 17.
1.
"우리는 실재를 모두 담을 수도 없고 또 실재를 사용하여 소통할 수도 없지요. 그래서 인간에게는 언어가 있고, 개념이 있고, 관념이 있고, 지식의 축적이 있고, 이념의 세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명사의 세계를 구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동사는 존재하는 것이고, 명사는 존재를 아주 제한적으로 담아놓는 것이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정신차리지 않으면 세계를 제한적으로 고정시켜 놓은 명사적 세계에 함몰되어, 그것을 세계 자체로 착각하면서 고집을 부리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 최진석 지음

2.
최진석 교수의 《인간이 그리는 무늬》라는 책에 나오는 말입니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는 인문학이란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인문학이 오늘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인문학을 통해서 내가 어떻게 독립적 주체가 될 수 있는지, 즉 어떻게 내 사람의 주인이 되는가에 관한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념이나 집단적 사고에 매몰되지 말고 "나의" "욕망"에 충실하라는 그의 메시지는 많은 생각꺼리를 던져줍니다.

3.
이 책을 읽으면서 마치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듯한 느낌을 받은 구절이 있었습니다.  "나는 왜 책을 읽는가"라는 나의 고민을 옆에서 지켜보다가 슬며시 옆구리를 찔러주는 저자의 조언처럼 들렸습니다.

머리를 굴리고 혀를 놀려서 뱉어내는 말들로는 근육애 맺히는 땀으로 배우는 것들을 절대로 당해낼 수 없어요. 책 속에는 길이 없어요. 책 속에는 책을 쓴 그 사람이 생각한 길이 있을 뿐이지, 그것은 나의 길이 아니예요. 다만 앞선 이들이 고뇌한 흔적을 엿보고 힌트를 얻으면 족할 뿐, 책 속에서 여러분 자신의 진리를 구하지는 마세요. 다른 이의 이야기를 내 것인 양 받아들이지 마세요.
- <자기를 만나는 법> 중에서 p.266

재미있는 것은 저자가 자신의 이 책조차도 한번 읽고 내다 버리라고 한 말이다. 부처를 만나면 그 부처까지도 죽여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옛 선사의 말이 생각난다.

4.
최진석 교수가 지은 《도덕경》을 비롯하여 몇 가지 책을 읽고 나서 그는 내가 매우 좋아하는 저자입니다. 하지만 그의 책 중에서 다른 분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을 하나 꼽는다면 아마 이 책을 들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도덕경은 두고두고 읽어볼 만한 명저입니다만 누구나 쉽게 접근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인문학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 분이라면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