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렇겠지만 국민학교 때 추억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운동회와 소풍이겠지.
운동회는 봄과 가을에 두 번 있었다. 먼저 가을 운동회부터 얘기 해보자.
가을 운동회는 보통 벼가 누렇게 익어가기 시작할 시기인 추석 무렵에 열렸는데 한달 전부터 운동회 준비를 했었지. 시골에서의 운동회는 사실 마을 축제에 가까웠으니 온 동네 사람들을 초청해서 학생들의 기량을 보여주려는 학교의 욕심도 있었을거야.
연습은 주로 저학년은 무용이고 고학년은 덤블링을 중심으로 했는데 정말 덤블링 연습은 힘이 들었다.
무용을 연습할 때면 잘하는 애들 두 사람이 교단에 올라가 시범을 보이고 여선생님의 지휘 하에 연습을 하고 했는데 그 때 위에 올라가 시범을 보이던 사람 중에 우리 한해 선배인 박기영(나중에 중학교는 같이 다녔지.)과 한희숙이라고 희복이 친척되는 예쁘장한 여자선배가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하여튼 나는 원래 몸치인데다가 여자 애들과 짝을 맞추어 연습하는 것이 무척 내키지 않아서 무용을 싫어했던 기억이 있단다.
덤블링은 그야말로 가장 힘든 종목이였어. 무릎 위에다 사람을 세우거나 어깨 위에 무등을 태우기, 물구나무 서서 버티기 등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하이라이트는 맨 마지막에 하는 탑 쌓기였지.
맨 아래에 8명이 스크럼을 짜고, 그 어깨위에 4명, 그 다음에 두명이 각각 스크럼을 짜고 올라서며, 마지막에 제일 몸이 가볍고 날랜 한 명이 올라가는데 아래층부터 호각에 맞추어 차례로 일어서서는 맨 위의 사람이 마지막 활짝 양팔을 벌리면 구경꾼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하곤 했었지.
운동회 전에 마지막 점검을 위한 총연습을 무사히 마치고 나면 이제 결전의 날만 기다리게 되지.
운동회 당일에는 아침부터 바빴어. 도시락 싸랴, 운동복 챙기랴...
운동회가 시작되면 우리는 청군 백군으로 나누어 기다란 파란색과 흰색 깃발을 흔들며 응원을 하곤 했지. 그 때 응원구호로 자주 쓰던 것이 청군이겨라, 백군 이겨라 외에도 ‘플레이 플레이, 청군 플레이!’라는 것이 있었고, 응원가는 ‘푸르고 넓은 운동장에 청군과 백군이 싸운다. 아무려면 청군이 이기지....’로 시작하던 노래가 생각난다.
머리에 청색띠와 백색띠를 두르고 출전하여 서로 열심히 겨룬 끝에 어느 한 쪽이 이기면 운동장 가장자리에 세워둔 칠판에 분필을 가로로 해서 쓴 큰 글씨로 점수가 쌓여 가고 운동회는 점점 열기를 더해 갔었지.(내 기억이 맞다면 4학년 이후에 우연히도 항상 청군이 이겼다.)
특히 남자애들의 승부근성을 자극하는 것은 기마전이었지. 학년 구분없이 덩치를 기준으로 뽑힌 60명 정도의 대한남아들이 보무도 당당하게 “멸공, 통일”을 외치며 운동장 한가운데로 뛰어가면서 필승의 의지를 불태웠던 기억이 난다.
양편으로 갈라서면 가장 덩치 큰 애가 말을 하고 양쪽으로 한명씩 날개가 붙으면 그 위에 가볍고 날랜 애가 기수가 되어 올라타는데 기수는 각기 자기편을 상징하는 색깔의 모자를 꺼꾸러(모자챙이 뒤로 가도록) 쓰고 있었어. 성렬이는 항상 기수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맞지?
말이 쓰러져 땅에 몸이 닿거나 모자를 뺏기면 지는 경기였는데 경기 도중에 격렬한 싸움에 코피를 흘리는 애들도 있었지. 한번은 5학년 후배가 팔꿈치로 내 코를 후려치는 바람에 코피가 났고 그래서 경기가 끝난 후에 싸웠던 기억이 있다.
기마전을 할 때 용구나 순해는 항상 말을 했었지. 한번은 순해 옆에서 내가 날개를 맡았는데 나랑 키 차이가 많이 나서 거의 매달려 가듯이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다음에 치열했던 경기는 줄다리기였지. 가장 많은 인원이 맞붙는 경기였을 뿐만 아니라 점수도 제일 높은 종목이라 학부형들까지도 응원전에 열을 올렸는데 어떤 분은 응원하다 애가 타서 직접 줄에 매달려 당기시는 반칙을 범하시는 분도 있었단다.
