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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수의 일상사

흰 눈... 그 깨끗함의 절정!

by 무딘펜 2013. 2. 4.


눈이 제법 내린다는 일기예보는 있었지만 이렇게 많이 내릴 줄은 몰랐네. 더구나 오늘은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인데... 아침 일찍 눈이 떠져서 담배를 한 대 물고 창문을 여니 온 세상이 하얗다. 세상의 모든 지저분한 것들을 깨끗한 흰 빛으로 감싸않은 듯한 포근함에 왠지 모른 신비감과 황홀감을 느끼게 된다.


어린 시절 충청도 산골에 살던 내게 겨울철은 온 산하가 항상 눈에 덮여 있었다는 기억밖에 없다. 눈이 많이 내리기도 하였지만 사방이 온통 높은 산으로 둘러쌓여 있어서 일조량이 적은 탓에 쌓인 눈이 녹을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눈이 많이 내리면 산으로 올라가서 토끼몰이를 하기도 했다. 곳곳에 올무를 설치해 놓기도 했지만 눈이 많이 내리는 날에는 산토끼들도 기동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여럿이서 우~ 몰이를 하면 재수 좋을 때(물론 토끼 입장에서는 재수 없으면)는 한 두 마리 잡을 수도 있었다. 이럴 때 토끼를 산 위로 몰아대는 건 바보짓이다. 토끼는 뒷다리가 길고 앞다리가 짧아서 산 위로 올라가는 건 엄청 재빠르지만 골짜기를 향하여 내려가는 건 정말 왜 저럴까 싶게 서투르다. 거기다 눈까지 내린 날이면 갈팡질팡하기 일쑤였고, 이런 날을 이용하여 하는 토끼몰이는 겨울철 마을 아이들의 큰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눈이 내리면 또 하나 생각나는 장면은 영국 유학시절이다. 잉글랜드 남부 지방은 해양성 기후 탓에 겨울에도 따뜻한 편이라 좀처럼 눈이 내리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유학하던 2004년 어간에 폭설이 내린 적이 있었다. 눈에 익숙하지 않는 영국사람들은 스노우 체인이라는 걸 잘 모른다. 그래서 조심조심 운전을 하긴 하지만 갑자기 브레이크를 잡고는 쭉 미끄러져 뒷차의 범퍼를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특히 같이 학교에 다니던 아랍학생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 구경을 하는 것이라 수업도 전폐하고 운동장에 나가서 눈싸움을 하거나 눈사람을 만들고 온갖 장식을 덧붙이는 데 열중하곤 했었다.


지금 서울에 눈이 많이 내려도 뾰족한 빌딩 숲에 내린 눈은 별로 큰 감흥을 주지 못하지만 평평한 시골마을에 한밤중에 소복히 쌓인 눈은 신비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영국에서가 그랬다. 나는 잉글랜드의 아주 시골마을에서 살았는데 아침에 일어났을 때 뒷 정원에 한 가득 내린 눈을 보고서 얼마나 신기하고 즐거웠던지... 오랫만에 동심으로 돌아가 아이들과 눈사람도 만들고 주변의 광활한 벌판을 다니며 눈 사진도 많이 찍었던 게 어제처럼 생생하다.


출처 : 네이버 카페 "나무와 간판"

눈이 오면 제일 좋아하는 것은? 강아지

눈이 오면 제일 싫어하는 것은? 군대에 있는 병사들


출근하면서 바라보니 오늘 아침도 예외없이 영내의 모든 병사들이 손에 손에 빗자루와 도구들을 하나씩 들고서 티끌 하나조차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도로변을 깨끗이 쓸어대고 있다. 이들을 보면서 왠지 아침에 느꼈던 기분 좋음이 미안하게 느껴진다.


내 사무실 창문밖으로는 미군부대가 보인다. 대부분 단층건물로 이루어져 있고 그나마 드문드문 건물을 배치했기에 눈 내린 모습을 감상하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다. 그런데 그곳에는 눈이 쌓이면 쌓이는대로 그냥 두고 있다. 지금도 창 밖으로 보니 관사지역에는 어린 아이들이 모두 몰려 나와서 눈싸움에 정신들이 없다. 마치 어린 시절의 내가 그랬듯이.