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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의 살던 고향은

081006 댑싸리비와 몽당빗자루

by 무딘펜 2008. 10. 6.
며칠 전 청계산을 다녀오다가 우연히 어느 집 담장 옆에 가지런히 가꾸어져 있는 댑싸리
를 보았다. 여름이 가고 초가을이건만 아직도 뽐내는 그 싱싱함이라니! 그 초록빛깔과 바람에 살랑이는 모습을 보니 눈과 마음까지도 시원해졌다.

나 어릴 적 시골집들을 보면 집집마다 뒤뜰이나 길 옆의 빈터에 댑싸리를 줄지어 심어 놓곤 했다. 이 댑싸리란 놈은 밑둥치에서부터 잘게 잘게 수많은 가지를 쳐 나가는데 그물코가 무색할만큼 촘촘하다. 더구나 자라는 속도가 놀랍도록 빨라서 아침에 보고나서 학교갔다 오면 어느새 커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가지가 워낙 촘촘한지라 그 아래는 정말 시원한 그늘이 지는데 그래서 생긴 속담이 '댑싸리 밑의 개팔자'라는 말로 시원한 여름철에 잎이 무성한 댑싸리 나무 아래서 꾸벅꾸벅 오수를 즐기시는 개를 생각하면 속담의 뜻은 금방 이해가 가리라.

특히 이 댑싸리 줄기 속에는 단단한 심이 박혀 있어 여간 질기지가 않다. 그래서 가을 무렵에 잎이 노란 빛깔로 적당히 시들면 목낫으로 써억 베어내어서 말린 다음에 붙어 있는 잎이랑 씨를 털어내고는 몇 개를 칡넝쿨로 듬성듬성 묶으면 결이 고운 마당비가 된다.

가을이면 떨어진 낙엽이랑 가랑잎을 쓸어서 뒷곁에서 태우거나 겨울이면 하얗게 내린 흰눈을 쓸어내는 몫은 이 댑싸리로 만든 마당비의 전담역할이었다.

물론 산에서 잘 자라는 싸리나무도 베어서 말린 다음에 여러 개의 가지를 묶으면 역시 마당비가 된다. 그러나 싸리비는 가지가 듬성듬성하고 결이 굵어서 마당을 쓸면 흙이 파이기 일쑤이기 때문에 시골에서는 주로 이 댑싸리로 만든 빗자루를 제대로 된 마당비로 인정을 하고 집집마다 가을이면 댑싸리비를 만들어 두고 일년 내내 사용하곤 했다. (물론 이 빗자루가 가끔은 지게 작대기와 함께 교육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했지만...ㅋㅋㅋ)

댑싸리로 만든 마당비와 달리 방안을 청소하는 빗자루는 수수대로 만들었다. 수수알을 깨끗이 털어낸 수수의 대궁이부분을 철사로 듬성듬성하게 묶고 그 아래 가는 줄기부분을 나이론 끈으로 촘촘하게 엮으면 훌륭한 방비가 된다.

그런데 이 수수빗자루의 쓰임은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처음에는 방을 청소하는 용도로 사용하지만 내 머리카락처럼 듬성듬성 빠지고 닳게 되면 다음은 봉당을 쓰는 용도로 추락한다. 그래도 이정도는 괜찮다. 거의 키가 반토막이 된 몽당빗자루가 되면 이제부터는 부엌으로 작업장소가 이동된다. 주로 아궁이 앞의 재를 쓸어 담는 용도로 사용이 된다. 가끔씩 남아 있는 불씨에 이쪽저쪽 상처를 입기도 하고, 이리저리 채여 천덕꾸러기 신세로 세월이 가면 어느날...

그 몽당빗자루는 드디어 빗자루로서의 쓰임새를 다하고 아궁이 속으로 들어가서 고단한
생애를 마치게 된다. 수명이 일년이나 될까? 하여튼 처음에는 맛있고 빛깔고운 수수를 머리가득 이고 있던 수수대는 가족들의 오손도손 생활하는 안방을 쓸다가, 다음은 우락부락 가끔 발냄새도 지독한 머슴방을 쓸 때까지도 방비로 구실을 한다. 그러다가 종내는 개구장이가 신발 가득 달고온 봉당의 진흙을 쓸어내는 데 사용되면 이제는 실내임무를 마치고 바깥임무를 수행하게 되는데 이러다 보면 결국은 마지막 임무인 부엌데기로 전락하여 결국 땔감으로 소용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요즘이야 마당을 쓰는 비건 방안을 청소하는 비건 간에 대부분 뻣뻣한 프라스틱제품이 대종이지만 그 어린시절에 낙엽과 눈을 쓸거나 방안의 티끌 하나까지도 끌어안던 그 빗자루들을 왠지 다시 써보고 싶다. 그리고 부엌구석에 세워두었던 몽당빗자루를 들어 엉덩이를 아프지 않게 찰싹 때리는 것으로 끝나던 어머님의 잔소리도 그리워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