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블로그를 여러 개 운영하고 있다. 요즘은 그 동안의 여행기록을 정리하여 '나를 찾아 길위에 서다'라는 내 여행 블로그에 주로 글을 올리고 있다.
글을 올리면서 문득 내 블로그에 있는 이 여행기록들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내 취미가 무엇이라고 정의할 지 궁금해진다.
'여행'이라고 하시는 분도 있을 테고, '걷기'라고 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며, '배낭여행'이라고 하실 수도 있겠다.
■ 모두 맞는 얘기다. 다만 내 나름대로 생각하는 것은 "중장거리 트레킹"이다. 일반적인 여행보다는 내 두 다리에 의지하는 바가 크고, 걷기임에는 틀림없지만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처럼 하루 이틀 걷는 게 아니라 연속해서 일주일 이상 걷는 점이 약간 다르다. 그리고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을 배낭에 짊어지고 다니긴 해도 풍경이나 명소를 찾기보다는, 걷는 길과 걷기 자체를 중시하는 게 배낭여행(백패킹)과 미묘한 차이가 있다.
나는 혼자 길을 걷는다. 누군가와 같이 걷는 것도 즐겁지만, 나의 성격상 지나치게 상대를 신경쓰게 될 터이므로 마치 일상을 껴안고 가는 부담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나름대로 이런 걷기여행을 "홀로 먼 길 떠나기"라고 이름짓고 싶다.
■ 나는 왜 다소 고달퍼 보이기도 하는 "홀로 먼 길 떠나기"를 즐기는가?
먼 길을 걷기 위해 집을 나서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나도 그렇다. 첫날은 비몽사몽 간에 걷는다. 내가 왜 따뜻한 아랫목을 박차고 나왔나 후회하면서. 3일 정도까지는 몸이 아직 걷기에 적응을 못한다.
그 시기가 지나면 이제 몸은 조금씩 걷기에 익숙해지지만, 마음은 여전히 콩밭(따뜻한 아랫목, 맛있는 김치찌개, 다정한 술친구)에서 쉽게 떠나지 못한다.
일주일 정도가 지나면 드디어 마음도 걷기에 동참한다. 스스로 참여한다기보다는 아마 어쩔 수 없다는 체념에 가까울 것이다. 이제부터는 진짜로 집과 일상을 떠난 걷기 여행이 시작된다. 내가 살아왔던 일상이 먼 옛날 얘기가 되고 길이 내 삶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 이제 길가에서 만나는 꽃과 나무와 시냇물이 반가운 친구가 되고 아무리 거친 음식이라도 한 끼 한 끼가 고맙고, 날 저물면 만나는 잠자리가 따뜻한 아랫목으로 느껴진다.
일상에서의 삶은 저만큼 흘러간 옛날 이야기처럼 아득해지고, 바로 눈 앞에 있는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과 내딛는 단 하나의 발걸음이 나에겐 지상명제가 된다. 나는 이런 상태를 즐긴다. 이게 나의 취미생활이며, 또한 내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내가 코리아둘레길을 111일간 하루 40km 넘게 걸어서 완보했다는 얘길 듣고 이렇게 묻는다. 하루 이틀 걷기도 힘든데, 어떻게 연속해서 그 긴 거리를 걸을 수 있느냐고. 일주일 이상 휴대폰을 끄고, 모든 나의 몸과 맘이 걷기에 집중한 상태로 들어가보면 알게 된다. 걷는 게 그리 큰 고통이 아니라는 것과, 걷기를 통해서 얻게 되는 그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 물론 이런 나의 걷기는 직장과 노동에 매인 상태에서는 쉽게 행동으로 옮길 만한 취미는 아닐 것이다. 또한 어느 정도의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행운아라고 생각하고 있다.
걷기를 통하여 느끼는 몸과 맘의 해방감, 그 동안 내 삶의 중심에서 밀려나 있던 '나' 자신과의 솔직한 만남, 후회스런 과거와 두려운 미래는 달아나고 그 자리에 생생하게 느껴지는 '현실감각'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
우리나라에 이처럼 내가 걸을 수 있는 길이 많다는 건 참으로 즐겁고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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