줄다리기 줄은 우리가 어릴 때는 동네 청년들이 새끼줄을 꼬아 몇가닥을 합쳐서 만들었고 그 이후는 굵은 나이론으로 만든 동아줄을 이용했었는데 몇 번 당기고 나면 손도 아프고 힘들었지만 사실은 목이 먼저 쉬어 버리곤 했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달리기 경주는 운동 잘하는 용구나 차연이한테는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기회였겠고, 나도 용구만 피하면 상품으로 공책이나 연필을 탈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단다. 동대국민학교는 운동장이 좁아서 100m달리기도 직선코스가 아니고 철봉근처의 출발점에서 선생님의 화약총소리에 맞추어 출발하여 아랫쪽 축구골대 앞을 지나 본부석 천막이 위치하던 교단 앞을 지나서 바로 골인지점이었었지.
그런데 그 당시에는 우리는 대부분 고무신(기차표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녔기에 달리기를 하다가 신발이 벗어지기 일쑤였어. 그래서 대부분 맨발로 달리는 경우가 많았고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서 트랙을 따라서 잔돌까지도 모두 줍고서 경기에 임하곤 했던 기억이 있다.
개인별 달리기 이외에도 손에 땀을 쥐게 하던 계주 경기도 박진감을 주던 종목이었지. 학년별로 몇 명씩 대표주자들이 나와서 바통을 주고 받으며 달리는 것인데 이것이 거의 마지막 경기였고 점수도 많이 주어지는 경기였기에 응원열기로 따지면 다른 어느 종목보다도 후끈했었지.
기타 오재미를 던져서 박을 터트리면 그 안에 든 형형색색의 색종이 가루가 펄펄 날리던 일도 생각이 나는데 특히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인공위성 날리기였단다.
가벼운 문종이(한지를 이렇게 불렀었지. 물론 나중에는 비닐을 이용하여 만들기도 했음)를 여러 조각 잇대어 붙여 자루처럼 만들고 철사로 동그랗게 입구를 만든 후에 그 사이에 석유를 바른 솜뭉치를 달고 거기에 불을 붙이면 자루안의 공기가 뜨거워지면서 그 큰 인공위성(?)이 하늘로 둥실 떠오르면 우리는 박수를 치면서 우리의 염원을 담아 날려 보냈지.
재미있는 일은 그게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거지. 어떤 때는 자루만 홀랑 태워먹고 인공위성 발사에 실패한 적도 있었고 날아가더라도 낮게 날다가 근처 산위에 떨어져 연기가 펄펄 나면 산불나는 것은 아닌가하고 마음 졸인 적도 있었지.
앞에서 얘기했지만 가을 운동회는 마을 전체의 축제였기에 자모달리기, 동네청년들의 오래달리기 경주 등이 있어서 제법 달리기를 하던 우리 형도 가끔 양푼을 상으로 타오곤 했었단다.
운동회가 즐거웠던 또 한가지 이유는 먹거리 때문이었지. 그날은 평상시와 다른 김밥이나 특별한 반찬이 포함된 도시락을 싸와서 먹을 수 있는 기회였고 집에서 주는 잔돈푼을 가지고 화약을 터뜨릴 수 있는 장난감 총이나, 풍선 등과 사탕이나 껌, 사이다 등 군것질 거리를 사먹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지.
그 당시 사이다는 거의 탄산수에 사카린을 탄 것 같은 맛이었지만 사이다 장수가 대못을 이용하여 뚜껑에다 뻥 뚫어주는 구멍을 통해 빨아먹던 그 맛은 지금의 어느 음료수보다도 달콤했었지.
마지막으로 동네 어른들은 미끄럼틀 옆 쪽에 솥단지를 걸어놓고 돼지고기나 닭고기로 끓인 국밥에다 막걸리 한잔에 얼큰하게 취하셔서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곤 하셨어.
봄 운동회는 가을운동회보다 규모가 작기는 했지만 향우반별 체육대회라는 점에서 그 당시에 마을별 패거리문화(?)가 판치던 분위기에서는 나름대로 지기 싫어하는 마음에서 꽤 의미가 있었지.
향우반은 애향단이라고도 불렀는데 각 마을별로 조직되어 6학년인 반장을 중심으로 꽃길(코스모스가 대종이었지만) 가꾸기나 마을길 청소하기 같은 일에 열심이었었지.
향우반 체육대회를 하게 되면 규모가 작은 마을은 두 세 군데가 합쳐서 한 팀을 만들었는데 우리는 거의 푸색골, 좌송 애들이랑 편을 먹었었지. 그런데 내가 앞에서도 지적을 했지만 그쪽 방면 애들이 평상시 통학시에 단련된 튼튼함을 무기로 달리기도 잘하고 상당히 날래어서 우리가 우승을 한 적도 있었다.
아쉽게도 달리기 이외에는 향우반 체육대회의 종목이 생각이 나지 않는데 아마도 가을운동회 때는 못했던 축구시합이나 씨름종목도 있지 않았었나 짐작해 본다.
이제라도 그 시절 그 운동장에 서면 당장이라도 온힘을 다해 달릴 수 있을 것 같지만 이미 몸은 나이 40을 넘겨 버리고 말았으니...
친구들아... 건강관리 잘하고 꾸준히 운동도 해서 오래오래 건강한 몸으로 잘 살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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