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에는 눈도 푸지게 내렸고 날씨도 오지게 춥다.
그런데 어린시절에 느낀 추위를 생각하면 지금의 추위는 어쩌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1000미터 넘는 산들로 둘러쌓여 있는데다 남한강 상류였던 고향마을은 겨울이면 유난히 추웠다. 집을 나서서 학교에 갈라치면 개울가를 따라서 거무싯개라는 계곡 근처를 지나가야했는데, 산바람과 강바람이 마주치는 그곳은 자그마했던 내 몸뚱이를 거의 날려버릴 것만 같았다.
이미 내린 눈조차도 바람에 다시 날리어 얼굴을 사정없이 치발라버리면 별로 두텁지 않은 옷가지 때문이기도 하겠고 또 덜 자란 몸뚱이가 추위를 심하게 탄 탓일수도 있겠지만 그 추위에 눈물이 다 글썽글
조금 더 자라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거의 자취생활을 했는데, 가끔 연탄불을 꺼뜨리면 정말 춥고 서러웠다. 몸도 춥고 마음도 춥고, 거기다 연탄불 위에다 찌게도 끓이고 국이라도 데워서 먹어야하는데 그것조차 안되기때문에 그냥 전기밥솥에 밥을 해서 간장이나 고추장에 비벼 먹곤 했었다.
야간자습을 끝내고 써늘한 방안에 들어서면 마치 방구들이 서릿발 칼날처럼 파아랗게 날이 서서, 자갈섞인 황톳길을 걷는 듯이 발끝이 아릿했다. 복숭아뼈가 쩡하고 금이가서 복숭아씨가 투욱 튀어나올 듯이 아픔이 온 몸을 찔러왔다.
자주 걸려서 채 낫지 않은 감기기운에 보태어 칼바람에 지익 베인 듯 아린 코끝에서 진액처럼 콧물이 주르륵 흘러 내리고, 이부자리조차도 온기라곤 털끝만큼도 없이 마치 소슬소슬 서리가 낀 바윗돌을 맨몸으로 껴안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다 방구들은 오히려 체온 가진 동물의 마지막 온기까지도 빼앗으려는 듯이 살갗에 쩌억 들러붙는다.
추위를 잊기 위해 억지로라도 잠을 청할라치면 푹 뒤집어 쓴 이불 틈새로 칼바람이 문풍지 뒤흔드는 소리가 마치 영화에서 본 도망치는 베트콩 뒤를 쫓아가는 코브라헬기소리처럼 들리곤 했다.
군생활하면서는 설한지훈련이라고 겨울철에 하는 훈련이 가장 고달펐다. 병사들은 1미터 정도 땅을 파고 그 안에 텐트를 친 다음 여러명이 함께 잠을 청하기 때문에 그나마 바람도 막고 서로의 체온에 기댈 수 있었지만 초급지휘관이었던 나는 덩그런 분대용 텐트를 땅위에 얼기설기치고 그 안에 야전침대하나를 놓고 잠을 잤다. 얼마나 추웠던지 군화를 벗으면 다시 신기가 어려워서 그냥 신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나마 너무 추워서 차라리 순찰을 돌곤했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지금의 이 추위는 어쩌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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