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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수의 일상사

나도 꼰대일지 모른다.

by 무딘펜 2021. 2. 28.

1.
외국 출장 후에 며칠간 코로나 때문에 자가격리 중이다. 덕분에 며칠간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새벽에 항상 하는 걷기를 하고, 오후에도 산책삼아 한 두 시간 걷는다.

오늘도 점심 식사 후에 산책길에 오른다. 사람들이 많은 낮 시간에는 소음을 신경 쓰기 싫어서 거의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걷는다. 오늘 들은 음악은 <봄날은 간다>. 최백호 버전을 좋아한다. 그리고 같은 제목의 다른 노래,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도 좋다.

친구들에게 최백호의 노래를 들으며 산책하고 있다고 카톡에 올렸다. 최백호 노래 정말 좋은데 요즘 젊은 애들은 그 유명한 가수를 잘 모르고, 그래서 그의 노래 얘기를 하면 꼰대 취급 당하기 십상이라서 씁쓸하다는 친구의 답글이 올라온다.

꼰대!

하긴 나도 산책할 때 어르신들이 뽕짝을 크게 들으며 지나가면 눈쌀을 찌푸린다. 어떤 분은 아예 고성능 스피커를 자전거에 달고 다니시며 엄청난 볼륨으로 자신의 취향을 자랑하신다. 속으로 '저런 꼰대!' 하고 불평하는 경우가 많다.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이용하는데, 어르신들은 그게 익숙치 않아서인지 이런 경우를 종종 본다.)

2.
꼰대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워낙 많이 쓰이나 보다. 영국의 BBC에서 2019년 자사 페이스북 페이지에 '오늘의 단어'로 'kkondae(꼰대)'를 소개하며,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는 나이 많은 사람(다른 사람은 늘 잘못됐다고 여김)'이라 풀이했다. 내가 생각하는 개념과 정확히 일치한다.

3.
나는 꼰대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젊은 사람들이 나를 꼰대라고 불러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젊은 시절에는 어른들이 아무리 뭐라고 말해도 듣지 않더니, 이제 나이들어서는 젊은이들에게 내 말을 좀 들으라고 - Mission impossible - 강요한다면 내가 그 시절에 그런 어른들을 꼰대라고 불렀던 것처럼 나를 그렇게 불러도 할 말이 없지 않은가?

4.
젊음은 그 자체가 가능성이고, 서툴다보니 하는 일마다 실수투성이이고, 아무리 정답을 가르쳐 줘도 다른 길로 새고 싶어한다.

사실 실수는 젊은이들의 당당한 권리이다. 그런 수많은 가능성 때문에 그들이 아름다운 것이고, 수많은 실수 중에 생긴 한 두 가지 성공이 우리 사회를 진화시키는 것이다. 어른들이 가르치는대로 다소곳이 따르는 젊은이들이 많은 사회는 안정될 수는 있겠지만 발전보다는 결국은 쇠퇴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교각살우라는 말처럼, 젊음의 실수할 가능성을 말살하는 일은 건강한 소의 뿔이 조금 휘었다고 해서 그걸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일과도 비슷해 보인다.

5.
가르치려 하지 말고, 훈계하려 하지 말고 실수 하더라도 한 눈 질끈 감고 지켜봐 주는 게 진정한 어른일 것 같다. 내가 젊은 시절에 꼰대들에게 기대했던 것도 그런 것 아니었을까?

물론 삐뚤어진 소의 뿔을 바라보노라면 손이 근질근질하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