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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생각 짧은 글/3. 나의 살던 고향은

[추억] 물난리, 장마에 대한 기억들

by 무딘펜 bluntpen 2012. 8. 16.

 어린 시절 나의 고향집은 비만오면 난리가 났다. 집 뒤에 30미터 쯤 되는 벼랑이 수직으로 서 있고 그 아래로 샘물이 흘렀는데, 여름에는 발을 담그고 10초를 견디지 못할 만큼 차가웠고, 겨울철에는 가마솥에 김이 서리듯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따뜻한 곳이라서 온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출처 : http://blog.daum.net/rha188/15403254]



  그런데 그 샘물줄기가 집터를 통과하다보니 비가 조금만 와도 마당 여기 저기에서 종기처럼 흙이 부풀어 오르고 잠시 후에 톡 터지면서 물줄기가 솟아올랐으며 삽시간에 마당은 개울로 변해버리곤 했다.

  특히 구들장 밑의 고래 사이로 솟아오른 물은 아궁이를 통해 토하듯이 넘쳐나곤 했기에 그런 때에는 우리 집은 임시로 양은 솥을 물이 나지 않는 곳을 골라 설치한 후에 끼니를 해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장마로 인한 집안의 고통은 어린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네 개구쟁이들을 끌어모아 바지를 동동 걷어올리고 종이배를 접거나 아니면 고무신을 마당에 띄우고는 물놀이에 열을 올리곤 했으니...

  1930년대 후반에 부모님께서 결혼하시면서 지었던 고향집은 10년 전 쯤에 허물어지고 우리 가족은 모두 고향을 떠나왔지만 아직도 폭우가 세차게 몰아치는 날이면 매운 연기를 참아가며 양은솥에 밥을 짓던 어머님의 땀에 젖은 얼굴과 마당에 동동 떠다니던 하얀 종이배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