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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다가 말다가

♣ "사랑하지만 각자의 세계가 필요해" -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 오마르

by 무딘펜 bluntpen 2018. 7. 27.
아침에 출근하면 하루 일정을 확인한 후 바깥으로 나간다. 커피를 곁들여 담배를 피우고 나면 '냥이 집사' 노릇을 한다.

작년 가을 담배를 피다가 옆에 있는 버려진 건물 안에서 새끼를 낳은 고양이를 우연히 발견하였다.

출산 후 무거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고양이를 나몰라라 하기 어려워 거두기 시작한 이후로 아침마다 고양이 가족의 먹거리를 챙겨주는 것이 나의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 지난 봄에 임신한 어미 고양이가 출산을 하다가 그만 죽어버렸다. 사료만 챙겨주되 정은 주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마음은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슬펐다.

혼자 남은 새끼 고양이는 잘 자라고 있다. 인연을 맺은 지 어언 1년이 다 되어 가면서 어느새 예전의 어미 덩치만큼이나 커졌다.

그런데 이 녀석은 근 1년 동안이나 집사노릇을 한 나를 아직도 데면데면하게 대한다. 어미는 냉정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를 알아보는 눈빛은 보여 주었는데 이 녀석은 아직도 나를 보면 도망가기 바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녁식사 시간만은 꼭 챙긴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섭섭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나도 무덤덤하다. 나는 내 하고픈 일을 할 뿐이고, 녀석도 그냥 정해진 시간에 들어와서 밥을 먹는 것이다.

어제 용산역에 있는 영풍문고에 들렀다가 흥미있는 책을 만났다. 책 제목은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 오마르라는 블로거가 쓴 책인데, "매우 솔직한" 글발이 마음에 와 닿는다.

그 중에서 고양이 얘기를 다룬 다음 글은 내 맘에 쏙 든다. 제목은 <강아지와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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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 시절 강아지를 좋아했고양이에게는 큰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점점 나이를 먹을수록 고양이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몇 번의 만남과 이별, 그것을 통해 마음을 주고받는 데에도 완급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제올지도 모르는 이를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 그런 게 사랑본질이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 영원할 것 같던 충성과 순종은 어느 순간 부담과 피로감으로 다가왔다

"너를 사랑하지만 우리에게는 각자의 세계가 필요해."

고양이의 우아한 몸짓에는 그런 언어가 있다.  나는 그것에 늘 매료된다. 그래, 우리 이 정도의 거리는 두는 게 좋겠지. 그리고 가끔 그 세계가 포개어 질 때 느껴지는 사랑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감격스럽다.

진정으로 고양이 같은 사람이 있다면 나는 아마 영원히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양이가 되기에는 우리는 너무 약영혼들이라 때때로 강아지가 된다.

그것이 강아지도, 고양이도 아닌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 덕에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채 아프고 또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