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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생각 짧은 글/3. 나의 살던 고향은

국민학교 - 12. 채변봉투

by 무딘펜 bluntpen 2008. 9. 3.

  다음 얘기는...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이것저것 가져오라는 것도 많았었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채변 봉투지. 편지봉투 반정도 크기의 하얀색 봉투 안에 투명한 비밀봉지가 들어 있었는데 주의사항에 보면 밤톨만큼 변을 떼어서 넣으라고 되어 있었지.

  아마도 주의사항을 쓴 분은 토종밤을 생각하셔서 엄지 손톱만한 정도를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 당시에 집에 밤나무를 가꾸었기에 손바닥 반만큼이나 큰 신종 밤을 항상 보고 자란 내 경험으로는 그 정도 큰 덩이를 집어넣으면 나중에 불러 지져서 봉해야할 입구가 터질 것 같아 걱정했던 적도 있었단다.(다행히 누나들이 적당한 양을 가르쳐 주어 고민은 해결을 했지만...)

  아마 우리 친구들 중에는 자기 똥도 아니고 남의 똥이나 심지어는 개똥을 넣은 녀석들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하여튼 채변봉투를 책갈피에 넣어서 학교에 가지고 가면 책 사이에 눌려서 누런 색이  새어나온 적도 있었단다.

  채변봉투를 제출하고 한 달 정도 지나면 그 결과가 나오고 그 결과에 따라서 회충약이 주어졌었지. 선생님께서 호명하는 대로 나와서는 흰색 회충약을 몇 알씩 물고는 커다란 선학표 양은 주전자에 든 물을 사기로 만든 갈색 컵(그 때는 학교의 컵이 왜 전부 그 색깔이었을까?)에 한 컵 가득 따라서는 물먹은 병아리마냥 목을 뒤로 제키고는 얼굴을 찌푸리며 억지로 삼키곤 했지.

  하루 이틀 뒤에 회충약의 효과가 나타나는데 길이가 20센티미터 쯤은 되는 꼭 지렁이처럼 생긴 하얀 회충이... 그 다음은 얘기를 생략하는 것이 서로의 품위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다음으로 생각나는 것은 오른쪽 가슴에 리본을 달고 오는 일인데, 주로 흰색 헝겊을 직사각형으로 오려서는 끝을 갈래지게 가위로 손질하고 불조심이나 쥐를 잡자와 같은 글씨를 써서 달고 다녔지.

  불조심은 논외로 하고 문제는 이 쥐를 잡자인데, 우리 어릴 때는 참 쥐가 많았지. 허술하게 지은 벽돌집의 천정 위는 온통 쥐들의 운동장이며, 화장실 역할을 해서 집집마다 천정이 쥐오줌으로 누렇게 변해 있곤 했어.

  더구나 밤이 되어 호롱불을 끄고 나면 어떤 대담한 놈들은 벽을 타거나 방구들 사이의 뚫린 구멍을 통하여 들어와서는 사람들이 자는 따뜻한 아랫목 쪽으로 내려오기도 했었지.

  거기다 집 뒤안 쪽으로 돌아가보면 꼭 쥐구멍이 서너 개씩 나 있어서 쥐덫을 놓거나 면사무소에서 나눠준 쥐약을 놓고는 했지. 그리고 그렇게 잡은 쥐는 꼬리를 잘라서 학교에다 제출하게 하라고 하기도 했지.

  쥐약에 대한 가슴 아픈 추억이 한 가지 있다. 한번은 별방 근처에 사시는 작은 고모님 댁에서 귀여운 강아지를 한 마리 보내준 적이 있었다. 태어난 지 두세 달 밖에 되지 않은 정말 초롱초롱한 놈이었는데 어느 날 밤에 나혼자 집을 지키고 있는데 이 놈이 몹시 낑낑거리는 거야.

  알고 봤더니 마루 밑에 놓인 쥐약을 시식하고는 죽어가고 있는 것이었어. 어른들도 아무도 안계시고 나 혼자 이 강아지를 살려 보겠다고 소금물을 타서는 강제로 먹이기도 하고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토해 내려고도 해보며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은 축 늘어져 죽고 말았지.

  그 강아지 사건이 있은 이후로는 나는 더 이상 그런 종류의 가슴 아픈 일을 피하기 위해 집에서 짐승을 키우는 일을 포기했단다.

  하긴 쥐약은 가끔씩 삶에 지친 사람들이 인생을 종치는 용도로도 사용하곤 했으니 그 당시 우리네 농촌살림의 궁핍함이 아직도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학교에 제출해야 할 또 다른 일들은 절약미라는 것으로 주기별로 편지봉투에 하나씩 내는 일이었었지. 그것이 불우이웃 돕기 용도로 쓰였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가끔씩 새벽에 어머님이 쌀독의 바닥을 긁는 소리를 듣곤 하던 내 입장에서는 한 봉투나마 그리 마음 편히 내지는 못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외에도 갈탄을 난로의 연료로 사용할 때는 불을 붙이는 용도로 집에서 장작개비를 다섯 개씩 가져오라고 한다거나, 잔디씨 또는 회양목 씨를 채취하여 편지봉투로 반봉투씩 제출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