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교과목 이름이 바뀌었더라면 우리가 다닐 때는 국어, 산수, 사회, 자연, 국사, 바른생활, 음악, 미술, 체육이 있었고 5학년 이후엔가는 실과라는 과목이 있었지.
학기 초가 되면 각 과목별로 새 교과서를 받아오면 누나들이 헌 달력이나 밀가루포대로 정성스레 책 커버를 싸주던 일이 생각난다.
물론 두세 달만 지나면 도시락에서 새어나온 반찬국물에 찌들어 얼룩얼룩 해지거나 책보에 아무렇게나 싸가지고 다니는 바람에 커버는 물론 책장까지도 너덜너덜해지곤 했지.
하여튼 ‘철수’와 ‘영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국어과목은 공책이 다른 과목과 달리 특이했지. 원고지와 비슷하게 네모칸이 죽 처져 있는 것이었는데 거기에 삐뚤빼뚤 글씨연습을 하던 때가 생각난다.
국어과목은 조기교육이 없던 우리 어린 시절에는 몇몇 친구들에게는 공포였을껄. 2~3학년 정도까지는 아직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친구들이 몇 명 있어서 나머지 공부를 하곤 했는데, 글을 읽을 줄 아는 애랑 짝을 지어주곤 같이 나머지 공부를 시켰지.
나는 임춘배랑 짝이었는데 ‘강낭콩 밭이 있었습니다.’로 시작하는 세 개의 강낭콩이야기를 가지고 글을 가르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춘배가 강낭콩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고 자꾸 ‘강남콩’이라고 해서 내가 짜증을 내면 연필 뒤꼭지로 이마를 콕콕 때렸던 기억이 있다. 나 참 못됐었지.
국어시간에 또 한가지 기억나는 일은 말똥구리가 소똥을 뒷발로 굴려서 경단을 만드는 모습을 관찰일기 형식으로 쓴 글이 있었는데 그 뒤로 한인규를 말똥구리라고 별명을 붙여줬던 생각이 난다. 아마도 인규가 말똥바우에 살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기타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로 시작하거나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로 시작되는 시조를 배우던 일들도 기억난다.
나는 유난히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해서 글로 씌어진 것이면 닥치는 대로 읽었는데 ‘선데이 서울’이라고 당시에 유명한 잡지책을 읽으며 야한 내용이 나오면 호기심을 금치 못하던 생각이랑 성인 소설책을 학교에 가지고 가서 수업시간에 읽다가 선생님께 뺏겼던 일들도 생각난다.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너희들에게 고백할 일이 있다. 우리 학교에도 조그마한 도서실이 있었었지. 교무실 바로 옆의 자료실과 붙어 있던 곳에 조그만 책장 두개로 이루어져서 100권 남짓한 책들이 꽂혀 있었는데 평상시는 항상 잠겨 있었단다.
그런데 그 곳을 몰래 들어가는 방법이 있었는데 바로 우리가 운동기구나 괘도, 실험기구 같은 것을 넣어두던 자료실을 통하는 방법이었단다. 그곳은 워낙 자주 아이들이 드나들어서 열려 있는 경우가 많았고 잠겨 있으면 소사 아저씨한테 얘기하면 열쇠를 주셨는데 그 자료실과 도서실 사이의 창문 쪽으로 틈이 나 있었다.
당시에 쬐끄맣던 내 체구로 조금만 힘을 주면 뚫고 들어갈 수 있었기에 나는 방학이나 휴일에 나와서 공부하거나 놀다가 책을 읽고 싶으면 그 사이로 침입하여 혼자서 유유자적 책을 읽곤 했단다. 덕분에 나는 어릴 때부터 좀 유식한 체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산수는 1학년 때 덧셈과 뺄셈을 배우고 2학년때부터 구구단을 외우기 시작했는데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나의 취약과목이라 고생을 많이 했단다.
무조건 외우면 되는 다른 과목들과 달리 이해를 해야하는 산수과목은 별로 찬찬한 성격이 아니었던 나에게는 큰 고통이었다.
다른 것은 별로 기억나지 않고 도형에 관한 것을 배우면서 선생님이 사용하시던 긴 대자 - 이 대나무 자로 손등을 맞아서 팔짝팔짝 뛰며 아파하던 친구들의 모습도 떠오른다.-와 플라스틱으로 만든 커다란 삼각자, 그리고 분필을 끝에 끼워서 원을 그리던 대형 콤퍼스가 기억난다.
