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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의 살던 고향은

080922 한편의 대하드라마를 연출했던 전쟁놀이

by 무딘펜 2008. 9. 22.

 예나 지금이나 남자들은 승부에 민감하다. 나 역시도 어릴 적부터 승부가 걸린 일이라면 이겨서 손해를 보는 일이라 할지라도 남에게 지기 싫어서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들어 끝장을 보고 나서야 직성이 풀리는 점은 어른이 된 지금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나 어릴 적에는 함께 어울려서 정답게 노는 일은 가시나들이나 하는 일이고 남자애들은 무조건 몸으로 뛰고 부딪쳐서 상대를 제압해야 승부가 끝나는 놀이에 열중했다. 더구나 온 들판이 놀이터인 시절이었으니 지금 애들이 골목이나 놀이터에서 깨작대는 것과는 스케일이 다른 한판의 승부였던 셈인데, 가장 우리들이 좋아하고 흠뻑 빠졌던 것이 - 어찌보면 끔찍한 어감을 가졌지만 - 전쟁놀이였다.

  전쟁놀이도 시대에 따라 많이 그 방법이 달랐는데, 주로 TV 연속극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먼저 내가 아주 어린 시절에는 전통적인 전쟁방법인 칼과 창, 그리고 화살로 싸우는 방식이 유행했었다. 아마도 당시의 인기사극인 '김유신 장군'이나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봉수대를 지키는 충직한 인물로 박근형씨가 열연했던 '에루야'의 영향이 있지 않았나 싶다.

  • 에루야는 1974.08.12~1974.12.06사이에 방송된 이철향 극본, 이동희 연출의 사극으로 신구,주현,박근형,이효춘,남능미,백일섭,안병경,태현실,오현경씨 등이 출연했는데, 병자호란 후의 시대를 배경으로 봉화수인 에루야의 인물과 사랑을 그린 사극이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주제가 앞부분으로서 "에루야, 에루야, 에루 에루야!"로 시작되었다.

  나무 막대기를 서로 길이를 정하여 자른 후 하나씩 둘러 메고는 적군과 만나면 일합을 겨루는 형태로 전쟁이 진행되었는데, TV에서 하듯이 서로 칼을 부딪치며 싸우다 상대의 몸에 내 칼이 먼저 닿으면 이기는 방식이었다. 물론 짐작하듯이 승부가 눈으로 금방 식별될 만큼 확실한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칼싸움 반, 말싸움 반으로 진행되기 일쑤였다.

  재미있는 점은 서로 편을 가른 후에 팀의 이름을 지어야 하는데, 예를 들면 한쪽이 신라군이면 한쪽은 백제군, 한 편이 청나라면 한쪽은 조선이 되는 식이었다. 이 가운데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패망하는 나라의 군대인 백제군이 아닌 통일을 이루는 신라군, 또는 비겁한 청나라보다 용감한 조선의 군대가 되고 싶어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떻게 편을 정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이길 확율이 높은 팀이 '좋은 편'이 되는 것으로 결판이 나지 않았나 싶다. 승부의 결과도 대부분 신라군이나 조선의 승리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걸 생각해 보면 어쩌면 우리는 승부를 가리려는 것보다 한편의 대하드라마를 연출하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싸움의 수단은 주로 칼이었는데 뾰족한 창으로 찌르거나 화살을 쏘며 싸우다가는 부상을 당할 염려가 높다는 점을 그 어린시절에도 이미 깨닫고 있었기 때문일까? 하여튼 처음에는 아무 곳에나 널리 막대기를 가지고 놀았지만 점점 더 전쟁놀이가 열기를 더하면서 나무를 깎아서 그럴듯한 칼 모양을 만들어서 차고 나오면 싸움실력과 상관없이 장군이 되기도 했기 때문에 형이나 아버지를 졸라서 나무칼과 칼집을 마련하기도 했다.

  국민학교 3학년 무렵부터 우리의 전쟁놀이 양상은 변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 가장 인기가 높았던 주말연속극 '전우'의 영향때문이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나시찬씨가 소대장으로 나와서 멋진 손동작으로 소대원들을 지휘하였는데, 6.25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여러 작전들을 극화함으로써 군의 사기를 높이고 국민의 반공의식을 고취시킨 보기드문 성공작이었다. 이 드라마에 우리 고향의 순직경찰관들인 '8용사' - 지금은 몇 명이 더 추가되어 13용사로 불리며, 밤재 고갯길 어귀에 추모관이 건립되어 있다. - 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던 점이 기억된다.

  • 전우는 1975.06.29~1977까지 방영된 주말연속극으로 김홍종,장형일,이동희,주일청씨 등이 릴레이로 연출을 맡았고, 이상현,김정환,이철향 등이 극본을 만들었으며, 우리들의 영원한 소대장 나시찬씨가 주연을 맡았으며, 6·25 전쟁에서 찬란한 승리를 거둔 작전들을 극화함으로써 군의 사기를 높이고 국민의 반공 의식을 고취시킨 반공드라마이다. 이후 1983년도에 이어서 후속편이 제작되었으나 전작의 인기를 뛰어넘지는 못했다.

    전우2.jpg 전우1.jpg

         [1983년도에 방영된 전우의 한 장면]

   하여튼 이 드라마의 영향은 어린 시절 우리들의 화제를 싹 바꿈과 동시에 전쟁놀이에 드디어 현대식 무기들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역시 시작은 막대기 하나를 들고 입으로 '빵야 빵야'를 외치다가 내가 먼저 쐈느냐로 입씨름을 하던 수준에서 점점 발전하여 각목을 깎아서 그럴 듯한 총모양을 만들고, 총알대신 꿀밤이나 솔방울이라도 던져서 상대를 맞추는 단계로까지 발전을 하였다.

   이러한 현대전의 양상은 전쟁놀이를 들판에서의 격돌에서 산 위로 놀이장소를 옮기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며, 전쟁터는 더욱 넓어져서 이제는 양쪽 산위에 나뭇가지와 칡덩쿨로 그럴 듯한 초가를 지어놓고 소위 '본부'라고 부르면서 이것이 침탈당하면 전투에서 지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전쟁놀이의 양상을 변하였지만 여전히 변함이 없는 것은 마구잡이로 싸워서 승패를 가르는 것보다 뭔가 스토리가 있는 놀이를 즐겼다는 점인데, 예를 들면 우리 편의 누군가가 납치되어 고문을 당하고 있는 상황을 상정하고 이를 어떻게 구출하는가 하는 얘기를 상호 공유한 가운데 놀이가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 스토리 라인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경우에는 승부와 관련이 없이 호된 질책과 야유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결국 우리 어린 시절의 전쟁놀이는 단순한 싸움의 모습이 아니라 아름답고 감동적인 대하드라마에 필적하는 한편의 연극이었던 셈이다. /끝.

  *드라마에 대한 정보 출처 : http://suwoncenter.kbs.co.kr/drama/ds_detail.html?seq_no=105&current_page=1&section=subject&key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