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 생각 짧은 글/3. 나의 살던 고향은44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 1. 인터넷을 처음 고안한 사람들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 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2차 대전 당시 미국의 혁신적 군사기술을 이끌어낸 버니바 부시라는 물리학자에 대한 이야기 중에 그가 활쏘기, 담배 파이프 깎기, 사진 찍기, 잡다한 기계 만들기 등 취미가 다양했었고, 그것이 그이 창의성의 뿌리가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2. '별걸 다' 관심을 가지는 버시바 부시를 머리 속에 생각하다가 문득 라는 노래가 생각나서 찾아보니 1990년대 초에 노영심이 부른 노래였다. 3. 들어보니 가사가 너무 재미있어서 올려본다. 이 노래 말고도 변진섭의 이라는 재밌는 가사의 노래도 노영심 작품이다. 유투브에서 노래를 찾아 들어보면서 나처럼 옛날 추억에 잠겨 보시길... -----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 노영심 나를 .. 2020. 12. 25. [추억] 동네 이발소... 그 따스한 공간에 대한 기억 산골동네에서 유일했던 도회적 공간, 이발소. 그곳에 걸린 '이발소 그림'과 빨갛게 피어나던 석탄난로, 그리고 벽면을 가득 채운 커다란 유리거울, 양동이에서 가물거리는 수증기가 연출하던 그 따스한 공간이 그립다. 오랫만에 이발을 하였다. 몇 주 전부터 머리카락이 길어져 신경이 쓰였는데 주말에는 특히나 문 밖으로 단 한 발자욱도 나가기 싫어하는 내 게으른 성격에 차일피일 미루다 오늘에야 드디어 해치웠다. 내가 자주, 아니 사실은 유일하게 가는 이발소는 우리 집에서 한참을 걸어야 한다. 안양천을 건너고 경부선 철도가 위를 가로 지르는 자그마한 굴다리를 지나면 다소 허름한 느낌을 주는 '우리동네 이발소'라는 자그맣고 고풍스런 이발소가 있다. 겉보기에 쉰은 족히 넘었을 듯한 푸근한 인상의 내외분 단 둘이서 꾸려가.. 2016. 12. 8. [추억] 추억의 옛날 교과서를 볼 수 있는 사이트 I. 1973년 국민학교 국어 교과서 (1학년 2학기) 제가 1972년도에 국민학교를 입학하였습니다. 다른 과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재미있는 이야기 위주로 되었던 국어 교과서는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1973년에 발행된 1학년 2학기 국어 교과서를 표지와 목차입니다. 기억나시나요? 2학기는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가을이 시작되는 계절이어서 추석 이야기부터 나오네요. 10가지 단원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마지막 단원의 "개와 고양이" 이야기였습니다.은혜를 갚은 개와 고양이 이야기인데, 푸른 구슬 이야기이나 쥐의 왕을 족치는 부분도 매우 재미 있었고, 특히 다른 짧은 이야기에 비하여 나름 이야기의 구성이 훌륭했었죠. II. "토끼와 거북" 이야기 하지만 오늘 소개는 가장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토.. 2016. 12. 5. [추억] 사라져 가는 우리의 짚문화를 바라보며(펌) 추수가 끝나고 나면 논바닥마다 높게 쌓아놓았던 짚가리는 겨울 한철 가축들의 먹이나 다음 해 농사준비를 위한 재료로 쓰이곤 했다. 이제는 거의 쓰지 않는 생활용품들을 만드는 가장 훌륭한 재료였던 짚, 오마이 뉴스에서 잘 설명한 자료가 있어서 퍼왔다. [사진] 사라져 가는 우리 짚 문화를 돌아보며06.04.09 19:48l최종 업데이트 06.04.10 10:01l김현(dasolsori)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아버지와 동네 어른들은 새끼를 꼬아 멍석을 만들고, 가마니를 짜고, 삼태기나 짚신, 다래끼 같은 것을 만들어 사용했다. 