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 생각 짧은 글210 국민학교 - 9. 동네 축제, 학교 운동회 누구나 그렇겠지만 국민학교 때 추억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운동회와 소풍이겠지. 운동회는 봄과 가을에 두 번 있었다. 먼저 가을 운동회부터 얘기 해보자. 가을 운동회는 보통 벼가 누렇게 익어가기 시작할 시기인 추석 무렵에 열렸는데 한달 전부터 운동회 준비를 했었지. 시골에서의 운동회는 사실 마을 축제에 가까웠으니 온 동네 사람들을 초청해서 학생들의 기량을 보여주려는 학교의 욕심도 있었을거야. 연습은 주로 저학년은 무용이고 고학년은 덤블링을 중심으로 했는데 정말 덤블링 연습은 힘이 들었다. 무용을 연습할 때면 잘하는 애들 두 사람이 교단에 올라가 시범을 보이고 여선생님의 지휘 하에 연습을 하고 했는데 그 때 위에 올라가 시범을 보이던 사람 중에 우리 한해 선배인 박기영(나중에 중학교는 같이 다녔지.)과.. 2008. 9. 3. 국민학교 - 8. 학과공부 이외에 특별한 그 무엇을 배우는 특활시간 이 비슷하게 영어약자로 표시되는 시간이 CA시간이었는데 목요일인가 금요일 맨 마지막 시간에 취미생활에 따른 특별활동을 하는 시간이었는데 아마 Club Activity를 의미하였던 것 같다. 이 시간에는 각자 자기의 취미생활에 따라 학년 구분이 없이 다른 교실로 가서 활동을 하였는데 나는 주로 독서반이었고 서예반, 음악반, 미술반, 체육반 등이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3학년 때였던가 독서반이 자유교양이라는 이름으로 독서결과를 가지고 군 대회에 출전하는 일이 있었다. 그 때 지도선생님이 지상희 선생님이라고 남자선생님이셨고 그 때 읽은 책이 ‘한국의 전래동화’와 ‘공룡의 세계’라는 두 가지 책이었는데 그 당시 책읽기를 좋아하던 나는 그 책들을 달달 외우다시피 했는데도 불구하고 실제 대회에 나가 보니까 ‘알프스.. 2008. 9. 3. 국민학교 - 7. 학급회의와 임원활동 휴가 중이라 여유가 있구만. 낮에는 처제가 지난 주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입원 중이라 옥천에 있는 처가에 다녀왔다. 기차를 타고 오가면서 잠을 많이 잤더니만 별로 피곤하지 않구만... 그래서 오늘은 한 편을 더 써 보고자 한다. 정규 교과목 이외의 수업시간이 배정되는 경우는 HR과 CA시간이라는 것이 있었지. HR은 그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금 찾아보니 아마 Home Rule, 즉 학급자치활동을 의미하는 것이었던가 보다. 즉 학급회의를 하는 시간이었지. 그 시간이 되면 반장이 앞에 나와 사회를 보고 서기가 토론 내용을 칠판을 정리하였는데 나는 그 시간이 정말 싫더라. 왜냐하면 나도 누구 앞에 나서는 것을 무척 싫어 했었기 때문이야. 1학년 때 반장이 누구였더라? 한희복이었나 아니면 이우기였었나? 정확히 기억.. 2008. 9. 3. 국민학교 - 6.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의 대부분은 국민학교에서 배웠다. 요즈음은 교과목 이름이 바뀌었더라면 우리가 다닐 때는 국어, 산수, 사회, 자연, 국사, 바른생활, 음악, 미술, 체육이 있었고 5학년 이후엔가는 실과라는 과목이 있었지. 학기 초가 되면 각 과목별로 새 교과서를 받아오면 누나들이 헌 달력이나 밀가루포대로 정성스레 책 커버를 싸주던 일이 생각난다. 물론 두세 달만 지나면 도시락에서 새어나온 반찬국물에 찌들어 얼룩얼룩 해지거나 책보에 아무렇게나 싸가지고 다니는 바람에 커버는 물론 책장까지도 너덜너덜해지곤 했지. 하여튼 ‘철수’와 ‘영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국어과목은 공책이 다른 과목과 달리 특이했지. 원고지와 비슷하게 네모칸이 죽 처져 있는 것이었는데 거기에 삐뚤빼뚤 글씨연습을 하던 때가 생각난다. 국어과목은 조기교육이 없던 우리 어린 시절에는 몇몇 친.. 2008. 9. 2. 국민학교 - 5. 우리의 추억은 난로가에서 피어난다. 나 지금 휴가 중이다. 3일 연휴....부럽지!!! 집에서 푹 쉬면서 어린시절의 추억에 대해 정리를 해 보았다. 그 중에서 오늘은 난로에 대하여 얘기해 보자꾸나... 우리의 많은 추억들은 따뜻한 난로가를 중심으로 피어난다. 그 당시의 겨울은 왜 그리도 바람도 차고 추웠던지. 겨울철이면 대부분 손이 터서 쩍쩍 갈라지곤 했기에 안티푸라민이라는 투명하고 끈적거리는 약을 손에 바르고 다녔는데 파스냄새랑 비슷했던 그 냄새가 교실을 진동하곤 했었지. 그리고 겨울철 등교복장은 거의 완전무장수준이었어. 내복착용은 물론이고 커다란 빵모자 속에 토끼털이 속에 든 검정색 프라스틱 귀마개를 착용하고, 또 양쪽이 끈으로 연결된 두터운 벙어리 장갑을 끼는 것은 기본 복장이었고, 그 외에도 토끼털 목도리나 하얀색 파카를 입은 경우.. 2008. 9. 2. 국민학교 - 4. 몽당연필의 추억 요즘 애들이나 샤프펜슬을 쓰지만 우리는 대부분 - 아니 100% 연필을 썼잖니? 그 중에서 고급은 향나무로 만들어서 깎이기도 잘 깎이고 냄새도 좋았는데 어떤 연필은 정말 박달나무로 만들었나 봐. 연필심도 잘 부러지고 왜 그리 깎기가 힘든지... 