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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수의 일상사

떠나야할 때

by 무딘펜 2019. 5. 8.
맥문동이라는 식물이 있다. 마치 난처럼 길쭉한 이파리가 나 있고 하얀꽃에 검정색 열매가 다닥다닥 열리는데, 신기하게도 콩과란다. 뿌리를 캐보면 콩과식물 특유의 뿌리혹박테리아를 볼 수 있다.


한겨울에 흰눈을 머리에 소복하게 이고도 파랗게 생명력을 뽐내는 녀석들이라서 조경식물로 사랑을 받고 있다. 내가 사는 관사를 올라가는 나무로 만든 계단 좌우측에도 맥문동이 줄지어 심어져 있다. 사계절 내내 싱그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그런데 강추위를 이겨낸 맥문동도 힘을 못쓰고 시들어 사라지는 때가 있다. 바로 뿌리에서 새잎이 날 때이다. 봄이 한창일 즈음 겨울철을 견뎌낸 잎들 사이에서 붓끝처럼 가느다란 새순이 돋는가 싶더니 금방 파릇한 이파리가 씩씩하게 올라온다. 그러면 그동안 고난늘 견디고 질긴 생명을 지켜왔던 오래된 잎들은 갑자기 생기를 잃고 시들시들하다가 말라서 죽어버린다. 아마도 죽은 이파리는 다시 거름이 되어 뿌리를 통하여 새로운 이파리에게 영양분을 제공하게 되리라.

모든 자연의 이치가 그러하다. 몇 백년을 사는 소나무들도 항상 푸르른 것 같지만 오래된 잎은 떨어지고 새잎으로 세대교체를 함으로써 그렇게 오랫동안 푸르름을 유지하는 것이다.

유독 인간만이 이러한 이치에 순응할 줄 모른다. 물러나는 적당한 때를 깨닫지 못하고, 추한 상황에 몰려서야 겨우 밀려나듯이 자리를 떠난다.

경영학에서 유명한 피터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조직내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무능력한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승진하려는 경향이 있고, 이러한 경향 때문에 조직의 폐쇄성과 연공서열적 타성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부서는 무능한 자들로 채워지고 아직 무능력의 수준에 도달하지 않는 사람들이 겨우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나는 지금 어느 수준에 와 있을까? 내가 아름답게 떠나야할 때는 언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