특히 울타리를 엮어나 이엉을 엮을 땐 새끼가 많이 필요해 어린 우리들도 새끼를 꼬았던 기억이 난다. 어른들 솜씨는 못 따라가지만 그땐 제법 새끼를 잘 꼬았다는 소리도 들었.. 2016. 12. 4. [추억] 물난리, 장마에 대한 기억들 어린 시절 나의 고향집은 비만오면 난리가 났다. 집 뒤에 30미터 쯤 되는 벼랑이 수직으로 서 있고 그 아래로 샘물이 흘렀는데, 여름에는 발을 담그고 10초를 견디지 못할 만큼 차가웠고, 겨울철에는 가마솥에 김이 서리듯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따뜻한 곳이라서 온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출처 : http://blog.daum.net/rha188/15403254] 그런데 그 샘물줄기가 집터를 통과하다보니 비가 조금만 와도 마당 여기 저기에서 종기처럼 흙이 부풀어 오르고 잠시 후에 톡 터지면서 물줄기가 솟아올랐으며 삽시간에 마당은 개울로 변해버리곤 했다. 특히 구들장 밑의 고래 사이로 솟아오른 물은 아궁이를 통해 토하듯이 넘쳐나곤 했기에 그런 때에는 우리 집은 임시로 양은 솥을 물이 나지 않는 곳을 골라.. 2012. 8. 16. [어린시절] 장마와 홍수의 기억 어린 시절 나의 고향집은 소백산 기슭에 있었는데, 집에서 2Km정도 떨어진 곳에 남한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 강은 마을 이름을 따서 용진강이라고 불렸는데, 바로 영월의 동강과 서강이 합쳐져서 약 100리 정도를 흘러내려온 지점에서 나루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었다. 한때는 한강 하류에서 소금을 실은 배들이 이곳에서 소금가마니를 풀고 또 한편으로는 소백산의 아름드리 나무들을 벌목하여 뗏목으로 엮은 다음 한강의 물결따라 서울로 흘러보내던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루 진(津)자를 써서 용진... 마을 앞으로는 소백산 깊은 골에서 흘러 내려온 맑은 개천이 흘러 용진강으로 합류하고 있었는데, 평상시는 징검다리로 건너는 얉은 개울이지만 여름 이맘 때 쯤에 조금만 비가 많이 내린다 싶으면 소백산에 내린 빗방물이 모여 .. 2011. 7. 28. 정말 춥네... 겨울답게 올 겨울에는 눈도 푸지게 내렸고 날씨도 오지게 춥다. 그런데 어린시절에 느낀 추위를 생각하면 지금의 추위는 어쩌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1000미터 넘는 산들로 둘러쌓여 있는데다 남한강 상류였던 고향마을은 겨울이면 유난히 추웠다. 집을 나서서 학교에 갈라치면 개울가를 따라서 거무싯개라는 계곡 근처를 지나가야했는데, 산바람과 강바람이 마주치는 그곳은 자그마했던 내 몸뚱이를 거의 날려버릴 것만 같았다. 이미 내린 눈조차도 바람에 다시 날리어 얼굴을 사정없이 치발라버리면 별로 두텁지 않은 옷가지 때문이기도 하겠고 또 덜 자란 몸뚱이가 추위를 심하게 탄 탓일수도 있겠지만 그 추위에 눈물이 다 글썽글썽해지곤 했다. 조금 더 자라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거의 자취생활을 했는데, 가끔 연탄불을 꺼뜨리.. 2010. 1. 11. 090728 호박에 얽힌 이야기들 호박꽃도 꽃이냐?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되냐? 다른 야채(?)에 비해서 호박에 대해서는 이처럼 비하하는 말들이 유난히 많다. 아마도 그 크고 노랗지만 화려해보이지 않는 꽃이랑 펑퍼짐한 늙은 호박의 생김새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알고보면 호박만큼 쓰임새가 많은 것도 없다. 호박이 빠진 된장국을 먹어본 사람은 호박과 된장의 그 절묘한 조화에 대하여 새삼 느낄 것이다. 별로 맛이 특징적이지도 않고 향이 강한 것도 아닌 호박이지만 된장국에 들어가면 이상하리마치 호흡을 척척 맞춰서 우리의 미각을 살살 녹이는 마법을 발휘한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에는 호박말랭이가 있다. 여름철 애호박을 얇게 썰어서 햇볕에 며칠간 말린다. 