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독서동기
언론의 서평에서 "확신에 찬 사람들 속에 나를 내버려두지 않기"라는 표현이 김소연 작가의 책머리에 나온다고 해서 무슨 의미인지 궁금했다.
나도 확신에 찬 사람들 사이에서 고민이 많은 인종인지라 내가 동의할 수 없는 '당찬 주장'을 만났을 때 어떻게 나를, 나의 생각을 지켜 나갈지 확신이 없다.
작가는 어떤 생각과 행동으로 이 주장이 강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을까?
2.
그런데 기대보다 글들이 짧으면서도 가벼움이 묻어나는 글들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
사실 나는 '시인'이 쓴 에세이를 좋아한다. 같은 글이라도 다른 작가들보다 시인들이 쓴 단어는 왠지 생생한 느낌을 주고, 복잡한 생각보다는 가슴으로 술술 읽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의 경우는 술술 읽히기는 하는데 가벼워도 너무나 가볍달까. - 미안합니다!)
아마도 이런 느낌은 머릿말에 있는 작가의 다음 말과 연결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되도록 생각한 바와 주장하는 바를 글로 쓰지 않고, 다만 내가 직접 만났거나 직접 겪었던 일들만을 글로 써보고 싶어졌다. 나를 뺀 세상의 전부, 내가 만난 모든 접촉면이 내가 받은 영향이며, 나의 입장이자 나의 사유라는 걸 믿어보기로 했다."
아차!
작가가 말하지 않았던가. '확신에 찬 사람들 속에 나를 내버려두지 않기'라고. 그러므로 본인고 그런 확신에 찬 주장들을 떠벌리지 않고 담담하게 글을 떠내려 간 것인데,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생각의 방향성에 은근히 동조했던 것인데, 이제 와서 '너무 가벼운' 글이라고 멋대로 내뱉다니! 나의 생각없음이 가벼워도 너무 가볍다.
3.
요즈음은 책을 읽으면서 제목에 관심이 많이 간다. 이 책의 제목 '나를 뺀 세상의 전부'란 무슨 의미로 제목에 붙여졌을까? 아마도 위에 인용한 글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즉, 작가는 '나'를, 나의 주장과 생각을 지워버리고 그 밖의 것들로만 글을 채우고자 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이런 제목을 붙인 것이리라.
4.
책의 내용 중에 방콕에 여행 갔을 때 겪은 낯모르는 이의 친절에 대한 생각이 인상적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는, 내게 친절을 베풀어준 사람이라기보다는 여행하는 법을 알려준 사람이었다. 고마움을 가득 머금고 작별인사를 하는 내 손을 꼭 잡고 그가 말했다.
“네가 이 다음에 나처럼 나이를 먹으면, 너도 어린 여행자들에게 좋은 밥도 사주고 아플 때 약도 사주고 차표도 끊어주는 어른이 돼. 그리고 그 애들에게도 똑같이 나중에 그렇게 하라고 당부를 해. 내가 어릴 때, 나한테 이렇게 해줬던 사람이 나에게 당부했던 걸 너에게 한 거야.”
5.
출퇴근 길에 부담없이 전자책으로 읽었다. 책을 읽으며 내 가슴을 찌르며 반성하게 하는 글귀를 하나 발견했다.
“'작은 재능은 신의 가장 큰 저주'라는 문장을 본 적이 있다. 이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때, 누군가에게 몹쓸 것을 들킨 기분이 들었다."
나 역시도 누군가 나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에 얼굴이 붉어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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