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좀 더 즐겁게 읽기 - 최종규
▣ 최종규의 책읽기가 즐겁다 - 책을 좀 더 즐겁게 읽기
안녕하세요. ^^
오늘은 내용이 좀 깁니다. ^^
오는 주말에도 비가 온다고 하는데, 주말에 비온 횟수가 25번이나 된다고 합니다. 한 해의 절반이나 비와 함께 주말을 보냈다니...^^
<1>
모티머 J. 애들러가 쓴 <독서의 기술>(범우사, 1986)을 읽으면 '의욕적인 독자'가 되는 법이라는 대목을 만납니다. 이 대목에서 애들러는 "'행간을 읽을' 뿐만 아니라 '행간에 쓰는' 것을 권하고 싶다"고 말하며 "책이 정말로 독자의 것이 되는 것은 독자가 그 내용을 소화하여 자기의 피와 살로 만들었을 때"라고 힘줍니다.
…써넣기를 하는 독자에게는 앞표지의 면지가 매우 중요하다. 공을 들인 장서인을 누르기 위해서 이 자리를 잡아 두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경제적인 소유권을 나타내는 데 불과하다. 독자 자신의 생각을 기입하기 위해서 이 페이지를 잡아 두는 편이 낫다… <34쪽>
저는 읽는 책마다 책을 지저분하게 만듭니다. 그렇다고 때나 얼룩을 묻혀서 지저분하게 하지는 않아요. 다만 책을 읽을 때마다 한 손에는 언제나 볼펜을 들어요. 한 손에 든 볼펜으로 끊임없이 밑줄을 긋고 괄호를 치고 별표를 하고 빗금을 그리는 한편 빈자리 구석구석마다 온갖 생각과 이야기를 끄적입니다. 그래서 제가 읽은 책을 빌려가는 사람들은 "너무 정신 없어서 보기 힘들다"라고 말하기도 해요.
하도 그런 말을 자주 듣다 보니 책에 무엇인가를 적는 일을 '낙서'라고 생각했고 스스로도 책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책에 무엇인가를 적는 일이 책에 생채기를 내고 책에게 미안하기만 한 일은 아니지 않겠냐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내 것으로 삼는다는 건 '소유물'로서 내 것으로 삼기보다 '책에 담긴 줄거리'를 내 머리와 가슴으로 곰삭여서 담아 내고 읽어 내는 데 있다고 보았거든요. 그러던 가운데 만난 애들러의 이야기는 참 반가웠습니다. 좋은 동무를 만난 셈이랄까요. 애들러는 뒤이어 이렇게 말합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뒤표지의 면지에 자기를 위한 색인을 다 만들거든, 앞표지의 면지를 이용하여 그 책의 대요를 써 보는 것이다. 페이지를 따르거나 중점을 따라서가 아니라 기본적인 대요와 부분의 배열을 파악한 빈틈없는 구성으로 쓰는 것이다. 이것은 그 책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측정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장서인과 달라서 독자의 지적 소유권을 나타내는 것이다…<34쪽>
<2>
저는 <연려실기술>이라는 책을 좋아합니다. <연려실기술>은 처음 엮을 때부터 책에 빈자리를 많이 두었다고 해요. 역사는 늘 새로워지고 달라진다며, 뒷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빈자리에 새로운 사실을 적으라는 뜻에서 비워뒀다죠. 그래서 저는 제가 사서 읽는 책마다 '이 책은 또다른 <연려실기술>이다'고 생각해요. 책마다 빈자리가 많잖아요. 그 빈자리는 바로 우리들이 '그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고 얻는 이야기'뿐 아니라 나날이 새로워지고 발돋움하는 온갖 다른 이야기를 적으면서 책 고갱이를 더욱 살찌우고 꽃피우는 자리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책을 사면 맨 먼저 책 앞면지나 뒷면지에 책을 산 날짜와 산 곳을 적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그 적바림 밑에 '책을 사면서 든 생각이나 느낌'을 적어요. 때로는 '책을 사는 동안 이 책을 살피며 받은 느낌'을 적기도 하고요. 때로는 책을 산 날 있거나 일어났던 우리 사회 이야기를 적고요.
그 다음으로 책을 읽어나가는데, 때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처 읽고, 때로는 자리매김을 살피며 먼저 읽고픈 대목을 골라 읽습니다. 어쨌든 한 손에는 늘 볼펜을 들고요. 골라 읽기를 할 때는 골라 읽은 대목을 자리매김에 적습니다. 이때 '아주 좋았다'고 생각하면 별을 둘 그려요. '참 좋았다'고 생각하면 별을 하나 그려요. 그럭저럭 괜찮았으면 동그라미를 그립니다. 그냥저냥 읽긴 했지만 별로였으면 점을 찍습니다. 문제가 많다고 느끼면 빗금을 그리죠. '이건 영 아니군' 하는 생각이 들면 '가새'를 그립니다. 그리고 옆에 무엇 때문에 가새를 그렸는지 몇 줄 적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고갱이가 되는 대목이라고 생각하면 밑줄 긋기, 물결줄 긋기, 괄호 그리기, 칸 나누기, 동그라미 치기, 차례 매기기, 번호 붙이기… 들을 합니다. 언제 누구에게 배운 적은 없지만 그냥 제 나름대로 제 잣대를 세워서 해요. 그리고 별을 그리거나 가새를 그려서 '좋거나 나빴다'고 느낀 대목에서는 왜 그렇게 느꼈는지를 적어요.
