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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수의 일상사

무궁화호, 그 늠름한 노장군의 위엄.

by 무딘펜 2017. 2. 4.

설날 찾아뵙지 못한 장인장모님께 인사드리기 위해 처와 작은 딸아이를 데리고 처가가 있는 옥천으로 간다.

집 근처의 안양역에서 전철을 타고 수원역으로 가서 그 곳에서 무궁화호 열차로 갈아탔다. KTX가 쌩쌩 달리는 경부선이지만 옥천은 그 중에서 작은 역이라 정차하는 열차가 많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무궁화호를 예매했다.


10 여 분을 기다리니 멀리서 기적소리 한번, 그리고 귀와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굉음을 울리며 육중한 무궁화호 열차가 플래폼으로 들어왔다. 하늘을 날아갈 듯 가벼운 색깔과 날렵한 몸매의 KTX에 비하여, 원색에 가까운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치장하고 다소 뭉툭해 보이는 외관이지만 마치 철로의 지배자처럼 당당한 위용과 묵직한 소리를 내며 플래폼을 들어오는 모습은 감히 KTX 따위가 비할 바가 아니다. 무궁화호, 얼마나 오랫동안 나의 바랜 기억 속으로만 달리던 열차이었던가?

내가 처음 기차라는 걸 타 본 것은 국민학교 5학년 무렵이었건 걸로 기억된다. 충북 도내 벽지국민학교 학생들끼리 겨루는 무슨 경진대회엔가 참석하기 위해 선생님의 인솔을 받아 제천에서 기차를 타고 청주까지 갔다.

당시에는 기차가 3등급이 있었는데 가장 좋은 것이 무궁화호였고, 그 다음이 통일호, 그리고 요샛말로 가장 후진 것이 비둘기호였다.

당시에는 사람이 움직이는 일이란 당연히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튼튼한 다리를 이용하는 것을 기본으로 알았다. 아이들도 2~3Km 떨어진 학교 가는 길에 두발의 수고로움에 의지하지 않고도 편히 갈 수 있는 소가 끄는 구루마를 얻어타면 횡재한 듯이 기분 좋아했다. 이런 산골에서 저절로 굴러가는 경운기의 출현은 커다란 사건으로 받아들여지던 시절이었다.

그랬기에 일년에 한 두번 군청이 있는 단양읍내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는 날 아침은 정말 설레는 아침이곤 했었다.

그런 촌놈에게 버스가 몇 대나 연결된 규모의 커다란 기차라는 물건은 책에서나 대할 수 있었던 대단히 신기한 문명의 이기였다. 크기 뿐만 아니라 출발 전에 울리는 먼 원시의 괴물의 울부짖음처럼 들리던 기적소리며, 쇠로 만든 바퀴가 쇠로 만든 길 위를 굴러 간다는 게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비둘기호의 내부는 오늘날 지하철처럼 의자가 창문과 나란히 옆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특히 충북선을 달리던 비둘기호는 대부분 너무 낡아서 의자의 천이 군데군데 뜯어지고, 이상스런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그런 추레함도 생애 처음으로 기차를 타보는 산골 촌놈의 설레는 기분을 망칠 수는 없었다.

새벽밥을 먹고 30리 넘는 고갯길을 걸어와서 3시간동안 덜컹거리는 버스에 시달린 후 지칠 만도 했지만 제천에서 청주에 가는 내내 지나가는 풍경이랑 역이름을 외우는 일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 학교로 돌아가서 친구들에게 자세하게 자랑하며 뻐겨줄 생각이었다.

대학을 청주로 가면서 자주 기차를 이용하게 되고 자연히 기차를 자주 이용하였지만 주로 지둘기와 통일호였고, 학생들에게 비싼 무궁화호는 왠만해서는 타기 어려운, 그래서 일종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기차 시간에 쫓겨 할 수 없이,  한 두번 탔던 기억 밖에는 없다.내 수준에 넘치는 사치스런 탈거리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 각인되었던 것 같다.

세월이 흘러 당시의 엄청난 속도의 경제발전을 상징하는 새마을호라는 빠른 기차가 다니게 되었고, 이제는 KTX라는 우리나라 지상에서 가장 빠른 기차도 생겼다.

그리고 ITX니 산천이니 하여 어느덧 무궁화호가 기차 중에 가장 싸고 느린 열차가 되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무궁화호는 내 기억속에서 호화롭고 돈 좀 들여야 탈 수 있는 열차로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오늘 오랫만에 타보는 무궁화호 열차가 한 두번 밖에 말 걸어보지 못하고 오랫동안 짝사랑하던 소녀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다.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경부선 무궁화호 열차의 늠름한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