우리 집 같은 경우는 주로 집앞에 있는 개울가의 깨끗한 돌위에 널어서 말렸는데 여름철 .. 2009. 7. 28. 090708 시계에게 밥을 먹여? 우리 어린 시절에는 시간의 개념이 명확하게... 칼로 두부 베듯이 딱딱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하루를 낮과 밤, 그리고 아침때 점심때 저녁때 정도로 대강 구분하는 정도였달까? 내 기억에 "시간"이라는 수치적 개념이 들어선 것은 라디오의 시보와 괘종시계의 도입에따른 것으로 기억된다. 라디오는 대부분 매 시간마다 정확히 시보를 울려주었고, 괘종시계는 시간수에 맞게 종을 울려 주곤 했다. (30분에는 종을 한번 울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국민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배우는 시계 읽은 법을 굳이 모르더라도 괘종시계의 종소리를 듣고서 시간을 대~충 알아채곤 했다. 하여튼 서양에서는 "Grandfather's clock", 즉 할아버지 시계라고 불리는 괘종시계의 등장은 새마을 운동과 비슷한 시기로 기억.. 2009. 7. 7. [어린시절] 크리스마스 새벽의 찬송가 소리 지금이야 별다른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나이지만 어린 시절에는 친구들과 어울려서 교회도 자주 갔다. 여름성경학교나 겨울철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열심히 활동하다가 뜸해지곤 했지만... 어린시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더라도 우리 동네에서는 선물을 주고 받는다는 개념은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먹고사는 일에 직접 관련이 없는 '여분의' 물건을 준다는 개념은 없었다. 안줘도 되는 것인데 특별히 은혜를 베풀어서 주는 물건을 선물이라고 한다면, 선물이라고 굳이 얘기할 수 있는 것은 가끔씩 들리는 친척들이 사가지고 오는 종합선물세트 정도가 있었을까. 하여튼 크리스마스 카드는 주고 받아 봤지만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다는 개념은 어린시절 나의 머리속에는 없었고 그것이 요즈음 내가 같은 무신론자인 내 딸들을 대하.. 2008. 12. 26. 081222 놀꺼리(4) 가이생; 또다른 전쟁 가이생은 회전(會戰,かいせん), 즉 대규모 병력들이 격돌하는 것을 일컫는 일본말 '가이센'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내가 어린 시절에 많이 했던 놀이는 국민가이생인 오징어가이생과 그것을 변형한 정말 과격한 놀이인 말X가이생이었다. 1. 먼저 오징어 가이생 이건 가이생 중에서 우리나라 전국에서 행해지던 가장 인기있는 종목이라서 별도로 설명이 필요하진 않을 것입니다. 오징어 가이생의 놀이방법은 아마도 영화를 보신 분들이 잘 아실 듯 합니다. 2. 말X가이생 인터넷을 뒤져보아도 이 가이생에 대한 설명은 없더군요. 그렇다면 우리 지방에서만 했었다는 얘기인지 아니면 명칭이 거시기해서 설명들을 안 올린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이런 명칭이 왜 붙게 되었나를 설명하기 위해 제가 그린 그림을 보여드리면 쉽게 .. 2008. 12. 22. 081222 놀꺼리(3) - 감히 비석을 패대기를 치다니! 장난감이 없던 어린시절에 손바닥만한 돌을 가지고 재미있게 놀 수 있었던 놀꺼리 중의 하나는 비석치기였다. 우리 동네에서는 비럭치기라고도 했다.[비석치기 중 오른발등치기를 하는 모습]1. 놀이도구 필요한 건 딱 하나입니다. 손바닥만한 돌 하나. 안정적으로 세우기 쉬운 직사각형의 모양이 가장 좋고 잘 깨지지 않는 단단한 돌이 유리합니다. 부딪칠 때 경쾌한 소리가 난다면 금상첨화!2. 놀이준비 먼저, 4~5미터 간격으로 공격선과 수비선의 두 줄을 나란히 긋습니다. 다음은 편을 갈라야죠. 보통 가위바위보를 합니다. 한 팀에 보통 4~5명 이내가 적당합니다. 진 팀은 수비선 위에다 자기 돌을 세웁니다. 