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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생각 짧은 글/1. 유쾌한 백수생활

오래된 시골모텔 이야기

by 무딘펜 bluntpen 2024. 11. 7.



■ 오늘은 경기옛길-영남로 9코스, 10코스를 걸었습니다.

영하로 떨어진 날씨에 호호 손을 불며 병인양요 때 천주교 순교지인 죽산성지에 도착하니, 절묘하게도 때맞추어 하늘에서 햇빛이 내려옵니다.




■ 조용한 분위기의 10코스 '이천옛길'을 걸어 영남로의 최종점인 어재연 고택에 도착하였습니다. 드디어 경기옛길 7개 코스를 모두 완보하였습니다.



2년 전 경기둘레길을 걸었으니 제가 사는 경기도의 둘레와 방사선으로 뻗은 도내의 주요 지역은 대강 훑어본 셈입니다.


■ 지금까지는 경기옛길 앱의 도움을 받으며 편하게 걸어왔습니다. 이제부터는 누군가가 걸은 기록을 다운받아서 약간은 긴가민가하면서 부산까지 걸어가야 합니다.

더구나 이 길은 제대로 검증된 길도 아닌데다가, 도로를 접하여 걷는 구간이 많아서 상당히 위험합니다.

먼저 318번 도로, 일죽과 생극을 잇는 도로라서 '일생로'라고 불리는 도로를 따라 5km 정도를 걸어 음성군 생극면으로 갑니다.



갓길이 없는 도로인데다가, 차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 아니니 오히려 차들이 마음놓고 쌩쌩 달립니다. 아슬아슬합니다.


■ 이럴 때 저는 세 가지 방법을 씁니다.

❶ 우측통행이 아니라 차가 오는 방향을 마주보고 걷는 좌측통행을 합니다. 멀리서 사람인지 여부를 판단하는데 얼굴쪽이 훨씬 유리합니다. 더구나 여차하면 뭔가 대응을 해야 하니, 좌측통행이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❷ 등산을 하거나 걸을 때 대부분 복장이 ㅡ 때가 덜타는 ㅡ 어두운색 계열입니다. 저는 손수건은 좀 밝고 화려한 걸 가지고 다닙니다. 도로를 걸을 때는 이걸 머리에 쓰거나 배낭 앞쪽에 메고 걷습니다.

❸ 아주 위험한 도로에서는 낮이라 하더라도 스마트폰 후래쉬를 켜고 갑니다(밤에 이런 길을 걷는 건 자살행위입니다). 마주오는 차에 여기 사람이 가고 있다는 경고를 보내는 것이지요.


■ 생극면 행정복지센터에 5시 이전에 도착했지만, 더 이상 걸으면 숙소를 잡기가 힘듭니다. 이곳에 있는 모텔 두 곳 중 하나에 잠자리를 마련합니다. 36,000원입니다. 싸죠?



■ 모텔에 도착하여 방문을 열자 마자 발이 수십 개 달린 벌레 ㅡ 아마도 "그리마", 일명 돈벌레 ㅡ 한 마리가 쏜살같이 도망갑니다. 뭐 이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지요. 어릴 때 우리집 안방에는 지네가 천정에 기어다니다가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했으니까요. 그리마는 물지도 않습니다. 빈대보다 덜 귀찮은 녀석이죠. 잘 뜯어보면 귀엽습니다.



짐을 풀고 샤워를 하려는데 온수가 안 나옵니다. 시골의 오래된 여관에는 흔한 일입니다. 주인을 불러 불평을 해봤자 주인이라고 이 낡은 시설에서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겠습니까?

온수 쪽으로 물을 틀어놓고 한참을 기다리면 됩니다. 그런데... 어느 쪽이 온수일까요? 이런 낡은 시설에서 빨간색, 파란색 표시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럼 오른쪽, 왼쪽?

답은 수도 꼭지를 좌우로 돌려봐서 물이 적게 나오는 쪽입니다. ㅎㅎ

잠시 후 더운물이 쫄~ 쫄~ 나옵니다. 이 부분에서 온도조절 잘해야 합니다. 갑자기 뜨거운 물이 훅 나올 수도 있습니다. 빨래는 애시당초 포기하고 간신히 샤워를 마쳤습니다.

하긴 백두대간 탈 때는 씻을 물이 아니라 먹을 물 한 모금에도 전전긍긍했던 걸 생각하면 이 정도도 호강이지요.


■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즐겁게 보냈습니다. 집 떠난 지 며칠 지나니 이제 몸과 맘이 걷기에 적응되어 편해집니다. 오늘도 저녁식사는 저의 최애 단골식당 편의점에서 테이크 아웃한 도시락과 햇반, 그리고 스텔라 아루뚜아 한 캔입니다.



■ 즐거운 저녁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