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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생각 짧은 글/3. 나의 살던 고향은

[어린시절] 크리스마스 새벽의 찬송가 소리

by 무딘펜 bluntpen 2008. 12. 26.

지금이야 별다른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나이지만 어린 시절에는 친구들과 어울려서 교회도 자주 갔다. 여름성경학교나 겨울철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열심히 활동하다가 뜸해지곤 했지만...

어린시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더라도 우리 동네에서는 선물을 주고 받는다는 개념은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먹고사는 일에 직접 관련이 없는 '여분의' 물건을 준다는 개념은 없었다. 안줘도 되는 것인데 특별히 은혜를 베풀어서 주는 물건을 선물이라고 한다면, 선물이라고 굳이 얘기할 수 있는 것은 가끔씩 들리는 친척들이 사가지고 오는 종합선물세트 정도가 있었을까.

하여튼 크리스마스 카드는 주고 받아 봤지만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다는 개념은 어린시절 나의 머리속에는 없었고 그것이 요즈음 내가 같은 무신론자인 내 딸들을 대하는 동일한 방식이다.(내가 너무 무심한 아빠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나의 이런 점에 대해서 이미 나의 딸들은 초연하다.)

선물이 없는 어린시절의 나의 크리스마스. 그러나 크리스마스가 되면 꼭 기다려지는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새벽찬송이었다.

마을에서 십여리나 떨어진 용진교회에서 교회다니시는 어른들이 10여명씩 몇 패로 갈라서 새벽에 집집마다 찾아다니면 캐롤송을 불러주는 것이었다.

대략 새벽 4시경에 어렴풋하게 들려오는 찬송가 소리. 불러주는 노래는 지금처럼 밝은 분위기의 캐롤보다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나 '저 들녁에 한 밤중에...' 또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로 시작하는 찬송가의 세 곡 중에 하나일 가능성이 많았다.

그분들은 교인의 집이건 불교도의 집이건 가리지 않고 동네의 모든 집을 돌았다. 그리고 노래를 끝내고 하는 인삿말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것이었다. '예수를 믿으세요' 뭐 이런 말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찬송을 부르고 나면 그 집에서는 성의껏 얼마씩 헌금을 하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도 잠귀가 그리 밝지만 않았지만 크리스마스 새벽의 찬송이 울릴 때면 이상하게도 잠이 깨어있곤 했는데 그 노래소리속에서 종교와 상관없이 한없는 평화를 느끼곤 했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은 도시의 아파트속에서 그런 크리스마스 새벽송 소리를 들은 지도 오래 되었지만 이맘때가 되면 항상 그 어린시절에 하늘에서 들려 오는 듯 새벽의 어둠을 뚫고 세상을 울리던 찬송가의 음율이 입가를 맴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