이때 가능하면 쉽게 넘어지지 않도록 땅을 파서 세운다거나 가로로 길고 낮은 돌을 세우기도 합니다. 3. 놀이방법.. 2008. 12. 22. 081121 순해네 집앞의 연못 직장동료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우연히 건물 몇 층에서 떨어지면 사망할까 하는 황당한 소재가 나왔다. 4층이니 5층이니 별 쓰잘데 없는 얘기를 나누는 중에 갑자기 어린시절에 순해네 연못의 빨래터 옆 버드나무 위에서 떨어져서 죽을 뻔 했던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순해는 내 어릴적 죽마고우다. 지금은 10가구도 안되는 피폐해진 깡촌마을이지만 그 당시에는 20가구 쯤 살았는데 같은 나이의 남자친구들이 서넛 있었고 그 중에서 순해와 나는 유독 같이 놀기를 좋아했다. 하긴 내가 순해와 많이 어울리게 된 것은 다른 이유도 있었다. 순해네 집에 동네에서 제일 잘 사는 집이라서 가끔 가면 먹거리를 챙겨줄 때가 있다는 점과 집에 책들이 제법 있다는 점이었다. 어릴 적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던 나는 동네에 있는 책은 거의 대부.. 2008. 11. 21. 081006 댑싸리비와 몽당빗자루 며칠 전 청계산을 다녀오다가 우연히 어느 집 담장 옆에 가지런히 가꾸어져 있는 댑싸리를 보았다. 여름이 가고 초가을이건만 아직도 뽐내는 그 싱싱함이라니! 그 초록빛깔과 바람에 살랑이는 모습을 보니 눈과 마음까지도 시원해졌다. 나 어릴 적 시골집들을 보면 집집마다 뒤뜰이나 길 옆의 빈터에 댑싸리를 줄지어 심어 놓곤 했다. 이 댑싸리란 놈은 밑둥치에서부터 잘게 잘게 수많은 가지를 쳐 나가는데 그물코가 무색할만큼 촘촘하다. 더구나 자라는 속도가 놀랍도록 빨라서 아침에 보고나서 학교갔다 오면 어느새 커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가지가 워낙 촘촘한지라 그 아래는 정말 시원한 그늘이 지는데 그래서 생긴 속담이 '댑싸리 밑의 개팔자'라는 말로 시원한 여름철에 잎이 무성한 댑싸리 나무 아래서 꾸벅꾸벅 오수를 즐기.. 2008. 10. 6. 080922 한편의 대하드라마를 연출했던 전쟁놀이 예나 지금이나 남자들은 승부에 민감하다. 나 역시도 어릴 적부터 승부가 걸린 일이라면 이겨서 손해를 보는 일이라 할지라도 남에게 지기 싫어서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들어 끝장을 보고 나서야 직성이 풀리는 점은 어른이 된 지금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나 어릴 적에는 함께 어울려서 정답게 노는 일은 가시나들이나 하는 일이고 남자애들은 무조건 몸으로 뛰고 부딪쳐서 상대를 제압해야 승부가 끝나는 놀이에 열중했다. 더구나 온 들판이 놀이터인 시절이었으니 지금 애들이 골목이나 놀이터에서 깨작대는 것과는 스케일이 다른 한판의 승부였던 셈인데, 가장 우리들이 좋아하고 흠뻑 빠졌던 것이 - 어찌보면 끔찍한 어감을 가졌지만 - 전쟁놀이였다. 전쟁놀이도 시대에 따라 많이 그 방법이 달랐는데, 주로 TV 연속극의 .. 2008. 9. 22. 080922 가부시끼라는 말을 아십니까? 나 어릴 적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고 어른들이 자주 쓰는 일본어를 따라서 쓰곤 했다. 그 중의 대표적인 말이 '가부시끼'인데, 점잖은 우리말(한자어)로 하면 '추렴' 정도가 될려나? 바쁜 농사철을 지나고 나서 찬바람이 솔솔부는 계절이 되어 얼추 가을걷이까지 끝내고 나면 이른 바 농한기가 된다. 그러면 동네 어른들은 개울바닥을 뒤져 물고기를 잡아 한 솥 가득 민물 매운탕을 끓이거나, 뒷집의 통통하게 살진 암탉 몇 마리를 잡아서 함께 거나하게 술 한잔을 걸치시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럴 때 그 비용은 참여하는 사람들이 일정액씩 걷어서 충당하곤 했는데, 이런 경우를 '가부시끼'라고 했다. 근래 들어 젊은 축이 많이 쓰는 말로는 '1/n'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고, 유식한 외국어를 끌어대자면 'Du.. 2008. 9. 22. 