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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의 살던 고향은

081121 순해네 집앞의 연못

by 무딘펜 2008. 11. 21.

직장동료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우연히 건물 몇 층에서 떨어지면 사망할까 하는 황당한 소재가 나왔다. 4층이니 5층이니 별 쓰잘데 없는 얘기를 나누는 중에 갑자기 어린시절에 순해네 연못의 빨래터 옆 버드나무 위에서 떨어져서 죽을 뻔 했던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순해는 내 어릴적 죽마고우다. 지금은 10가구도 안되는 피폐해진 깡촌마을이지만 그 당시에는 20가구 쯤 살았는데 같은 나이의 남자친구들이 서넛 있었고 그 중에서 순해와 나는 유독 같이 놀기를 좋아했다.

하긴 내가 순해와 많이 어울리게 된 것은 다른 이유도 있었다. 순해네 집에 동네에서 제일 잘 사는 집이라서 가끔 가면 먹거리를 챙겨줄 때가 있다는 점과 집에 책들이 제법 있다는 점이었다.

어릴 적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던 나는 동네에 있는 책은 거의 대부분을 섭렵을 할 정도로 책욕심이 강했고 그래서 순해네 집에 놀러가기를 좋아했다.

순해네 집은 동네에서 유일한 기와집이었고 그 앞에는 둘레가 10m 남짓한 연못이 있었는데 창포가 삥둘러서 심어져 있어서 여름철이면 파란 연못에 청개구리들이 시끄럽게 울어대고 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특히 그곳에는 송사리와 미꾸라지 같은 물고기들이 많아서 여름철 한 때는 족대를 이용하여 물고기를 잡아서 매운탕을 끓여먹곤 했다.

연못은 바로 위쪽에 있는 샘물로부터 물을 받아 안고 있다가 아래쪽의 논들에 물을 대는 저수지 역할도 겸하고 있었다. 그 샘물은 한동안은 먹는 물로도 사용했었는데 어느 때부턴가는 순해네 집에 펌프가 생겨서 샘터로서의 기능은 상실하고 우리가 가끔 개울가에서 잡은 물고기 새끼를 장난삼아 길러보는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연못 바로 옆에는 미나리꽝이 있었고 둘레에는 버드나무 몇 그루가 심어져 있었는데 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한아름이 넘는 커다란 나무였다. 여름철에도 시원했던 그 나무 아래에는커다랗고 넙적한 돌이 하나 있어 동네 아줌마들이 빨래터로 즐겨 찾곤 하였다.

내가 국민학교 저학년 때 여름철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날도 학교가 파하고 순해와 나 그리고 다른 동갑내기 친구 춘선이 셋이서 책보를 매고 덜렁덜렁 집을 향해 오다가 길목에 있는 순해네 집으로 들어가서 놀았다. 어른들은 모두 일하러 밭에 가시고 집은 비어있었다.

날씨는 덥고 심심하던 차에 우리는 연못으로 나와서 버드나무에 올라가서 놀았다. 무척 키가 커서 2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버드나무의 중간쯤에 가지가 갈라지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이 우리가 항상 타고 올라가서 놀던 놀이터였다. 그곳에서 말을 타듯이 흔들거리며 놀곤 했는데 그 날따라 말타기 놀이에도 지쳐서 심심함을 견디지 못한 우리는 돌아가면서 재미있는 옛날 얘기를 들러주기로 했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책벌레답게 여러가지 재미있는 얘기를 많이 알고 있던 나는 친구들에게 책에서 읽은 얘기를 각색하여 들려주기를 즐겼는데 그날도 첫번째 타자로 나선 나는며칠 전에 읽은 책의 내용을 몸동작을 섞어가며 재미있게 얘기를 하였다.

그런데 말을 타고 공주를 구하러 간 기사가 악당을 만나 칼 싸움을 벌이는 장면에서 칼을 휘두르는 동작을 하다가 너무 동작이 컸나보다. 순간적으로 미끈하더니 몸이 나무에서 분리되는 것이 아닌가? 나무를 잡으려고 손을 뻗쳐 보았으나 이미 늦었다.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순간적으로 머리속이 하얘졌다.