그리고 쓰다가 쓰다가 짧아져서 몽당연필이 되면 볼펜 껍질(그것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에 끼워서 썼던 기억이 난다. 볼펜 껍질에 끼울 때 양쪽이 거의 굵기가 비슷하기 때문에 그냥 들어가지는 않는다. 그래서 연필 대가리부분을 깎아서 끼워넣거나 아니면 볼펜껍질을 불에 데워서 노골노골해졌을 때 힘을 주어 끼워넣곤 했는데, 내가 이걸 기억하는 이유는 볼펜껍질을 불에 넣었을 때 그 매캐한 냄새 때문이다. 기억이 안나면 한번 시도해 보렴. 그런데 그 때 .. 2008. 9. 2. 국민학교 - 3. 학교 주변의 풍경들 지난 번에는 학교 풍경을 주로 얘기를 했는데 이번에는 그 주변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 지금 생각해 보니까 예전에 우리가 입학하던 당시에는 교문이 두 개였었다. 지금 남아있는 교문 이외에도 남국이네 집 방향으로도 교문이 하나 있었지. 그 옆에 상당히 큰 버드나무가 한 그루 있었고 그 것을 벗어나면 학교 운동장을 둘러서 조그만 개울물이 쫄쫄 흐르고 있었다. 교문 바깥으로 해서 올라가면 남국이네 집이 나왔는데 남국이네 이사오기 전에는 그 집에서 구멍가게를 했었지. 남국이네 집을 지나서 더 올라가 보자. 주로 기억나는 것이 가게들인데 당시에는 영남이로 불리던 용님이네 집을 오른쪽으로 두고 지나치면 왼편으로 담배를 팔던 남국이네 친척집이 있었고 거기를 바로 지나면 나오는 김태규 선생님 댁 가게에서는 잡화류와 함께.. 2008. 9. 2. 국민학교 - 2.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는... 동네서 제일 큰 집 지난번 동창회 때 가보니 운동장이 정말 좁아 보이더라만 그 시절에는 정말 세상을 품을 만큼 넓었다. 주변으로는 측백나무로 둘러져 있었고 군데군데 플라타너스나 버드나무가 서 있었다. 양쪽으로는 축구골대가 세워져 있었고, 한 쪽 옆에는 골대가 빨간색과 흰색으로 번갈아 칠해진 핸드볼 골대가 있었다. 교문 우측으로는 탈 때마다 삑삑 소리를 내는 쇠줄로 된 그네가 매달려 있었고, 그 옆에는 반질반질하게 닳은 미끄럼틀과 시이소오가 놓여 있었다. 교문 왼쪽으로는 이름은 잘 모르겠는데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쇠봉으로 되어 있는 놀이기구가 있었고 그 옆에 철봉과 평행봉이 세워져 있었는데 철봉 앞에는 모래판이 있어서 가끔 그곳에서 씨름을 하기도 했다. 거기서 조금 건물 쪽으로 조금 더 가면 배구장이 있었는데, 해마다 여름철.. 2008. 9. 2. 국민학교 - 1. 코흘리개, 학생이 되다.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나의 경우도 국민학교 입학하고서부터가 내 대부분 기억의 출발점이다. 그 이전에 기억도 몇 가지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시점이 불분명하고 몽롱하기 이를 데 없다. 나는 1965년도에 단양군 영춘면 용진리 1반인 진커리라는 동네에서 7남매 중에 다섯째로 태어났다. 맨 위로는 큰 누나가 있고 그 다음이 나랑 10살차이가 나는 형과 바로 위로 누나 둘, 그리고 남동생과 여동생이 있다. 내가 태어나던 당시에 집안사정은 상당히 어려웠던 것 같다. 아버지는 아편과 술에 탐닉하셨다고 하는데 집에 붙어 계시질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는 어린 나를 떼어놓고서 아버지를 찾으러 바깥을 많이 돌아 다니셨단다. 그 바람에 어린시절의 나는 영양상태가 좋지 않아서 매우 허약했는데 지금이야 그런 얘기를.. 2008. 8. 5. 초등카페 - 070720 나는 배부른 돼지가 되고 싶다. 나는 배부른 돼지가 되고 싶다. 원본 : 초등카페 http://cafe.daum.net/mydongdae21/xx4/64 우리는 누구나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개인적인 고민에서부터 가족관계, 직장관계, 나아가 국가와 인류의 운명에 대한 거창한 고민을 하기도 한다. 가끔씩 고민에 빠져서 허우적대다 보면 차라리 생각하는 소크라테스보다 배부른 돼지로 남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이 나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기보다는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때로는 불행하다고 느끼게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긴 누구라도 제각각 몇 가지씩의 고민들을 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겠지. 고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삶이 고달프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다음 말이 도움이 될 지 모르겠다. 우리가 하는 고민 .. 2007. 7. 20. 이전 1 ··· 8 9 10 1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