그리고 다른 과목에 비해서 산수과목은 유난히 숙제가 많았지. 그런데 나는 국민학교 때는 노는데 정신이 팔려 숙제를 거의 해가지 않았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공부는 잘한 덕분인지 (^-^) 선생님께서 내 숙제검사는 안하고 항상 그냥 넘어갔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도 숙제를 한번 해 간 적이 있다. 선생님께서 숙제검사를 하시다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그냥 건너뛰고 다음 사람으로 넘어가는 순간, 내가 ‘선생님 나도 검사해주세요.’라고 말했단다.
내 딴에는 오랜만에 숙제를 해왔으니 칭찬을 받으리라고 생각하고 한 말이었는데, 선생님께서 돌아서시더니 인상을 찌푸리시며 다시 한번 말해 보라고 하셨다. 나는 영문을 모른 체 ‘나도 검사해 주세요.’라고 말했지.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나를 불러내셔서 엎드리라고 하시고는 몇 대를 때렸지. 그 때까지도 영문을 잘 몰랐는데 결국 선생님께는 ‘저도’라고 해야 하는데 내가 버릇없이 존댓말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 잘못임을 그 때 지적을 받았고 그 후로는 나는 내가 쓰는 말씨에 대해 정말 조심하게 되었단다.
사회과목에 대해서는 별로 기억이 없다. 사실 사회과목은 암기만 하면 되니까 별로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국사는 내가 유난히 강점을 보였는데 사실 나는 고조선 멸망부터 갑오경장까지 주요사건 50여 개를 연도까지 거의 정확히 기억했단다.
내 기억력이 그리 나쁘지 않았던 덕분이기도 했지만, 그 비법은 어느 책에서 본 암기요령을 적용한 것이었단다. 예를 들어 고조선이 BC 108년에 망했다면 108년을 한글자음의 순서(ㄱ0ㅇ)로 바꾸고 그것을 다시 낱말로 바꾸어(예를 들면, 가영이), ‘고조선에 가영이란 예쁜애가 살았다.’로 외우는 방식이었지.
중학교 때 이후 그런 방식을 잊어먹기는 했지만 덕분에 행정고시를 보면서도 국사과목만큼은 자신이 있었지.
자연과목은 매우 흥미로운 것이 많았지. 얘를 들면 강낭콩을 싹을 틔워서 철사줄을 타고 유리창 높이까지 키워 올린 일도 있었고, 파란색 빛깔이 보석같이 빛나던 황산구리 결정체를 만들어 보기도 했던 일 기억하니?
자석을 이용하여 철가루가 자기장을 이루는 재밌는 모양을 관찰하기도 했고,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전자석 만들기였는데 대못을 불에 구운 후에 거기에 구리선을 감고 구리선 양쪽으로 건전지의 음극과 양극을 대면 그 대못이 자석을 띠는 현상은 정말 신기했었다.
자연시간과 관련하여 또 한가지 기억은 우리교실 뒤쪽에 색색의 금붕어를 말풀과 함께 넣어 키우던 수조가 있었는데 그 안에 길다랗게 생긴 소금쟁이와 검정색이 반질반질 빛나는 방개를 넣어서 키웠었지.
바른생활은 우리가 워낙 바른생활 어린이여서인지 제일 쉬워들 하는 과목이었지. 시험 때 유난히 100점을 맞는 친구들이 많았다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음악시간은 풍금소리에 맞추어 가곡을 불렀던 기억이 새롭다. 우리 학교에는 풍금이 두 개가 있었는데 음악시간 전에는 항상 남자애들 몇이 동원되어 다른 교실에서 풍금을 옮겨왔었는데 2학년 이후에는 우리가 뒤쪽 교실을 사용하는 바람에 그 무거운 풍금을 들고 언덕을 올라갈 때 끙끙대던 기억이 있다.