070705 모교인 동대초등학교 건물 관리에 관한 기사 모교관리에 관한 기사 출처 : 초등카페 http://cafe.daum.net/mydongdae21/xhx/353 작년도 2월 달에 동대초등학교 교사 입찰에 관련된 기사인데... 임대료가 2000만원 정도 된다고 하네... 나중에 우리도 돈 모아서 사버릴까? 지금은 사실 정말 관리가 안되고 있어서 폐가처럼 보이던데... 주변, 특히 운동장 쪽만 잘 정리해도 깔끔해 보일텐데... 너무 아쉽다. 하여튼 참고해라.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93&article_id=0000002819§ion_id=101&menu_id=101 2008. 9. 12. 아련한 기억들 - 4. 물고기 잡기 우리 동네에는 소백산 기슭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용진강을 향하여 흘러 가는 동대천이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길가다 목마르면 무릅꿇고 엎드려 개울물을 꿀꺽꿀꺽 마시기도 했는데 그 정도로 물이 맑고 깨끗했기에 민물고기도 많이 살고 있었다. 날이 풀리기 시작하는 초봄이나 바쁜 농사철 틈틈이 개울을 뒤져서 물고기를 잡아서 영양보충을 하는 것이 시골생활의 또 다른 즐거움 중의 하나였었다. 절대로 혼자서 고기를 잡는 경우는 없다. 동네에서 누군가 물고기를 잡으러 간다는 얘기가 퍼지면 집집마다 장화를 신고 양동이나 세수대야 같은 고기를 담을 그릇을 들고는 모여든다. 물고기를 잡는 것도 마을의 협동작전인 셈이다. 물고기를 잡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가장 초보적인 방법으로 손으로 잡는 것이다. 물론 깊은 물.. 2008. 9. 4. 아련한 기억들 - 3. 그 때는 라디오 시대 요즘은 세상돌아가는 소식을 주로 신문이나 TV를 통하여 알게 되지만 70년대까지만해도 주로 라디오를 통하여 바깥소식을 접할 수 밖에 없었으므로 집집마다 대개 한 대씩 가지고 있는 라디오는 소중한 재산목록이었다. 특히 내가 살던 시골에는 신문이라고는 가끔 서울에서 오는 물건의 포장지로나 볼 수 있거나, 아니면 도배를 위하여 특별히 구하지 않으면 찾아보기 어려웠고, TV도 7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겨우 보급이 되었기 때문에 라디오의 소중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70년대 초반에 전기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건전지(이 녀석을 우리는 후래쉬약이라고 불렀다.)를 이용하여 전원을 공급하였기 때문에 자주 라디오를 켤 수도 없었으며, 듣지도 않으면서 라디오를 켜두면 어머님의 잔소리를 감수해야만 했다. 우리집에도 처음에.. 2008. 9. 4. 아련한 기억들 - 2. 놀이하면서 부르던 노래들 어린 시절 마을 공터에서 아니면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끼리 편을 갈라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부르며 놀았지.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꽃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무슨 꽃을 찾으러 왔느냐 왔느냐 왔느냐~ 미향이꽃을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가위바위보" 하고는 술래는 이름이 불린 사람을 쫓아다니고 나머지 사람들은 방해하고... 또 쌔쌔쌔라고 손벽을 맞부딪치면서 부르는 노래 중에 "아침바람 찬 바람에 울고가는 저 기러기 우리선생 계실적에 엽서 한장 써 주세요 구리구리 멍텅구리 짱깨이 뽀" 하고는 가위바위보를 하는 노래도 있었고. 어릴 때 이를 뺄 때는 문고리에 실로 연결을 하고 문을 확 열어서 빼기도 했는데 그 이는 초가지붕에 던지고는 "헌이 줄께 새이 다오."라는 무척 이기적인 노래.. 2008. 9. 4.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