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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생각 짧은 글/3. 나의 살던 고향은

국민학교 - 8. 학과공부 이외에 특별한 그 무엇을 배우는 특활시간

by 무딘펜 bluntpen 2008. 9. 3.

  이 비슷하게 영어약자로 표시되는 시간이 CA시간이었는데 목요일인가 금요일 맨 마지막 시간에 취미생활에 따른 특별활동을 하는 시간이었는데 아마 Club Activity를 의미하였던 것 같다.

 이 시간에는 각자 자기의 취미생활에 따라 학년 구분이 없이 다른 교실로 가서 활동을 하였는데 나는 주로 독서반이었고 서예반, 음악반, 미술반, 체육반 등이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3학년 때였던가 독서반이 자유교양이라는 이름으로 독서결과를 가지고 군 대회에 출전하는 일이 있었다. 그 때 지도선생님이 지상희 선생님이라고 남자선생님이셨고 그 때 읽은 책이 한국의 전래동화공룡의 세계라는 두 가지 책이었는데 그 당시 책읽기를 좋아하던 나는 그 책들을 달달 외우다시피 했는데도 불구하고 실제 대회에 나가 보니까 알프스 소녀 하이디에 대한 내용을 쓰라고 해서 황당했던 기억이 있다.

  특별활동 중에 가장 성과를 거둔 부분이 서예반이었지. 우리 담임이셨던 김정송 선생님이 지도를 하셨고 재성이랑 춘배, 오달이, 순해와 다른 학년애들도 몇 명 참가하여 신문지에도 대고 붓글씨 연습을 하던 일이 생각난다.

  그 중에서 결국 출중하게 글씨를 잘 쓰던 재성이가 선발되어 방과 후까지 열심히 연습한 결과 군대회는 물론이고 도대회까지 휩쓰는 쾌거를 올렸던 일도 우리 학교의 자랑거리 중에 하나였지.

  서예반과 함께 학교의 이름을 빛낸 것이 운동종목이었는데 우리 반에서는 용구와 차연이가 운동을 참 잘했어.

  용구는 거의 전 종목에 걸쳐서 뛰어났는데 특히 내가 기억에 남는 일은 넓이 뛰기 종목이었지. 운동장 가의 시이소오가 있던 옆에 모래가 깔린 연습장소가 있었는데 5학년 때였던가 여름방학에 나와서 연습을 하다가 너무 못한다고 선생님께 꾸중을 들었단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나서 다시 한번 시도를 했더니 그 당시 내 기억으로는 놀라운 기록인 4m를 훌쩍 뛰어 넘는 것 있지. 너무나 기뻐서 교무실에 계시던 선생님께 달려가서 말씀 드렸더니 선생님도 무척 좋아하시던 기억이 난다. 결국 군 대회에서는 1등을 하고 도대회까지 나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차연이는 단거리 달리기를 무척 잘했지. 자그마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리 잘 달리던지... 여자들은 당시에 60m 달리기를 했는데 군 대회에서는 거의 순위권에 들었었지. 한번은 군 대회에서 차연이가 달리기를 하는데 상대인 여의곡에서 나온 선수들은 거의 가슴이 불룩 튀어나온 최소한 고등학생정도 되는 여학생들이라 도저히 게임이 안될 것 같았음에도 차연이가 이기는 걸 보고 감탄한 적이 있었다.

  나는 폐활량이 컸는지 200m 달리기와 단축마라톤 선수였었지. 단양국민학교에서 출발하여 단양향교를 지나 단천 고갯길을 넘는 2.7km코스를 숨을 헉헉대며 올라갈 때의 그 하늘이 노랗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당시에 대회에 출전할 때는 신고 나갈 운동화를 학교에서 사 주었는데 나는 사실 그게 정말 얻고 싶어서 연습을 열심히 했는지도 몰라. 장거리인 나한테는 바닥이 찰고무로 되고 앞쪽에 빨강 파랑 검정의 삼색 줄이 그어진 하얀색 런닝화를 사주었었거든. 지금 생각해도 너무 멋진 신발이었어. 대회가 끝난 다음에도 줄곧 그 신발을 아껴서 신고 다니곤 했었다.

  그 외에도 나는 글짓기나 학력경진대회 등을 위해 단양에 자주 가곤 했는데 한번 대회에 참가하려면 새벽4시 반에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출발해야 했단다. 하긴 우리보다 먼 의풍 애들은 그 전날 저녁에 영춘으로 가서 거기서 자고 아침에 출발하기도 했지만...

