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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수의 일상사

♣ 노회찬과 염치

by 무딘펜 2018. 7. 31.
1.
"염치"의 사전상 정의는 '체면을 차리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그런데 '염치없다'는 말은 많이 들어보았지만 '염치있다'는 말은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그만큼 염치있는 사람이 드물다는 뜻일 게다.


며칠 전에 정의당 원내대표 노회찬 의원이 운명을 달리했다. 그가 받은 4천만원은 뇌물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리고 삶을 가벼이 하는 그의 극단적인 선택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이 시대에 드문 "염치廉恥있는 사람"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듯 하다. 그의 명백한 잘못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통해하고, 정의당의  지지율이 사상 최대치를 갱신한 걸 봐도 그렇다.

2.
염치라는 단어와 관련하여 두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먼저 염치에서 유래된 듯 보이는 '얌체'라는 말이다.

사전을 살펴보니 얌체라는 말은 염치없는 줄을 알면서도 이를 무릅쓰고 한다는 의미의 '모몰염치(冒沒廉恥)'가 변하여 '몰염치'라는 말로 변하였고, 이 말이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는 '염치없다'라는 표현으로 많이 쓰였다.

그러다가 서서히 '염치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반대의 의미를 가진 '얌체'라는 부정적 의미로 변하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경고 : 내 추측일 뿐 근거를 찾아보지는 못했다. 어디 가서 잘못 얘기했다가 창피 당할 수 있음). 양반 댁에서 태어나 상놈으로 자라난 매우 기구한 운명을 지닌 단어다.

3.
두번째는 '염치 불구하고~'하는 표현이다.  ‘불구(不拘)하다’는 ‘(무엇에) 얽매여 거리끼지 아니하다’는 뜻을 지닌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염치 불구하다’는 ‘염치에 얽매여 거리끼지 아니하다’는 의미로, ‘체면이나 부끄러움 없이 막되게 부탁 좀 하겠습니다’는 말이 된다. 그러니 이 말은 양아치들이나 쓸 수 있는 말이다.

원래 '염치를 돌아보지 않는다'라는 의미의 불고염치(不顧廉恥)’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염치가 없지만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라도 이야기한다’는 식으로 쉽지 않은 상황에서 상대방의 이해를 구하고자 하는 표현법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상대에게 정중히 부탁할 때는 '염치불구'하지 말고, '염치불고'하시기 바란다. 아니, 어려운 한자어 쓰지 말고 쉽게 '염치없지만'이라고 하는 게 가장 뜻이 잘 통할 것이다.

염치와 분수만 잘 지켜도 어디에 가나 떳떳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노회찬 의원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