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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다가 말다가

♣《만화 십팔사략》에서 읽는 '공성신퇴' - 주공, 범려, 장량

by 무딘펜 bluntpen 2018. 7. 11.
1.
제가 아끼는 책 중에는 만화가 몇 권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인 고우영의 《만화 십팔사략》은 10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구성이 탄탄하고 그림도 훌륭합니다. 중국 역사 초기부터 송나라까지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이만한 책도 드물다고 봅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인간의 역사가 대체로 그러하듯이 중국 역사에도 자기의 공을 내세우려다 일신을 망치는 이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러나 드물게 뜻을 이룬 뒤에는 아무 미련없이 훌훌털고 떠난 이들도 있습니다.

사자성어에 '공성신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라의 기틀을 세우는데 누구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을 이룬 뒤에는 스스로 물러나 몸을 보전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2.
《만화 십팔사략》을 읽다보니 공성신퇴라는 말에 딱 어울리는 세 사람이 눈에 띕니다.

먼저 주공 단입니다. 형인 무왕과 함께 아버지 문왕을 도와 은나라를 멸하고 주나라를 세웠습니다. 형이 죽자 13살의 어린 조카 성왕을 도와 주나라의 기틀을 마련한 후 이제 됐다 싶었을 때 홀연히 떠나 버렸습니다.

공자가 가장 이상적인 나라로 생각한 것이 주나라인데, 그 제도나 문화적 기틀은 주공 단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결코 그는 결코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두번째는 범려입니다. 널리 알려진  '오월동주', '와신상담', '토사구팽'이라는 사자성어의 뒷면에 있는 인물입니다.

월나라 왕 구천을 도와 오나라 왕 부차를 패퇴시키고 월나라의 부흥을 이끈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가 어려울 때 섬기던 구천이 패자의 지위에 오르자 토사구팽이라는 말을 남기고 미련없이 잠적했습니다.

나중에 돈을 많이 벌었지만 또한 미련없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제나라 재상을 지냈다는 설도 있습니다.

세 번째는 한 고조 유비를 도와 한나라를 세운 장량입니다. 장자방이라고도 불리는 그의 지략과  공로는 여러 중국 역사서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 역시 유방이 왕이 되자 미련처럼 그 곁을 떠났습니다. 계속 그 곁에서 욕심을 부리다 비참한 최후를 맞은 한신과 대비되는 인물입니다.

'공성신퇴'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이형기 씨의 <낙화>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