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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의 살던 고향은

081222 놀꺼리(3) - 감히 비석을 패대기를 치다니!

by 무딘펜 2008. 12. 22.

장난감이 없던 어린시절에 손바닥만한 돌을 가지고 재미있게 놀 수 있었던 놀꺼리 중의 하나는 비석치기였다. 우리 동네에서는 비럭치기라고도 했다.


[비석치기 중 오른발등치기를 하는 모습]


1. 놀이도구

 
필요한 건 딱 하나입니다. 손바닥만한 돌 하나. 안정적으로 세우기 쉬운 직사각형의 모양이 가장 좋고 잘 깨지지 않는 단단한 돌이 유리합니다. 부딪칠 때 경쾌한 소리가 난다면 금상첨화!

2. 놀이준비

 
먼저, 4~5미터 간격으로 공격선과 수비선의 두 줄을 나란히 긋습니다.

 
다음은 편을 갈라야죠. 보통 가위바위보를 합니다. 한 팀에 보통 4~5명 이내가 적당합니다.

 
진 팀은 수비선 위에다 자기 돌을 세웁니다. 이때 가능하면 쉽게 넘어지지 않도록 땅을 파서 세운다거나 가로로 길고 낮은 돌을 세우기도 합니다. 

3. 놀이방법

 
기본적으로 공격자는 자기의 돌(비석)을 가지고 상대방의 비석을 맞추어 쓰러뜨리면 됩니다. 일반적으로 20개 정도의 단계를 거치는 데 놀이의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던져서 맞추기    2) 한발걸이    3) 두발걸이    4) 세발걸이    5) 재기
6) 발등얹어차기     7) 토끼치기    8) 무릅치기    9) 아들낳기    10) 배사장
11) 술병쥐기         12) 신문팔이   13) 턱치기     14) 장군         15) 떡장수
16) 장님

☞ 좀더 자세한 놀이방법을 보시려면 어린이 민속박물관에 있는 비석치기를 참조하세요. 이 사이트에는 비석치기 이외에도 여러가지 민속놀이의 방법이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어서 아주 재미있답니다.



비석이라고 하면 보통 묘소 앞에 그 사람의 일생이나 공적을 적어놓고 후손들이 기리도록 하는 엄숙하고도 숭고한 것 중의 표상인데, 이것을 '치다'니? 대단히 무엄한 놀이로다!

그러나 조막만한 돌을 비석이라 부르면서 패대기를 치는 이 놀이의 명칭을 비석치기라고 한 데에는 뭔가 원인이 있었을 성 싶다. 추측건대 우리 서민들의 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석들은 고인의 생전의 행동에 대한 존경심에서 우러나와 여러사람들이 힘을 모아 세워준 비석보다는 손가락질을 받던 탐관오리나 자기욕심만 차리던 묘지의 주인이 죽은 다음에 돈을 들여 세운 비석이 더 많이 눈에 띈 것이 아닐까? 이에 대한 혐오감에서 비롯된 것이 바로 이 비석치기일지도 모른다.

나도 어린 시절에 이 비석치기를 무척 즐겼는데 이 놀이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기기묘묘하고 웃기는 동작에 있었다. 무릎사이에 비석을 끼우고 깡총깡총 뛰는 모습이나 배위에 돌을 얹고서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서 허리를 뒤로 꺾고 배를 쑥 내밀고 걷는 모습, 그리고 눈을 감고 던져놓은 돌을 찾아 더듬거리는 모습은 승부여부를 떠나서 우리들의 웃음보를 뒤틀리게 하는 재미가 있었다.

어릴 때 윗집에 살던 친구랑 놀이를 하다가 내가 너무 세게 비석을 던져서 그 애의 비석을 반조각을 낸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그애는 냇가에서 자기 머리만한 큰 돌을 골라와서 자기의 비석이라고 세워두었는데, 내 작은 비석으로는 아무리 쳐도 넘어지지가 않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은 그 녀석의 공격차례에 일어났다. 비석은 돌이 깨어져서 못쓰지 않는 이상 자기가 처음에 골랐던 돌로 공격과 방어를 계속해야 하는데, 자기의 공격차례가 되어서 방금 전 방어 때 사용했던 그 큰 돌을 무릅사이에 끼우고 깡총깡총 뛰는 꼴이란... 같이 놀이하던 친구들의 배꼽을 심한 고통 속에 몰아넣은 장면이었다.

비석치기를 하다가 신경전을 벌이는 경우는 네번째 단계인 세발걸이에서 발생하기도 하는데, 공격자가 심통이 난 경우에는 머리통만한 돌을 골라와서 상대방의 아끼는 비석을 있는 힘껏 내리쳐서 박살을 내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이럴 때는 상대방의 복수를 각오해야만 했다.

그리고 가장 말싸움이 치열한 경우는 맨 마지막에 장님단계에서 서로 실눈을 떴느니 안 떴느니하고 다투는 경우였는데 나중에는 결국 하늘을 보고서 손으로 더듬어 자기 비석을 찾는 것으로 규칙을 바꾸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재미있었던 비석치기. 돌끼리 부딪칠 때의 그 '깡!'하는 경쾌한 소리와 번쩍 불빛이 튀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엉덩이가 들썩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