풍금은 기억하겠지만 발로 밟아서 바람을 넣으면서 피아노처럼 생긴 검정과 하얀 건반을 이용하여 연주를 하는 것이었는데 연주할 때 뒤에 서면 술술 바람이 나왔었단다. 나도 가끔 쳐보곤 했는데 풍금으로 연주하기 제일 쉬운 곡이 '바위고개'라는 곡이다. 도레미미 미도레미 라라 파라솔---
김정송 선생님은 풍금도 잘 치셨고 노래도 참 잘 부르셨지. 우리들에게 음악책에 나오지 않는 가곡을 참 많이 가르쳐 주셨는데 칠판을 가사를 적어 놓고는 풍금반주에 맞추어 선생님이 선창하고 우리가 후창하며 노래를 배웠었지. 그 때 배웠던 노래 ‘선구자’, ‘여수’, ‘그리운 언덕’ ‘바위고개’같은 노래는 아직도 입가에 맴돈다.
특히 선생님께서 혼자 풍금을 치면서 부르던 노래 중에 ‘내 놀던 옛동산에 오늘 와 다시보니, 산천 의구란 말 옛시인의 허사로고...’하는 노래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가끔씩 고향에 들를 때마다 그 노래를 들을 때의 아득한 그리움을 다시금 생각나게 하더구나.
미술시간은 내가 좀 싫어하던 과목인데 이유인 즉슨 준비물 때문이었다. 하다못해 크레용과 도화지라도 꼭 준비를 해가야 하는데 그게 만만치 않았거든. 몇몇 애들이 준비해온 크레파스를 나눠쓰던 일이랑, 다른 애들의 스케치북을 북 찢어서는 그림을 그리던 생각이 난다.
준비물 중에서 가장 쉬웠던 것은 찰흙 만들기였는데 우리집 뒷산에 보면 붉은 색 황토흙이 나오는 곳이 있어서 전혀 부담이 없었거든. 그 시간에는 마음껏 흙인형이나 차를 만들며 재미있게 보내곤 했었지.
체육시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었는데 선생님께서도 가끔 참여하긴 하셨지만 교과서에 있는 체육활동을 가르쳐 주신 적은 별로 없고 그냥 그날그날 기분 내키는 대로 뛰어 놀았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야구나 농구는 꿈도 꾸지 못했고 주로 남자들은 축구를 하면서 여자들은 고무줄 놀이를 하거나 그냥 자유활동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같이 했던 놀이 중에 예전에 배구장이던 곳에서 남자들과 선생님을 포함한 여자애들로 편을 갈라서 피구경기를 했는데, 선생님을 일찍 죽이고(?) 괴력을 발휘하던 우리의 여장부 함연순까지 아웃을 시킨 후 아슬아슬하게 우리 남자 편이 승리하던 일이 생각난다.
마지막으로 실과시간이 있었지. 밥을 할 때는 손등위로 물이 찰랑거릴 정도로 부어야 한다거나, 바느질하는 방법은 이런 저건 것이 있다거나 나무에 접붙이기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등을 배웠었지.
단무지를 만드는 방법과 감을 따서 침시를 만드는 방법도 책에 나와 있었던 것 같은데 실과시간과 관련하여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감자경단 만들기였단다.
감자를 쪄서 밀가루랑 달걀 등을 넣고 되게 반죽을 한 후에 동글동글하게 경단을 만든 후에 그 위에 깨나 콩고물 계란 노른자 찐 것 등을 묻혀서 내놓으면 정말 색깔도 이쁘고 먹음직스러웠지. 그 때 학부형 중 어머님 몇 분이 오셔서 같이 만들어 주셨던 것 같은데 내 기억에는 내가 지금까지 먹어본 음식 중에서 가장 맛있었던 것이다.
하여튼 내가 중학교 때부터 자취생활을 오랫동안 했는데 아마도 실과시간에 배운 지식이 도움을 많이 주었겠지 않았나 싶고 요즘도 요리법만 대강 읽어보면 음식을 제법 먹을 만 하게 만드는 실력도 국민학교 실과시간 덕분이 아니었을까?
이정도로 우리가 국민학교 때 공부했던 교과목에 대한 얘기는 끝내고 다음 기회에는 학급회의와 특별활동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한다.
안녕!!!
* 나 지금 휴가 중이라 시간 많은 건 알지... 가능하면 약속한 10탄까지를 휴가 중에 써볼까 한다. 딸아이들과 컴퓨터 싸움만 않는다면 가능하기도 한데....글쎄다. 노력해 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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