떨어지는 시간은 친구들이 소리도 지를 여유가 없을만큼 짧은 시간이었겠지만 그 순간에 내 머리속에는 여러가지 상상이 스쳐 지나갔다. 바로 밑에 빨래판으로 사용하는 커다란 돌을 향해 내가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과 그 곳에 떨어지면 무척 아프겠다, 아니 죽을지도 모른다 하는 생각, 혹시 죽으면 슬퍼할 부모님 생각 등등 무척 복잡했다.

피할 수 없는 순간 나는 배를 깔고 그 돌판위로 패대기쳐졌다. 숨이 콱 막혔다. 아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온몸이 부르를 떨리는 것이 이것이 죽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꺾고서 눈을 감았다. 이게 죽는 거라면 조용히 받아들여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한동안 놀란 친구들이 나무에서 내려와 내 옆에 서서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고 "어떡해! 어떡해!"라고만 외치는 소리가 들리고, 버드나무의 매미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런데 한참을 그 자세로 기다려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숨이 쉬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온 몸이 매타작을 당한 듯이 아리고 뻐근하고 고통스러워졌다. 아아! 아직 죽은 것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하니 안도감도 들고 한편으로는 너무나 아파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순해가 어른들을 불러야하느냐고 묻는다. 고개를 저었다. 공연히 어른들, 특히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기 싫었다. 친구들의 부축을 받아서 순해네 집 마루에 가서 누웠다. 눈을 감고 누워서 30분 정도 지나니 안정이 되었다. 슬며시 고개를 돌려 내 배를 바라보니 뭔가로 할퀴듯이 죽죽 붉은 금이 그어져 있었다. 아직도 온몸은 파김치처럼 축 늘어져서 움직일 힘이 없었다.

친구들에게 다시 한번 어른들에게는 절대 얘기하지 말라고 다짐을 하고 엉금엉금 기다시피 우리 집으로 갔다. 그리고 안방에 드러누워 마른 침을 입속으로 삼키며 머리속에 떠다니는 별들을 세다보니 어느새 잠이들어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몸이 안좋다는 핑계로 저녁을 굶었다. 아니 먹을 힘이 없었다. 그냥 머리가 좀 아프고 배도 살살 아프다고 말씀드리니 부모님께서는 몸살기운이 있는 것 아니냐며 오셔서 이마를 짚어보시더니 푹 자라고 홑이불을 덮어주신다. 한 여름인데도 이불이 따스하고 좋았다.

부모님께 들킬까 봐 신음소리를 속으로 삼키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잠이들어 있었다. 신기한 일은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어제의 일을 기억나게 하는 것은 뱃살에 죽죽 그어진 몇 줄기 상처자욱뿐이었고 그냥 하루저녁 몸살을 앓은 듯 약간 기운이 없다는 것 뿐이었다. 

내가 워낙 튼튼한 체질이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나의 명을 관장하는 신이 있어서 아직 때가 아니라고 판단을 하신 걸까?

하여튼 나는 그 어린 시절에 운이 없었으면 세상을 등질 뻔한, 그러면서도 다른 가족들에게는 알리지 않았던 그런 아찔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그 일이 있고 10년 이상 지난 후에 병원에 입원하신 어머님 문병을 가서 그 때 일을 재미삼아 처음으로 말씀드렸더니 정말 미련한 놈이라고 야단을 치시긴 했다.

그 당시의 버드나무도 연못도 내가 고등학교 무렵에 장마가 났을 때 사라져 버렸고, 몇 해 전에는 뉴스에까지 떠들썩했던 100년만의 큰 장마로 마을의 지도가 완전히 바뀌어져 버려서 가끔 들러보면 여기가 내가 살던 동네가 맞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도 아직까지 기억에 생생한 것은여름이면 연못가를 가득 채우던 창포의 파아란 빛깔과 나를 하마터면 일찍 저 세상으로 보낼 뻔한 그 커다랗던 버드나무이다.

몇 층에서 떨어지면 죽을까? 나는 이미 연습을 해봐서 아는데 4층까지는 문제없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