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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독서생활

<죽음의 수용소에서> / 빅터 프랭클 지음

by 무딘펜 2024. 3. 30.

내가 부정적인 사람으로 비칠까 봐 우려되기는 하지만 솔직히 왜 이 책을 여러 사람들이 극찬하는지를 잘 모르겠다.

 

1.

왜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호평을 할까? 아마도 책 내용이 아니라 이 책이 상징하는 바가 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즉 책을 잘 썼다기 보다는 책의 전체적인 주제가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만큼 훌륭하고, 비참한 경험을 한 저자가 이런 주제에 대하여 책을 썼다는 사실에 마음이 움직이고, 여러 사람들이 좋은 평가를 내리니 좋은 인상을 가지고 책을 읽게 되지 않았을까?

 

2. 

이 책의 2, 3장에 나오는 로고테라피에 대한 내용은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는다.

 

3. 

강제 수용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우리는 왠지 모를 죄책감에 젖어 들게 된다. 인간에 대한 극한적인 탄압을 한 것은 나치이지만, 같은 인간으로서 유대인들에게 그처럼 모진 상처를 준 것에 대하여 나도 왠지 모를 미안한 감정이 든다는 것이다. 

그런 감정에 빠지지 말고 조금만 냉정하게 돌아보자. 인간을 이처럼 탄압한 사례는 역사에 수없이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세 가지만 들어보자.

첫째는 현재 세계의 최강국으로 군림하는 미국에서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악행에 버금가는 두 차례의 사건이 있었다. 우선 유럽인들이 아메리카에 정착하기 시작했을 때 원주민에 대한 탄압이다. 지금은 옛날 얘기가 되어 가끔 우리의 흥미거리로 전락했지만, 실제 그 땅을 정복하기 위한 유럽인들의 무자비함은 여러 역사책에서 다루고 있다. 

두번째 탄압은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팔려가서 흑인노예들이 그 주인공이다. 그들은 아예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하였고, 물건으로 취급되어 거래되었다. 생사여탈권은 주인에게 있었다. 2차 대전시의 유대인들과 비교하여 누가 더 가혹했을지에 대해 확언할 수 없다.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는 흑인노예들의 참상에 대하여 충분한 이해를 하면서도 실제로 그들의 참상보다는 그들을 해방한 링컨의 결단에 더 환호한다는 점이다. 

세번째는 아우슈비츠의 비극과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일본의 조선인들에 대한 탄압이다. 아직도 위안부 문제와 군함도의 비극은 끝나지 않은 역사이다. 그 피해자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