이렇게 책에 무엇인가를 적으면 책을 읽는 빠르기는 더딥니다. 하지만 더딘 만큼 속 깊게 읽을 수 있어 좋아요. 그런데 모든 책을 이렇게 읽지는 않아요. 구태여 밑줄을 칠 쓸모도 없이 그냥 죽죽 읽어나갈 책도 있거든요. 밑줄까지 치면서 읽을 만한 책이라면 제 자신을 가꾸고 다지는 한편 갈고 닦도록 이끄는 '책 스승'이라고 생각합니다. '책 스승'이기 때문에 가멸차게 머리를 싸매면서 책을 지은이와 싸워요. 싸우는 한편 꼼꼼하게 이야기를 살피고 제 생각을 적고요.
이렇게 책을 한 권 읽고 나면 그 책 어디에 어떤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를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생각을 하는지, 지은이는 어떤 일을 어떻게 보고 있으나, 나는 다르게 보기도 하고 똑같이 보기도 한다는 걸 갈무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있어요. 이처럼 밑줄을 잔뜩 긋고 자기 생각을 적으면서 읽은 책은 그때 한 번 읽기로 그치지 않거든요. 나중에 또 읽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나중에 또 읽거나 다시 읽을 땐 생각이 좀 바뀌거나 거듭나거나 발돋움해요. 그래서 지난날 읽었을 때는 이 대목에서 왜 밑줄을 그었나 싶기도 하고, 그 자리에 다시 밑줄을 긋기도 합니다. 지난날 했던 생각을 읽으며 그땐 이것밖에 생각을 못했네 하는 아쉬움을 삼키면서 새로운 생각을 써넣기도 해요. 지난날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적기도 하지만, 지난날에는 이렇게까지 생각했는데 지금은 왜 아무 생각도 못 하느냐고 스스로를 꾸짖기도 하고요.
<3>
(ㄱ) 책은 소유물이다.(소장 값어치가 있는 물건이다)
(ㄴ) 책은 스승이다.
(ㄷ) 책은 의사소통을 하는 길이다.
(ㄹ) 책은 배우는 밭이다.(내가 모르는 것을 하나하나 살피어 배운다)
'읽을거리'로서 책도 있어요. 그런데 책은 이렇게도 살필 수 있지 싶어요. '소유물'로 볼 수 있고 '책 스승'으로 삼을 수도 있으며 책을 지은 사람과 읽는 사람이 서로 생각과 느낌을 주고받는 길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어요. 더불어 무언가를 배우는 터전으로 삼을 수도 있겠죠.
책을 소유물로만 삼는다면 책에 낙관 하나 찍으면 그만이라고도 말할 수 있어요. 그런 낙관이 없으면 다른 사람이 몰래 가져가서 자기 것으로 삼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책을 스승으로 삼거나 배우는 터전으로 헤아린다면 좀 달라질 수 있어요. 적극성을 띠고 나서서 부딪치니까요.
책을 깨끗하게 읽는 일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 읽고 말 책이라면, 그냥 한 번 읽으면 넉넉한 책이라면 깨끗하게 읽고 그대로 두는 편이 좋아요. 그래서 이렇게 읽어낸 책을 모아서 헌책방에 내놓거나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는 편이 좋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든 헌책방에 내놓든 어떤 책을 읽으며 어떤 대목에서 어떻게 느꼈다고 가만히 적어 두는 일도 즐거우리라 생각해요.
그래서 '책을 지은 사람'과 '그 책을 사서 읽은 사람'과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길이 되는 단계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책을 앞서 읽은 사람'과 '책을 뒤서 읽은 사람'이 생각을 나누는 길로도 나아가면 좋겠다 싶어요. 그리고 '책을 뒤서 읽은 사람'도 "난 이렇게 생각한답니다"하고 적어둔다면 그 책을 '세 번째로 읽을 사람'은 또 다른 느낌을 얻을 수 있고, 세 번째 사람도 또 무언가를 남긴다면 네 번째로 읽을 사람도 또 다른 느낌을 받으면서 적을 수 있겠죠.
책 하나를 놓고서 이렇게 차근차근 이야기를 이어가고 깊이깊이 다져나가는 일도 책을 만나고 읽고 나누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오마이뉴스 최종규 기자)
최종규 기자는 우리말, 헌책방, 책 문화운동을 하며 여러가지 소식지를 내고 있으며 지금은 국어사전 엮는 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1998년에 가장 어린 나이로 한글학회가 주는 한글공로상을 받았습니다.(http://hbooks.cy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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