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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생각 짧은 글/1. 유쾌한 백수생활

코리아둘레길 4500km 공식 완보증 도착

by 무딘펜 bluntpen 2024. 11. 13.
■ 아침에는 경건한 마음으로 다부동 전투 전적지에 들렀습니다. 이념의 좌우에 따라 백선엽장군에 대한 평가는 갈리지만, 피아간에 2만 5천 명 가까운 피를 흘린 이 전투의 승패가 오늘날 우리가 살고있는 정치, 경제체제를 유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걸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 '철모른다'는 표현을 이 늦은 가을에 피어오른 예쁜 광대나물꽃에게 쓰기에는 너무 안스럽습니다. 곧 닥칠 추위에 이들은 어찌될까요?


■ 대구를 하루 만에 통과를 했지만 역시 역사의 숨결이 깊이 서린 도시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달성공원, 삼성상회 옛터, 대구근대역사관, 경상감영 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길거리에 다니는 분들의 옷차림과 표정에서 쓸데없는 형식보다는 솔직함과 내실을 기하는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도시에 비해 특히 눈에 띄는 건 자전거 이용자가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10미터 움직일 때마다 자전거 한 대는 만나는 정도이고 길거리에는 자전거주차대가 거의 만원이었습니다.

이 크고 유서깊은 도시를 하루 만에 지나친 게 못내 아쉽습니다. 나중에 대구둘레길과 팔공산을 오를 계획이 있으니 그 때 좀 더 대구와 친해져 보기로 하고 아쉬움을 달랩니다.


■ 먹는 얘기를 빼고 지나가기는 섭섭하니 오늘은 순대국밥 얘기입니다.

서문시장 근처 오토바이 골목을 지난 지점에서 왼쪽으로 접어드니 식당치고는 요상한 이름의 '8번 식당'이 나옵니다. 배고픈 여행자의 촉이 발동합니다. 요기 맛집이야!

들어가보니 오후 세시인데도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순대국밥을 시킵니다.

상차림은 간단합니다. 국밥 한그릇에, 깍두기, 새우젓, 풋고추와 양파, 그리고 양배추 겉절이.

그런데 국밥에 든 순대의 미모가 장난이 아닙니다. 진짜 내장으로 만들었다는 걸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새우젓에 찍어서 한 입 먹어보니 아, 돼지냄새, 피냄새 안나는 진정한 '순대맛'입니다. 이렇게 만들기 힘들텐데... 양념을 안한 채로 국물을 먹어보니 제대로 푹 고은 곰탕 국물맛입니다.

그런데 조연처럼 보이지만 제대로 입맛을 살려주는 건 요 양배추 겉절이입니다. 아무리 순대맛이 담백해도 순대는 순대지요. 그런데 적당한 고추가루 양념에 참기름를 가미한 겉절이를 곁들여 먹으니 개운하고 산뜻한 맛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맛'있습니다.

또 한번 감탄한 것은 식당 앞에서 양파를 다듬고 있는 분입니다. 양파 속껍질을 까고 연필깍을 때 쓰는 면도칼로 일정한 크기로 다듬고 있었습니다. 이 정도 정성이면 음식이 맛이 없을 수가 없지요.

대구에 가시면 서문시장 근처 8번 식당에 꼭 한 번 들러보세요. 맛없으면 제게 연락하세요. 대신 음식값 내어 드립니다. ㅎㅎ


■ 오늘 딸아이가 카톡을 보냈습니다. 한국의 길과 문화에서 택배가 왔다고. 지난 10월 5일에 완보한 DMZ 평화의 길 완보증과 뱃지를 모은 액자가 도착했습니다. 이제 코리아둘레길 4개 구간 4500Km에 대한 완보증을 전부 받았습니다.

완보한 지 한달 열흘 만에 받은 것이라 사실 감흥은 좀 떨어집니다만, 캔맥주 하나 들고 4500Km를 걸었던 지난 111일간의 여정을 사진으로 뒤져보며 약간 뿌듯해 하고 있습니다.


■ 즐거운 저녁들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