  하여튼 밤재 고갯길을 넘어서 아침 6시 30분 정도에 차장아가씨의 오라이! 소리와 함께 출발하는 완행버스에 몸을 맡기면 차는 하리의 강을 장정 몇 사람이 노를 강물바닥에 대고 저어서 건네주는 배를 타고  먼지가 뽀얗게 이는 길을 한참 달리면 다시 군관나루가 나오고 거기서 다시 찻배(차를 배에 실어서 날라주는)를 타고 강을 건넜지.

  겨울철에는 가끔 강이 꽁꽁 얼어붙어서 찻배가 운행을 못하였기 때문에 얼음위를 걸어서 강을 건넌 후에 버스를 타고 다니기도 했지. 요즘은 강물이 많이 오염되어서인지 그 때처럼 꽁꽁 어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보발과 가곡을 지나서 까막득한 절벽 위로 버스가 다녀서 버스 안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마치 비행기를 탄 기분이라는 비행기 고개를 넘어 지금의 신단양인 상진을 지나 단천고개를 넘으면 단양에 닿았었지. 차를 타는 일에 익숙하지 못한 촌놈답게 나는 처음에는 멀미를 많이 했기 뿐에 두시간이 넘게 차를 타고 가면 기진맥진하곤 했었는데...

  하긴 어떤 때는 청주에서 열리는 도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 그 전날 제천까지 가서 지금 지하철처럼 의자가 창을 따라 놓여있는 열기가 확확 뻗치는 비둘기호를 타고서 봉양-삼탄-충주-주덕-음성 등을 지나 오근장역에서 내려 여관방에서 지냈던 일들도 기억난다.

  단양에서 기억나는 일은 점심식사는 항상 중국집에 가서 먹었는데 그 때 먹은 짜장면은 왜 그리 맛있던지. 양파와 단무지에 식초를 듬뿍 타서 우걱우걱 씹으며 면 한 오라기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어 치우곤 하던 기억이 새롭다.

  또 한 가지는 대회를 인솔하셨던 코옆에 점(요즘은 매력점이라고 하더라만) 여선생님께서 돌아오는 차를 기다리다가 막간을 이용하여 부라보콘을 사 주셨는데 당시에 우유로 만든 것을 별로 먹어볼 기회가 적었던 나는 아이스크림 나를 다 못 먹고 가방에 넣어 두었단다.

  차가 출발하고 얼마 안 지나서 선반위에서 누런 액체가 주르르 흘러 내리더니 주무시고 계시던 그 여선생님 머리위로 뚝뚝 떨어져 내리는 바람에 얼마나 미안하던지. 당시에 그 선생님은 미혼이셔서 나름대로 머리에 신경도 쓰셨을 텐데... 죄송합니다 선생님!

  또 어느 대회였던가는 인솔선생님께서 단양에서 곧바로 집으로 가시고 우리만 차를 태워 보내주시는 바람에 용구랑 차연이랑 몇 명이 부엉이 소리를 들으며 어두운 밤재고개를 터덜터덜 넘어오던 생각도 난다.

  우리 반에는 선수가 없었지만 우리 위 아래 학년으로 구성되었던 탁구선수팀은 매년 군대회를 휩쓰는 것은 물론이고 소년체전에도 출전했던 기억도 있다. 그리고 너희들 중 기억 못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우리가 저학년 때는 동대국민학교에 여자 핸드볼 팀도 있었단다. 그래서 우리학교에 핸드볼 골대가 있는 거란다. 나는 우리 둘째 누님이 핸드볼 선수였었기때문에 기억은 하고 있지.

  대회 출전과 관련하여 기억나는 또 한가지는 6학년 때는 벽지국민학교 어린이들을 초청하여 관광을 시켜주는 기회에 내가 갔었는데 자연농원의 사파리에서 사자를 구경했던 일이 있었다. 그것이 내가 충청북도를 떠나본 첫 번째 기억이란다. 정말 그 때 느낌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데 나는 참 우물안 개구리로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특별활동과 관련하여 또 빼놓을 수 없는 기억이 카페의 사진에도 나와 있지만 5학년 때였던가 미술대회에 우리 반이 대거 입상한 적이 있었지. 아마 함연순이 가장 잘 그렸고 나머지 장려상까지 포함하여 15명 가까이 상을 받은 적이 있었지. 불행히도 나는 그 때 상을 받지 못했지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러 넣어준 사건이었지.

오늘은 여기까지... 좋은 꿈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