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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생각 짧은 글/1. 유쾌한 백수생활

야후 블로그 - 22. 아버지를 그리며...

by 무딘펜 bluntpen 2008. 9. 4.
22. 아버지를 그리며...
2007/02/26 오 전 8:32 | 스쳐가는 짧은 생각들 | [느티나무]

어제는 어머님의 일흔 네번째 생신을 차려 드렸다. 먼곳에 있는 누나들은 참석을 못했지만 형과 근처의 누님내외, 그리고 멀리 단양에서 여동생 내외가 조카들을 데리고 올라와서 나름대로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중풍과 노환으로 병원신세를 지고 있는 어머님을 볼 때마다 곁에서 모시지 못하는 내 무능을 가슴아프게 느끼곤 한다.

한평생을 농사일로 7남매를 키워내신 어머님, 이제 늙으막이 되어서도 누구 하나 확실히 믿을 만한 자식을 갖지 못한 어머님의 처지를 생각하면 가끔은 눈물이 난다.

화성누님이 떠나시면서 빛 바랜 사진을 두 장 주고 가셨다. 한 장은 내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에 둘째, 셋째 누님과 남동생이 함께 찍은 흑백 사진인데 내가 찍은 가장 오래된 사진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내 국민학교 졸업식에 부모님과 둘째누님, 그리고 남동생이 찍은 것인데 역시 칼라사진으로는 가장 오래된 나의 사진...

그 속에 아버님이 서 계셨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님은 일제시대에 서당에서 글을 가르치실만큼 나름대로 문리를 깨우치신 분이셨다. 동네에 중요한 계약서나 편지를 대필해 주시곤 하던 것을 기억하고 또 붓으로는 아니지만 가끔 펜으로 한문을 쓰시면 정말 멋진 필체를 보여주곤 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나 농사일에는 아무래도 서투셨던 모양으로 덕분에 어머님이 고생이 많으셨고, 본인의 뜻을 펼치지 못하는 점이 못내 가슴에 남아 결국 술로 세월을 보내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때 간경화로 돌아가셨다.

돌아가시는 당시에 아버님을 별로 살림에 보탬이 되지 못하시는 무능한 가장으로 여겼던 나는 그리 큰 슬픔을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내가 사회생활을 통하여 냉정한 맛을 몇 번 보고나서는 가끔은 아버님의 처지가 이해가 되곤 한다.

누나가 건네 준 사진은 내가 아버님과 찍은 유일한 사진이다. 20여년 만에 사진으로 뵈니 정말 가슴이 찡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가장으로서 힘든 역할을 소화해 내시다 결국은 이를 이기지 못한 채 어린 자식들을 남겨 놓고 세상을 떠야했을 때의 아버님의 심정은 어떠하셨을까하는 생각을 하니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사진을 스캔을 하였으나 품질이 별로다. 시간나면 돈을 좀 들여서라도 깨끗하게 스캔하여 두어야겠다. 설령 살아서는 같이 오손도손한 모습을 보이지는 못했지만 아버님은 하늘나라에서라도 나에게 열심히 살라고 힘을 실어주실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